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욕구에 관하여
2020년 2021년 꼬박 2년을 코로나와 함께 했다. 이탈리아는 100일 이상을 봉쇄&레드존을 넘나들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일도, 인간관계도 대부분의 행사도 온라인에서만 진행되었다. 물론 이제는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았고,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을 때는 여행도 많이 다녔다. 하지만 다시 확진자가 하루 10만 명 이상으로 폭증하는 시점이라 다시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연스럽게 외출은 한 달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시간이 많으면 소비도 자연스럽게 많이 하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식비 이외의 지출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 오히려 매일매일 쓸데없이 짊어지고 살던 물건들이 몸서리치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해 하루 한 두 개씩은 무조건 버리기 시작했다. 무소유 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니멀리즘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 것인데 본격적으로 '무'의 세계에 희열을 느끼게 된 계기는 성지순례길을 걷고 난 이후부터였다. 20일, 내 삶에 꼭 필요한 것만 짊어지고 맹목적으로 걷는 여정을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물건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옷이며 책 가전제품,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대부분의 물건을 버렸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소비욕구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도 안나는 물건이 집안 구석구석 발견되면서 스스로가 한심해서 얼굴이 달아 오른 적이 수도 없이 많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물건을 사고 또 샀을까? 옷 정리를 하고 나서 내게 남은 4계절 옷은 이제 작은 옷장 한 칸 남짓이다. 5천 원, 1만 원짜리 옷들은 대부분 정리하고 그나마 값을 주고 사서 오래 입을만한 옷들만 남았다. 앞으로의 소비는 훨씬 더 오래 고민하고 신중해질 것 같다. 꼭 필요하다고 사도 외출을 거의 하지 않으니 일 년에 몇 번 못 입는 옷이 수두룩 하기 때문이다.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추운 베네치아에서 롱코트도 며칠 전 처음으로 꺼내 입었다. 올 겨울 동안 몇 번이나 입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집에만 머물면서 2년 동안 신발은 한 켤레도 구매하지 않았다. 외출복 구매도 손에 꼽을 정도이며 양말도 한 켤레도 안 샀더라. 대신 잠옷, 속옷, 침대 커버 등 집에 머무는 동안 필요한 편한 옷들만 구매했다. 사람과 대면할 일이 없으니 옷을 안 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 남편은 나보다 더하다. 진짜 반팔 티셔츠 2-3장을 구매한 것이 2년 동안 패션분야 소비의 전부이다. 세상에 우리 같은 사람만 있다면 코로나 이후 패션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해버리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해보았다. 남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으니 당연히 명품에 대한 소비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2021년 한 해동안 매출 1조 이상을 달성한 백화점이 우리나라에 12개나 있다고 하고, '샤넬런'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초고가 명품에 대한 수요가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에 이후에 빈부 격차도 그만큼 심각해졌다는 현실의 반증이다. 천만 원에 달하는 고가 명품을 '나'혼자 만족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인정받아야 할 텐데 요즘은 현실세계보다 온라인상의 불특정 다수에게서 인정의 욕구를 해소하는 사람들도 많지 싶다. 여행을 못 가고, 집을 사기에는 터무니없이 가격이 비싸 물질적 소비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패션업과 더불어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여행업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의 산업이 코로나 이후 다양한 변화를 맞닥들이게 될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의 장이 열리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될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특히 온라인의 세계로 접어들수록 점점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납작하게 바라보고 휘둘리지 않아야겠으며 뒤처지기 전에 단단히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