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얼마 만인지... 펜을 들고도 겨울눈 내리는 벌판 한가운데 얼은 나무처럼 한참을 서있네. 매일 쪽지 글을 써 호주머니에 슬쩍 넣어주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일까 했었는데.
여기 좀 보아요, 여보.
아니, 나 좀 보아요.
그럼 나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건가.
<당신과 여보>라는 말 둘 다 써본 적 없는 나.
거리감 때문이었지. 뭔지 모를. 가까운 우리 사이에 놓아두기엔 고지식한 말이라 여겼던 거지. 그런데 그 고루한 말을 쓰지 않았다고 우리 둘 사이가 더 가까워졌는지를 묻는다면 글쎄, 꼭 그런 것도 아닌 듯해.
'나와 함께 떠나고 싶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작고 어렸지. 스리랑카... 어떤 나라인지 몰라 서둘러 여기저기 찾아보았던. 그때 난 그보다 더 먼 곳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세상 어디든 대수롭지 않았지. 단 한 명으로 충분했으니까.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니까.
시애틀 다운타운애서 바라본 5월의 태평양 바다
미국에서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지. 무한히 깊고 넓은 태평양 바다. 당신은 그 바다를 닮은 비밀. 그 우주 같은 비밀은 아이들이 나고 자라는 속도를 따라 함께 커져갔지. 먼 말을 쓰지 않았는데도 우리 사이를 더 좁히지는 못한 채 어느 날 미궁 속을 헤매이는 <나>를 보았지. 실 끝을 붙잡지 않고 무모하게 뛰어들었으니 빠져나갈 방도를 알 턱이 있겠나.
그러나 당신은 미궁이어서가 아니라 거친 바다여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물이어서 무서웠어, 난. 물속에 손을 집어넣고 휘저으면 찰랑거리는데 손가락으로 집어 올릴 수는 없는. 보이지 않는 공기와 내 손의 열기로 이내 흔적도 없이 마르기만 하는 물. 차라리 차가운 얼음이라서 윤곽이 보일 때가 더 좋구나 했지만 얼음은 이내 물로 흩어지고 그 물은 내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동안에도 감쪽같이 증발해버리곤 했지.
사는 일, 산다는 것 말이야, 내 고독과 당신 고독을 보는 일 같아. 당신이라고 외롭지 않았을까. 나는 가닿을 수 없는 거기. 각자의 독존獨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 남는 일, 그게 산다는 것 아닐까 말야.
나는 여전히 <여보, 당신>이라는 말 어색하기만 해. 한 사람으로 남을 나, 내가 한 사람으로 남을 너,를 칭하는 말로는. 당신은 나, 니까 당신은 자기인 거야.
나란히 걷는 길, 세월의 강을 사이좋게 나누어 맞잡는 두 손 그 사이 높임말, 당신 대신 여봐요, 하며 불렀다던 어른들의 말 대신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이니 난, 자기로 부를래.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어려워. 그래서 정작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지 몰라. 하여 사랑에 다시 빠지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해. 여기를 떠나게 될 그 순간까지, 그 모습 그대로.
뒷마당 문
문
조앤
문을 엽니다. 바다가 들어올 수 있게
고요히 쪽문에 기대어 헤아립니다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내 발 앞에 닿으려 애쓰는 아득한 마음을
그대가 밀려올 수 있도록 작은 문, 열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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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universe, there are things that are known, and things that are unknown, and in between, there are DO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