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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서가 Dec 24. 2022

이름 없는 생을 향한 여정

루리의 <긴긴밤>을 읽고.

너도나도 이 책을 읽을 때 청개구리처럼 굴던 나는 이제야 뒷북을 친다. 이런 아름다운 동물들이 나오는 책이라니. 눈물이 차오르고 넘치기를 반복했다. 코뿔소인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랐다. 코끼리들은 어딘가 다른 코뿔소를 내치지 않았고 부족한 것을 도와주며 감싸 안았다. 그곳의 세계밖에 모르던 노든은 행복했기에 고아원에 남을지, 바깥세상을 향해 나아갈지 고민됐다. 하지만 코끼리들은 노든이 바깥세상으로 떠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고 떠나며 그들을 돌아보는 노든의 모습을 그린 삽화를 보며 처음으로 눈이 시큰해졌다. 바깥세상으로 나간 노든은 많은 것들 보았고 알게 되었다. 다른 코뿔소들을 만났으며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가족을 잃었고 동물원에 갇혔고 친구를 잃었다. 전쟁을 겪었고 노든에겐 인간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만 남았다. 하지만 버려진 알을 품고 있던 펭귄 치쿠를 만났고 복수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로 한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펭귄 무리에게서 버려진 반점의 알을 품어주었던 치쿠와 윔보. 전쟁으로 치쿠와 노든은 동물원에서 나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되었다. 치쿠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다해 계속해서 알을 지키고 품었다. 치쿠의 마지막에서 진짜 폭풍 눈물 났다. 훌쩍훌쩍. 


이 책은 치쿠와 노든이 끝까지 지켰던 검은 반점의 알에서 태어난 펭귄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내 펭귄의 이름을 알 수 없다. 리뷰를 쓰다 문득 그렇다는 걸 인식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동물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과 같다. 노든도 고아원에서 동물원에서 살았고, 치쿠나 윔보, 앙가부도 모두 동물원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름을 가졌던 것이다. 노든이 바깥으로 나가 가족을 이루었던 코뿔소와 노든의 아이, 그리고 검은 반점의 알에서 태어난 펭귄만이 이 책에서 유일하게 속박되지 않은 동물들이며 당연하게도 이름을 가지지 않았다. 알에서 태어난 펭귄이 이름을 갖고 싶다고 하자 이름을 가져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다고 말했던 노든의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돕고 또 돕는다. 자신과 같은 종이 아니라도, 그러니까 다르게 생겼다는 것이 돕지 않을 이유는 결코 되지 않는다는 듯이 돕고 또 돕는다. 노든은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행복도 알게 됐지만 더없이 아픈 경험도 했다. 노든이 너무 안쓰러운 마음에 바깥세상으로 떠난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데 코끼리 고아원에서 할머니 코끼리가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p.15


그렇게 펭귄에게 사랑을 주고 바다를 만날 수 있게 도왔던 노든. 펭귄은 분명 노든을 만나 다행이라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광활한 바다 앞에 선 작은 펭귄을 보자 가슴이 먹먹했다.



+++


아, 그리고 궁금한 것은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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