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조앤 Sep 01. 2021

 여기 보아요, 여보

문-마경덕

Image.Pinterest/바다와 쪽문




             마경덕


문을 밀고 성큼

바다가 들어섭니다

바다에게 붙잡혀

문에 묶였습니다

목선 한 척

수평선을 끊고 사라지고

고요히 쪽문에 묶여

생각합니다

아득한 바다가, 어떻게

그 작은 문으로 들어 왔는지

그대가, 어떻게

나를 열고 들어 왔는지









   이게 얼마 만인지...
펜을 들고도 겨울눈 내리는 벌판 한가운데 얼은 나무처럼 한참을 서있네. 매일 쪽지 글을 써 호주머니에 슬쩍 넣어주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일까 했었는데.


기 좀 아요, 여보.

아니,  좀 아요.

그럼 나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건가.


   <당신과 여보>라는 말 둘 다 써본 적 없는 나. 

거리감 때문이었지. 뭔지 모를. 가까운 우리 사이에 놓아두기엔 고지식한 말이라 여겼던 거지. 그런데 그 고루한 말을 쓰지 않았다고 우리 둘 사이가 더 가까워졌는지를 묻는다면 글쎄,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해.

   '나와 함께 떠나고 싶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작고 어렸지. 스리랑카... 어떤 나라인지 몰라 서둘러 여기저기 찾아보았던. 그때 난 그보다 더 먼 곳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세상 어디든 대수롭지 않았지. 단 한 명으로 충분했으니까.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니까.

시애틀 다운타운애서 바라본 5월의 태평양 바다


   미국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지.
무한히 깊고 넓은 태평양 바다. 당신은 그 바다를 닮은 비밀. 그 우주 같은 비밀은 아이들이 나고 자라는 속도를 따라 함께 커져갔지. 먼 말을 쓰지 않았는데도 우리 사이를 더 좁히지는 못한 채 어느 날 미궁 속을 헤매이는 <나>를 보았지. 실 끝을 붙잡지 않고 무모하게 뛰어들었으니 빠져나갈 방도를 알 턱이 있겠나.

   그러나 당신은 미궁이어서가 아니라 거친 바다여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물이어서 무서웠어, 난.
물속에 손을 집어넣고 휘저으면 찰랑거리는데 손가락으로 집어 올릴 수는 없는. 보이지 않는 공기와 내 손의 열기로 이내 흔적도 없이 마르기만 하는 물. 차라리 차가운 얼음이라서 윤곽이 보일 때가 더 좋구나 했지만 얼음은 이내 물로 흩어지고 그 물은 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동안에도 감쪽같이 증발해버리곤 했지.

사는 일,
산다는 것 말이야,
내 고독과 당신 고독을 보는 일 같아.
당신이라고 외롭지 않았을까.
나는 가닿을 수 없는 거기.
각자의 독존獨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
남는 일,
그게
산다는 것 아닐까 말야.


나는 여전히 <여보, 당신>이라는 말 어색하기만 해.
한 사람으로 남을 나, 내가
한 사람으로 남을 너,를 칭하는 말로는.
당신은 나, 니까
당신은 자기인 거야.

나란히 걷는 길,
세월의 강을 사이좋게 나누어
맞잡는 두 손 그 사이
높임말, 당신 대신
여봐요, 하며 불렀다던 어른들의 말 대신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이니
난, 자기로 부를래.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어려워.
그래서 정작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지 몰라.
하여 사랑에 다시 빠지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해.
여기를 떠나게 될 그 순간까지,
그 모습 그대로.


뒷마당 문





                        조앤


문을 엽니다.
바다가 들어올 수 있게

고요히 쪽문에 기대어
헤아립니다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내 발 앞에
닿으려 애쓰는
아득한 마음을

그대가
밀려올 수 있도록
작은 문,
열어둡니다

Image.Pinterest


In the universe, there are
things that are known, and
things that are unknown,
and in between, there are DOOR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