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체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래 앉아있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모가 크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전업 작가를 시작한 이후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해서 거의 안 빠지고 매일 달리고 있다고 한다. 나도 하루키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하루키처럼 매일 새벽에 달리려고 한다. (물론, 매일 달린다고, 하루키가 되는 것도,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적인 기분이 들어서 좋다, 달리는 건. )
그날도 기분 좋게 달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희끄무레한 새벽 어스름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때였다.
삐이 - 삐이
희미하게 소리가 들릴 듯 말듯한데, 그 소리가 너무 구슬프게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더니, 차도 쪽 연석 바로 옆에 아기 새 한 마리가 옆으로 누워 있었다. 규칙적으로 삐이-삐이 울고 있었다. 여기가 집은 아닐 테고, 둥지에서 떨어진게 아닐까 싶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자리로 돌려놓고 싶었다. 그냥 두고 가기에는 불안했다. 지나가던 차에 밟힐 것만 같았다.
내가 다가가자, 나를 피해 조그만 몸을 어떻게든 움직였다. 그런데 하수구 쪽으로 움직여서, 그 틈에 빠질까 염려되었다. 다행히 하수구까진 가지 않았다. 몸을 한껏 웅크렸다. 솜털이 난 날개로 온몸을 가리려고 애썼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도망가는 대신 현실 회피하기로 한듯하다. (나는 해치려는 게 아니야.)
나의 의도를 아기새는 전혀 읽지 못했다. (내 말이 전해졌으면, 내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너도 내 마음을 오해하는 거야? 피하지 마. 피하지 마.)
한참을 웅크린 아기새를 지켜보다가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야 할 것 같았다. 둥지로 돌려보내진 않더라도, 차가 안 지나다니는 길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을 아기새의 아래로 집어넣고, 다른 손으로 위를 덮어서 잡았다. 아기새가 발광을 하며, 격하게 울어댔다. 그것보다 더 놀랐던 건, 어디선가 어미새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새는 내 바로 눈앞에 나타나, 부리를 한껏 벌려 위협했다. 깨물리면 아플 것 같았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눈앞에서 그러고 있으니, 어미 새가 실제보다 더 커 보였다.
나도 모르게 아기 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여전히 차도 쪽 길이었다. 어미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먼발치에서 길게 울었다. (하아,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또 한참을 지켜보는데, 어슬렁어슬렁 앞 건물에서 아저씨 한 분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 했다.
쯧쯧.. 이 근처 야생 고양이 많은데, 고양이 먹이되겄네. 아이 불쌍타..
말을 남기고 휙 사라진다. NPC인가. 롤플레잉 게임에서 퀘스트를 주는 캐릭터처럼, 퀘스트만 주고 떠나간다.
둥지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다. 만약 떨어졌다면, 바로 앞에 있는 건물에서 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보니, 에어컨 실외기의 전선줄에 다른 아기새도 떨어질랑 말랑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었다. 그런데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여기저기 배달 다니고 있는 건가.날기 연습이라도 하다가 새끼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버린 걸까.
다시 한번 들어서 연석 안 쪽으로 옮기려고 했다. 아기 새가 발버둥 쳤고, 그 작은 부리로 손가락을 쪼았다. 놓치고 말았다. 안 쪽으로 떨어졌는데, 높이가 꽤 되는 데서 떨어졌다. 1미터는 더 되는 데서 날갯짓도 못하고 떨어졌다.
넘어가서 다시 아기 새를 살피니, 날개 한쪽이 원래와 전혀 다른 각도로, 다리가 부러진 사람처럼, 이상한 각도로 휘어 있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는지, 배가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래도 새니까 몸도 가벼우니까, 타격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크게 다친 것 같았다.
곧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먹이가 될만한 잎사귀와, 버려진 멜론 껍질을 앞에 갖다 주었다. 아기 새는 더 이상 삐-삐- 울지 못했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가뿐 숨만 몰아쉬었다.
무서워서, 그 장소를 벗어났다. 아기 새를 뒤로 하고 집으로 달렸다. 아까 만난 아저씨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 동네에 야생 고양이가 많은데, 야생고양이의 먹이가 되겠구먼. 먹이가 되겠구먼. 되겠구먼, 먹이가.
달리면서 생각했다. 내가 오지랖만 안 부렸으면.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잘 살게 하려고 했다지만, 건들지 않았다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아기새가 원하던 모험이 아니다. 오로지 내 만족을 위한 행위였을 뿐이다. 어미새는 현세에서 구슬피 울며, 자책을 할 것이고, 아기새는 내세에서 구슬피 울며, 현세의 어미를 찾겠지. 나는 속세에서 스스로 착한 행동을 했다며, 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나빴을 뿐이라며 위로하겠지.
내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자연의 의미 자체가 인간의 인위적인 간섭 없이 스스로 있는 것인데, 간섭하는 자체가 이미 모순인데, 어쩌라고 이 오지랖을 떨었을까.
하루 종일 아기새가 쪼아댄 검지 손가락의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그 체온이 지워지지 않았다. 멀리서 어미새의 비명에 가까울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반면에, 마음속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착한 짓 했어. 착한 일 한 거야. 잘한 거야.
스스로 위안을 하는 나. 그런데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은 누구일까.
그 밤, 나는 아기새가 가뿐 숨을 쉬던 그 자리에 가봤다. 아기새는 보이지 않았다. 아기 새 앞에 놓아둔 멜론 껍질만 그대로 놓여 있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애써 고양이 울음소리를 무시하며, 어미새가 무슨 수를 써서, 둥지로 잘 데려갔고, 다시 어미새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아기새를 상상했다. 억지로 상상해 보았다. 다시는 자연에 함부로 간섭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