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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희 Mar 15. 2022

한글 뗄 때는 소중한글

한글을 늦게 익힌 아이

도대체 언제 12시가 될까.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고역이었다. 단 4시간뿐이어도,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한 3단 조립식 필통을 가져와도, 제일 아끼는 옷을 입고 가도 나는 난감했다. 한글을 떼지 못하고 입학했기 때문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서도 받아쓰기를 하는 날이면 마음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분명 어제 부모님과 단단히 훈련했는데, 내 공책에는 비가 쏟아졌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슬펐고, 얼른 집에 가서 엄마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그래도 한 달까지는 괜찮았다. 집에 가면 엄마가 “고생했어” 하면서 웃어주셨고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 내가 집을 비운 시간은 고작 4시간인데 —  맛있는 점심을 차려주셨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고, ‘그래도 괜찮지! 나는 행복하지!’ 하는 없었던 마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한 달이 넘어가고 두 달이 되자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다. 동그라미로 가득한 친구의 공책을 보는 것도, 모두가 자신 있게 받아 적는데 두리번거리며 멀뚱히 앉아있는 시간도, 무엇보다 몰라서 쓰지 못하는 나 자신이 괜찮지 않았다. 화장대 앞에서 잔머리 하나 튀어나오지 않게 머리를 묶고, 인기 있던 주먹만 한 머리 방울을 달고 학교에 가도 웃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집에 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학교는 내가 한글을 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고, 뗄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진도를 나갔다. 나는 막막함이라는 감정을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빨리 진도를 따라잡아야겠다는 생각보다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그날 저녁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학교는 언제 끝나?”

“12시가 되면 끝나지~”

“12시는 언제야?”


내가 부모님과 공부하는 걸 지켜보다 나보다 한글도 시계 보는 법도 먼저 뗀 동생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누나 그것도 몰라!


“큰 시곗바늘과 작은 시곗바늘이 시계 여기 가운데로 탁 겹쳐지면 12시야. 그럼 집에 올 수 있어.”


그 뒤로 나는 일등으로 교실을 뛰어나갔다. 아마 그때 나의 모든 것이 부모님을 걱정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내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뿐이었다. 여름이 되기 전, 엄마는 어디서 과외 선생님을 찾았다.


포근한 인상의 선생님은 인상과 다르게 봐주는 법이 없었다. 나는 널찍한 밥상 맞은편에 선생님과 마주 앉아 조잘조잘 떠들었다. 때로는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고 때로는 공부 그만하고 싶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꿈쩍하는 법이 없었고, 일찍 끝내주지도 않았다. 내가 얼마나 떠들든 지친 기색 없이 나를 가르쳤다. 내가 쓰는 낱말, 문장, 맞춤법에 집중하면서 하나씩 나를 바꿨다. 그렇게 나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과외를 받았다. 선생님과 헤어지게 됐을 때, 헤어진다는 게 뭔지 몰라 엄마 뒤에서 선생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의 나는 부모님이 아무리 책을 읽으라고 해도 책의 표지만 감상하고 다시 책장에 꽂아 넣는 어린이였는데, 선생님을 만난 뒤로는 늦게까지 책을 읽고 언제나 가방에 책을 가지고 다니는 어린이가 되었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오랜 기간 멀뚱히 앉아 내가 느끼는 곤혹스러움을 숨기기 바쁜 아이 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기 기억은 내게  가지, ‘노력하면  되는 일은 없구나. 나는 하나하나 알아갈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과 ‘내가 너무 느린 사람 아닐까?’ 하는 집요한 자기 의심을 남겼다. 슬프게도 자신에 대한 의심은 사람을 자주 뒤로 끌고 간다. ‘내가 느린 사람이라 이해하지 못한 건가?’ ‘놓쳤나?’ ‘내가  일을  해내기에 충분하지 않은 사람인가?’ 그런 의심이 들면 모른다고 말하기도 질문을 하기도 어렵다. 어린 내가  앞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나는 성인이 된 뒤에도 한참을 시작이 늦었다는 이유로, 내가 우둔하지 않은지  없는 불안을 안고 지냈다. 자기 의심을 떨치기 위해 많은 사람의 칭찬과 그리고 그보다  많은 성취의 경험이 필요했다. 무력하게도 어떤 때에는 내가 얻어낸 성취와 인정  어떤 것도 자신에게 안도감을 주지 못했고 자기 의심을 거둘 계기도 되어주지 못했다. 쉽게 자신을 몰아붙였기 때문에 얻을  있던 거라고, 나는 다른 사람보다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일수였다.




한글을 늦게 뗐던 저는, 이제 에이치투케이에서 한글 교육 앱 ‘소중한글’을 만듭니다. 소중한글은 과거 제가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던 선생님을, 인공지능 기술로 누구나 만날 수 있게 구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서비스와 다릅니다. 선생님의 실력은 개인의 역량과 경험, 태도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기술의 세계에서는 충분한 양의 데이터만 있다면 어린이 한 명 한 명에게 꼭 맞는 선생님을 만들어줄 수 있죠.


소중한글은 수많은 어린이의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어린이에게(이 어린이만을 위한) 가장 성공적인 커리큘럼을 설계합니다. 아이 실력에 맞춘 최적의 커리큘럼을 아이가 좋아하는 또 좋아할 확률이 높은 게임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2달 만에 쉬운 책을 읽어요” “1년이 걸려도 안 되던 일이 3개월 만에 됐어요” 이런 감사하고 놀라운 후기를 받기도 합니다. 저의 팀은 질 좋은 교육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 또 첫 학습부터 아이가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고민합니다. 첫 학습, 첫 배움의 경험은 의식하지 않아도 아이에게 각인되기 쉽기 때문에, 이 시기를 어려움 없이 보낼 수 있도록 효과가 검증된 학습법을 준용하고 그 내용을 서비스에 녹였습니다.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지만, 일을 하면서 여러 바람을 담습니다. 모든 어린이가 (장애가 있어도, 난독이 있어도) 쉽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기를, 길을 걸어갈 때 간판 읽는 재미에 빠질 수 있기를, 본인의 이름과 부모님의 성함을 멋지게 쓰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기를, 처음 보는 단어도 쉽게 읽어내기를, 두려움 없이 학교에 갈 수 있기를, 책과 언어가 주는 신비로움에 빠지기를.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데 소중한글이 가장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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