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김치찌개의 진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기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라고. 뇌가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음식, 그리고 사람이라고.”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껍데기를 벗겨내면 결국 한 장의 사진이다.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사람이 담긴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 나머지는 주석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기 전에 차려주는 아내가 손수 저녁 식사를 차려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로.
돼지 앞다리살을 두툼하게 잘라서 듬성듬성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쏭쏭쏭 대파, 허연 두부와 청양 고추, 눈이 시릴 만큼 시큼한 신 김치를 통째로 넣고, 빨간 고춧가루 팍팍, 김치 뚝배기에 끓인다. 다른 반찬은 사족이다. 김치찌개와 하얀 쌀밥만 있으면, 두 그릇 뚝딱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혀를 데어가며, 후루룩 쩝쩝 와구와구 먹고 나면, 배가 불러, 무엇이 그토록 힘들었는지, 종적을 감춘다. 얼큰한 국물을 삼키면, 콧등에서 땀이 솟는다. 흘려야 할 눈물을 콧등이 대신 흘려준다.
오늘도 너무 맛있었어! 비결이 뭐야?
물을 때면, 아내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벌러덩 大자로 누워, 찰칵, 마음속 카메라를 돌려 TOP VEW로 찍는다. 흐뭇한 미소와 이 사이 낀 뻘건 고춧가루와 허연 돼지비계, 돼지같이 배부른 나와 흐뭇하게 쳐다보는 아내의 풍성한 미소. 오늘도 만족스러웠다.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생떽쥐베리가 그랬던가. 사랑이란 서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고. 조금 바꿔서 이렇게 다시 말하고 싶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그런데 얼마 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밖에서 저녁과 술까지 먹고 밤늦게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때문에, 아내에게 늦게 들어간다고, 먼저 저녁 먹으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회식이 취소되었다. 몰래 놀라게 해 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장난꾸러기처럼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 출입문 앞까지 가서 빠르게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 띠 띠 띠
아내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놀랐다. O자 모양으로 눈과 입을 한 껏 벌렸다. 왜 놀라지? 김치찌개 냄새가 났다.
“김치찌개네?”
“으응, 오빠 안 온 다고 해서 참치 김치찌개…”
참치 김치찌개의 참치를 말할 때,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돼지고기 없어? 돼지고기 넣어서 먹지."
"응, 없기도 하고, 사실 참치 김치찌개를 더 좋아해요."
그제야 알았다. 아내는 사실 돼지고개를 넣은 김치찌개보다 참치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혀가 아릴 만큼 매운 맛보다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왜 여태까지 한 번도 참치 김치찌개를 안 끓였어?"
"오빠가 좋아하니까."
거실에 드러누운 만족스러운 남편 혹은 돼지 한 마리와, 그 뱃속에 든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생각하니, 참치 김치찌개를 끓일 수 없었노라고.
그제야 알았다. 아내는 늘 돼지고기를 대부분 내 밥그릇에 밀어 넣어주었다는 것을. 나는 속도 없이 받아쳐 먹고 있었단 걸.
그제야 알았다. 아내의 돼지 김치찌개 맛의 비결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자신이 좋아하는 참치 김치찌개보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여주는 마음이 최고의 레시피라는 것을. 그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아내의 김치찌개에 돼지고기가 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아내의 마음을 느낀다.
대서양의 참치보다 더 광활한 아내의 마음을,
첨벙첨벙 헤엄치는 한돈을,
한돈의 눈에 비친 하트 뿅 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