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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문 Mar 21. 2019

오랜만에 보는 문제작 탄생, 우상

영화 [우상] 리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문제작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극명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 안에 울림이나 어떠한 큰 파동은 없었다. 영화 [우상]의 메시지는 상당히 노골적으로 접근한다. 영화는 원전, 이주민 정책, 장애인 성욕 도우미, 광화문 등 너무 직접적이어서 여타의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없는 강경한 입장을 보인다. 그렇다면 저런 문제들이 이야기에 묻어 나왔느냐가 핵심일 것이다. 



#지루하거나 어렵지는 않아

잘 나가는 구의원 구명회 

영화 [우상]의 상영 시간은 144분이다. 두 시간 하고도 20분 남짓한 시간을 구속된 채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상당히 고역일 수 있다. 그러나 [우상]은 굉장히 독특할 수 있는 구성을 취하기에 이 시간들이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처음 사건이 발생하고 구명회(한석규), 유중식(설경구)은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 밝히려는 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대립구도로 진행된다. 중요한 포인트는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목격자 최련화(천우희)의 행방이다. 최련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영화 시작 이후 약 한 시간이 지난 후이기에, 이 전형적인 이야기 구도는 한 시간 동안 오롯이 관객 몰이를 시작한다. 

구명회는 최련화를 납치한다.

그러나 영화의 중반 지점에 구명회는 최련화를 납치한 채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 최련화는 구명회가 아들의 실수로 포장한 사건을 살인 및 시체 유기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전까지는 구명회의 위선이 아슬아슬하게 넘칠 듯 보여주었다면, 이 장면에서 그는 제대로 자신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아들 부남을 잃은 유중식


유중식이라는 인물은 어떠한가. 처음 영화 도입부의 나레이션에서 알 수 있듯이 지체 장애인 아들 부남의 성욕을 13살 때부터 처리해주던 그이다. 아들의 죽음을 좇던 그에게 며느리 련화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의 목표는 구명회보다 먼저 며느리를 찾는 것이다. 중식의 시작과 중간, 끝은 모두 며느리와 그녀의 뱃속에 있는 부남의 자식 보호가 먼저이다. 재미있는 점은 인물의 방향성은 바뀌지 않지만, 영화의 중반이 넘어가면서 관객이 그에게 느끼는 인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후반부 그는 부남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구명회와도 손을 잡는다. 그에게 애초에 중요했던 것은 아들의 부재가 아닌 아들에게 쏟던 보호자로서 역할의 부재이다. 


최련화 등장 이후 영화는 급변한다. 한 시간 동안 관객들을 잘 핸들링한 감독은 이후에 관객에게 영화 속 인물들이 다른 어떤 특수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의심스러워 보이는 의식 변화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남은 반절의 이야기 속 관객의 집중은 자연스럽게 련화에게 갈 것이다. 거기다 지속적인 서스펜스는 관객에게 시종일관 긴장감을 부여한다. 영화의 후반부, 구명회와 최련화의 만남은 앞 선 납치 장면에서 그를 보지 못했던 련화가 명회의 스킨 냄새를 알아차리는 뉘앙스를 제시한다. [우상]은 이렇게 지속적으로 서스펜스로 관객에게 잽을 날린다. 



#지루하진 않지만 너무 많은 걸 담으려 해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우상]은 영화적 구조 및 연출로 충분히 좋은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이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 한 것이 느껴진다. 특히 영화적 서스펜스에서 충분히 좋았던 부분들이 많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 역시 있었다. 가장 좋은 예로 구명회의 어머니는 매 순간 딱히 중요한 부분도 아닌 데 등장하여 괜한 분란을 만들어낸다. 중식의 집에 찾아가 사과를 드리는 장면에서도,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장면에서도 불필요한 서스펜스까지 만들어내는 형국이니 점점 뒤로 갈수록 감흥이 없어지는 역효과를 발휘한다. 

구명회의 어머니, 자꾸 불필요한 서스펜스 조성


특히 많은 관람객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대사 전달력 부분이 큰 결점이다. 비단 연변 사투리 문제만이 아니다. 중요한 장면들 속 인물들의 대사 뒤로, 화면 밖 음성이 더해진다. 중식의 집 장면마다 깔리는 부남의 음성 녹음이라던 지, 화면 밖의 인물들의 불필요한 대사들까지 중첩되는 경우 말이다. 


영화 처음 도입부는 중식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후에 구명회 선거 활동에 하는 연설 내용인 이 부분은 광화문 건물들을 조명이 비추는 배경 속에 명확하게 관객을 집중시킨다. 이후 마지막 장면에서는 화상을 입은 구명회가 알 수 없는 발음으로 연설을 하면 많은 청중들은 앞에 쓰여 있는 프롬프트에서 자막이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아마도 감독은 점점 부정확해지는 대사 전달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우상’이라는 ‘믿음’의 역설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도무지 내용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심한 전달력 부족은 너무 많이 간 것이다. 특히 후반 장면에서 련화가 중식에게 고백하는 부분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해럴드팝의 기사 속 발췌


감독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관객들이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상]은 극을 달리는 인물들의 숨 쉴 틈 없는 전개로 인해 관객이 이야기를 쫓는 모양새만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달리는 대사 전달력 부족과 각각의 인물 별 전개 방식은 관객에게 이 영화를 탐닉하며 함유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그래서 대체 저 인물은 왜 그런 거지라는 의문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영화의 상당히 긴 상영시간은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지만 계속해서 납득가지 않는 상황들로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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