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 날씨와 감정의 관계
“사람 마음은 참 신기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이 맑기만 해도 절로 힘이 난다. 하늘이 푸르기만 해도 살아있는 기쁨을 느끼고, 곁에 있는 누군가를 더욱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날씨 하나에 사람들의 감정이 이렇게나 움직이다니, 사람 감정이 하늘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날씨의 아이>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날씨는 기압이나 전선 같은 자연 현상입니다. 감정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느껴지는 반응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살아갑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당황하기도 하고, 날씨가 맑고 선선하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고, 안개가 가득하고 어두우면 집 밖을 나가기 싫고, 땀 흘리며 뛰고 있을 땐 잠깐의 시원한 바람도 참 상쾌하게 느껴집니다.
계절을 타는 사람들이 있듯이 날씨를 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한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시작될 무렵인 간절기에는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날씨에 따라 입을 옷을 정하고, 우산을 챙기고, 안부 인사를 전하는 일상에서의 수많은 행위들이 날씨로부터 비롯됩니다.
이렇듯 우리 일상에 많은 영향을 주는 날씨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눠보면 아이들의 감정을 훨씬 실감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겨울철 최강 한파가 찾아온 어느 날, ‘오늘은 너무 추워서 출석률이 안 좋겠구나’ 생각하며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저의 예상을 깨고 모든 아이들이 출석했습니다. 혹여 아이들이 감기 걸릴까 봐 따뜻하게 히터를 켜고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민준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선생님, 너무 더워요. 히터 끄고 창문 열어도 돼요?”
히터를 약하게 틀었는데 민준이만 유난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저는 창문 열면 감기 걸릴 수 있으니까 히터만 잠시 꺼주겠다고 했습니다. 민준이가 다시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 다른 애들은 안 더운데 저만 더운 건 제가 화나서 그런 거예요? 저 진짜 억울해요.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갔다 오면 열이 가라앉아요?”
민준이는 뭔가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어 2교시에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민준이는 쉬는 시간이 되자 밖으로 뛰어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다시 뛰어나갔다가 들어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우선 아무 말 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민준이는 숨이 차서 헉헉거리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항상 아이들에게 ‘왜’ 그랬는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보다 ‘감정’을 먼저 물어봅니다.
“민준아, 마음 좀 가라앉았어?”
“모르겠어요. 그냥 시원하긴 해요. 근데요. 따뜻한 데 있다가 차가운 데 나갔다가 왔다 갔다 해도 저는 짜증 안 나는데 엄마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민준이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나을 때까지만 해도 엄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준이 아빠가 주차를 지하주차장이 아닌 밖에 해둔 것을 알고, 추운 날씨에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 때문에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아졌습니다. 민준이는 엄마 기분 상태를 모르고 동생과 장난을 치며 걸어갔습니다. 그때 엄마가 빨리 차에 안 타고 뭐하냐고 신경질을 냈습니다. 재빨리 차에 탄 민준이는 강한 히터 때문에 답답해서 창문을 열었다가 또 한 번 큰소리로 꾸중을 들었습니다. 엄마는 흐리고 추운 날씨에 예민해져 순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 초등학교 3학년 민준이의 감정일기
엄마가 화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억울하다. 쉬는 시간에 따뜻한 교실에 있다가 차가운 데 나갔다가 계속 왔다 갔다 해봤는데 나는 엄마처럼 짜증이 안 났다. 엄마는 왜 짜증이 날까? 엄마는 아침에 짜증 내고 저녁에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오늘도 집에 가면 엄마가 또 사과할까?
저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민준이가 쉬는 시간에 따뜻한 교실과 차가운 교실 밖을 오갔던 행동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보려는 행동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감정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과 감정은 ‘엄마’와 ‘화’라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날씨’라는 변수가 자주 등장하고, 그것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들은 괜히 찔린다고 말합니다. 3초만 참으면 되는데 그걸 못 참고 아이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길 반복합니다.
중국의 광저우 대학교에서 “흐린 날씨가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성별과 감정 유형(긍정적, 중립적, 부정적)을 분석한 결과 흐린 날씨가 실제로 부정적인 감정, 예를 들어 우울과 불안을 유발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감정과 성별의 상호 작용 효과도 유의했으며, 부정적인 감정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길게 느낀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날씨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없다’라는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기온은 특히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떠한 날씨 속에서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지, 날씨와 관련해 자리 잡은 나의 기억들도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슬프고 아프게 느껴질 수 있는 비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추억으로 시원하고 그리운 것으로 느껴지듯 같은 날씨에 대해서도 느끼는 감정이 개인마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보고 느끼는 감정도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문득 날씨와 감정에 대해서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날씨는 어떤가요?
* 감정일기 쓰는 tip
• 날씨에 따른 나의 신체 반응 느껴보기
• 나에게 특별했던 ‘그날의 날씨’에 대해서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