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남 Jun 25. 2024

실패를 두려워해서 시작을 못하는 나에게

실패가 곧 성공!

브런치에 올리지 못한 이유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기록을 보니, 12월 13일이 최근 글이었다.


올리지 않았다기 보다, 올리지 못했다.

어떤 글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성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글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작할 수 없었다. 두려웠다.

 쓰지 못한 글을 보고 사람들이 비웃으면 어쩌지.

잘 쓰지 못한 글을 보고 욕하면 어쩌지, 실망하면 어쩌지.

다른 사람들의 혐오가 나를 향하고,

그러면 반드시 나는 나를 혐오하게 될 거라서.


그 확실한 미래가 두려워, 차마 쓸 수가 없었다.

내가 쏘아올린 작은 폭죽이 산사태를 일으킬까봐, 작은 불꽃조자 터트릴 수 없었다.


지난 12월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했다.

휴직을 했던 이유는 공황 장애 때문이었다. 사무실에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죽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의미 없는 웅성거림이 비난과 욕처럼 들렸다. 직장 등료들이 다같이 칼을 들고 쑤실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빠졌다. 회사를 다닐 수 없었다. 그만두려다, 쉬고 오면 괜찮아질거라고 믿어주는 직장 상사의 말에 휴직을 택했다.


3개월동안 회사에 다니는 동안 하지 못했던 유익한 경험을 했다. 에세이 수업과 명상을 통해, 나 자신의 불안을 대면하는 연습을 했다. 신경 정신과도 꾸준히 다녔고, 달리기가 좋다길래, 뚱뚱한 몸을 이끌고 달렸다. 10km 마라톤까지 나갔다. 성취감이 있었고,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달은 동남아를 여행했다. 태국의 빠이라는 곳에 가서, 별 일 없이 사는 사람들과 자연을 만났다. 열심히 아득바득 일하지 않아도, 남 눈치 보지 않아도,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차피 인터넷도 잘 안 되고, 높은 빌딩도 없고, 대형 상점도 없었고, 사치품도 없고, 그저 작은 술집들과 노점상, 그리고 별들, 그 외에는 작은 도로, 작은 계곡, 작은 절벽 들이 있는 곳이었다. 자연조차 그렇게 웅장하지 않은 곳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장소가 말을 걸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고 생각했다. 이국의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 몸과 마음이 치유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 와서, 복직 하고 나니, 변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전보다 더 필터를 끼고, 나를 대했다. 회사에 별로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 다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새로 온 팀장은 보수적이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무자비했다. 대놓고 욕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는데,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개복치 같은 멘탈이, 탈탈 털려버렸다.

결국 퇴사를 했다.


운 좋게도 바로 이직은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온전한 정신은 아니다.

매일 매일 출근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걱정된다. 언제 이 사람들이 나의 정체를 알게 될까.

나의 본모습을 알게 되면, 해고 당하지 않을까. 욕하지 않을까.

수퍼맨은 클라크 켄트고, 스파이더맨은 벤자민 파커이고, 우뢰매의 에스퍼맨은 심형래이고.

나는 ...



브런치를 쓰는 이유


이직을 하고, 본모습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제대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브런치에도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논리적이지 못한 내 모습,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내 모습,

신선하지 않은 문장, 지루한 구성, 빈곤한 어휘력.

엉망인 본 모습이 드러날까봐.


그런데 다시 올려보기로 했다.

엉망인 상태로 올리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퇴고도 안 된 글을 올리기로 했다.

영영 올리지 못할까봐, 쓰지 못하다 끝날까봐, 아마추어조차 되지 못할까봐,


브런치로 유명해지는 상상도 해봤다. 브런치에 글을 올려서 퓰리처 상까지 받는 상상까지 해봤다.

높은 기대치, 특별히 뭐가 되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전조등에 놀라 멈춰버린 고라니같은 꼴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기대치를 버리자.

그러기 위해 엉망인 글을 올리자.

올리고, 올리는 자체에 만족하는 시간을 갖자.


대단하다, 훌륭하다, 멋지다 가 아니라,


했다, 시작했다, 실패했다 에 가치를 두자.


그래서 올린다. 앞뒤도 안 맞고, 어딘가 NASA 빠진 이 글을.


두려움과 불안에 맞서

실패하기 위한 시작으로 삼기 위해.


그저 행할 뿐. Just Do it.


- 24. 6.26 순남 일기 01일 -

작가의 이전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친척에게서 전화가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