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문 Mar 28. 2019

인물들의 관계가 아닌 상황으로 진행되는 영화 [바이스]

영화 [바이스] 리뷰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영화 [빅쇼트]를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뤘던 아담 맥케이 감독이 이번에는 미국 대외정책의 가장 큰 실패로 일컬어지는 이라크 전쟁과 그 전쟁을 몰고 간 세력을 스크린에 담았다.

왼쪽부터 딕 체니와 조지 부시


이라크 전쟁이 테러를 빌미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그 당시부터 나오던 정평이었다. 오죽하면 911 테러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왔었으니 말이다. 영화 [바이스]는 이러한 사건 중심에 대통령이었던 부시가 아닌 부대통령 딕 체니를 꺼내왔다.

영화 초반 예일대에서 퇴학당하고 술 마시면 싸우는 게 일이던 딕이 어떻게 정치권에 입성했는지는 세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부분은 그가 미국의 최고, 즉 세계의 정점에 서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승승장구를 달리던 그가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가족과 권력,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그는 가족을 택했다. 그렇게 권력에서 멀어지던 와중에 망나니 같던 조지 부시가 딕에게 러닝메이트를 제안한다. 풋내기 이미지의 부시에게 딕 같은 걸출한 정치인은 훌륭한 보조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 전 까지는 사실상 허수아비에 불구했던 부대통령 직책을 누가 좋아할까, 그것도 야망이 컸던 딕 같은 남자에게. 하지만 딕은 어수룩한 부시의 모습에서 그를 이용하면 대통령의 권한을 자신도 누릴 수 있음을 간파하고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실화 기반 영화 속 진실의 경계


영화 [바이스] 속 부시의 모습은 굉장히 단적으로 그려진다. 영화 속 그는 중요한 연설에서도 책상 밑에 다리 떠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정도로 철없게 묘사된다. 이 영화 속에서 아담 멕케이가 주고 싶은 메시지는 비단 실제로 부시가 딕 체니에게 놀아난 멍청한 꼭두각시라는 점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실상에 부대통령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비난 및 결과에 얼마의 책임이 있는가, 그것이다.

얼간이로 묘사되는 조지 부시

실제로 백악관 주요 거처에 포진되어 있던 딕 쪽 사람들, 이라크 전쟁 후 그와 관계되어 있던 기업의 주식이 5배로 뛰었던 일, 테러와 이라크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조작된 증거자료와 그의 입김이 분 UN연설문 등 많은 부분에서 책임의 화살표가 그를 가리키고 있다. 감독은  이렇듯 딕을 가리키는 밝혀진 쟁점들은 최대한 부각하면서도 애매한 부분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직설적인 내레이션을 통해 유연하게 대처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실은 정확하게 명시하고 넘어가며 이에 대한 판단은 관객 몫으로 넘기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영화의 쿠키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다시 재확인시켜준다.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

[빅쇼트]와 [바이스]의 같고도 다른 지점들


[바이스]은 다양한 인물들을 그리지 않는다. 영화는 오로지 딕 체니와 주변일 뿐이다. 여기서 그의 전작 [빅쇼트]와의 차이점이 발생한다. [빅쇼트]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감한 네 명의 각기 다른 인물들의 사연 속에서 각자 다른 입장과 온도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는 영화적인 오락성 및 감독의 고발적 메시지를 극대화시켜주었다. 그러나 [바이스]의 이야기 갈래는 그것이 실화이기 때문에 딕 체니 홀로 이끌어가야만 한다.(영화가 그에 대한 고발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가 부대통령이 되기 전인 전반부가 후반부에 비해 약한 것도 사실이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시청각적으로 자극적인 요소들을 중간중간 삽입해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메꿔준다. 특히 [바이스]의 내레이션을 담당하는 커트(제시 플레먼스)는 전작인 [빅쇼트]를 봤던 관객들에게는 저 인물이 대체 이 이야기 어느 부분에 등장할지 관객의 관심을 끈다. 그리고 그가 정확히 메인 이야기 흐름에 들어왔을 때, 관객에게 색다른 충격을 준다.


[빅쇼트] 속 내레이션 역할을 한 자레드 베넷



영화 [바이스]에서 짚고 넘어갈만한 돋보였던 연출이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부시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연설하는 장면에서 다리를 심하게 떤다. 그리고 뒤이어 폭격으로 인해 민간인 가장이 가족을 감싼 채 두려움에 다리를 떠는 장면이 연이어 배치된다.

전작인 [빅쇼트]에서는 찰리와 쉬플리가 자신들의 예상이 맞았음을 다시 확인하고, 환호하며 춤을 춘다. 벤은 그런 그 둘을 보며 지금 이게 기뻐할 일이냐고 묻는다. 그들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은 그 둘에게는 부를 안겨주겠지만, 많은 미국의 중산층, 이민자들은 집, 직업, 연금, 퇴직금, 심지어는 가족도 잃을 것임을 상기시키며 화를 낸다.

위 두 장면은 두 영화가 지속적으로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이런 사태들을 비웃으며 조롱하고 함께 웃고 있지만, 비단 이것이 가벼운 일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생애 기로에 놓였던 큰 사건이었음을 관객에게 환기하는 장치이다. [빅쇼트]에서는 다양한 인물들로 사태의 심각성을 묘사한 반면, [바이스]에서는 시각적 대비로 관객에게 이를 전달한다. [바이스]가 인물들 간의 관계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닌 딕이 만든 상황에 의해 진행됨을 확인할 수 있다.

[빅쇼트] 속 쉬플리와 찰리, 왼쪽부터



인물들의 관계가 아닌 상황으로 진행하는 영화


아담 맥케이는 영화 [바이스] 속 딕 체니를 이라크 전쟁의 주요 책임자로 그리고 있지만, 딕 체니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 플롯 속에 911 테러 직후 긴박하게 흘러가는 대피소 속 그가 결정 내리는 장면이 삽입된다. 이를 통해 [바이스]의 실제 주인공은 이라크 전쟁이며, 그 전쟁의 발단이 된 911 테러가 영화적 사건의 시작인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가짜 엔딩 크레딧(앞의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는 의미)처럼 영화는 실제 딕 체니가 부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렇기에 관객이 영화를 본 후 딕 체니에게 그의 악행이 벌을 받아야 한다며 온갖 욕을 뱉는 것 대신, 이라크 전쟁에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은 대게의 고발 영화들이 인물의 개인적인 지점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사건 책임에 정확한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개인에 대한 분노로 변질되는 우를 막아준다.



영화 [빅쇼트]를 통해 사회 고발적 성향의 영화에 강점을 보여준 아담 맥케이는 진정한 사태의 원인과 그 책임에 대해 관객에게 감정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코미디 안에 사태에 대한 상실감 내지는 연민의 감정을 드러낼 뿐이다. [빅쇼트]가 확인을 했다면 [바이스]는 아담 멕케이에게 확신을 할 수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에 보는 문제작 탄생, 우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