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를 저어 보자
서럽다, 분통하다.
장기화된 코로나 상황과 더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10만 원 치 장보기 콘텐츠를 찍으려고 맘먹고 슈퍼에 가도 그 10만 원을 가득 채우기가 어려워 늘 포기하고야 말았다. 한국보다 생활면에서 나은 점을 꼽으라면 나는 늘 물가를 이야기하곤 했다. 생활물가는 아직 한국보다 저렴하다고 항상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명품 가방 자랑은 못 해도 (적어도) 주부들의 부러움은 한 몸에 받았고 나는 돼지고기 보다 차라리 소고기를 먹는다며 우쭐거렸다. 참 부질없는 자부심이었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깨닫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남편과 두 사람이 잔뜩 이고 지고 와야 겨우 10만 원이던 장바구니 물가가 이제 나 혼자 몇 개 집어 담으면 십만 원을 훌쩍 넘는다. 장기화된 코로나 상황으로 주머니는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나는 요즘 슈퍼마켓에서 50유로를 넘기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계산기까지 두드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선식품은 날것보다 냉동으로, 닭고기 커틀릿도 완제품 세일하는 것으로, 달걀은 무항생제 비오(Bio) 제품만 먹던 나였지만 가장 저렴한 것으로, 우유나 아이스크림은 유통기한이 다가와 할인하는 것으로만 구매했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엔비(Envy) 사과를 집었다 내려놓으면서 생각했다.
“더 저렴하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대용량으로, 신선식품보다 냉동과 캔에 든 것으로만 구매하게 되면 물가상승은 곧 삶의 질과도 직결되겠구나.”
그리고는 갑자기 아찔해졌다. 외식도 배달도 없이 삼시 세끼를 내 손으로 차려냈는데, 이마저도 고르고 골라야 한다니.
남편이 지난주부터 일하기 시작하면서 장바구니 가득 신선한 채소와 과일 그리고 소고기 안심을 샀다.
‘역시 일을 하니 반찬이 달라지네.’
라고 남편이 말했다. 머쓱했으나 그 말이 맞았다.
‘돈이 있어야 건강한 삶도 유지할 수 있는 거’라고. 굉장히 이성적 성향의 사람으로 빙의하여 남편에게 부담감을 잔뜩 심어주었다.
밥상이 달라지는 것으로 동기부여는 충분히 된 것 같다.
제발 제발 이제는 노를 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