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착각이다.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착각(錯覺)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틀(동굴)에서 착각을 하고 당연시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대한 잘못된 틀을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잘못된 틀이란, 가르치고 배운다는 인식에서 틀이 잘못 형성됨을 의미한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려 하지 아니하고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 공간은 절대적인 단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그것은 위험하다. 특히나 1:n의 교육에서 그것은 권력이 되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교육은 권력이 아니다. 쌍방향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지식과 경험을 갈구해야 한다. 유교권 문화에서 1은 강력한 권력을 지닌다. 로버트 그린_Robert Greene이 말한 권력의 원천인 상징과 평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유지하고 발휘하는 것을 보람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것은 보람이 아니다. 힘든 일에 대한 보상이며 자기만족일 뿐이다.
진정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1은 n 속에 묻어나야 하며 n은 1이 되어야 한다. 1은 ‘A=B’라는 지식을 주입식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무리 속에서 배우는 자들이 스스로 ‘A=B’를 느끼게 해야 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게 해야 한다. n은 ‘모르기 때문에’가 아니라 ‘또 다른 앎’을 위해 접근해야 한다. 거기에 다양성이 존재하고 계발(啓發)이 만들어진다.
착각하지 마라.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지식도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흐른다. 하지만 물과 지식이 다른 것은 물은 자연이지만 지식은 인간 영역이라는 것이며, 인간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투(企投)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알려하고 알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모호한가?
쉽게 말해 선생님은 알기 때문에 모르고 학생들은 모르기 때문에 알고 있다. 선생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 생(生)을 이루는 만큼 고지식하다. 그것은 진정 아는 게 아니며 옳은 것도 아니다. 단지 옳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단정 짖거나 의미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처럼 말이다. 반면 학생은 모르기 때문에 알고 있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실에는 가까울지 모르나 진실과는 거리가 있음을 안다. 답을 알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 답을 알아가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이다.
교육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어떠한 권력도 존재하지 않는 평등 속에서 뇌는 편안함을 느끼고 창의적인 발상을 하게 된다. 수학에서 수학을 가르치지 말고 과학에서 과학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지식은 교과서처럼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라 실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착각하지 마라.
선생은 배우려 하고 학생은 가르치려 할 때
진정한 지식에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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