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여행한다는 것
*브런치 무비패스 참여 작품입니다(글은 'elric13'이 대신 작성하였습니다)
트립 투 스페인(The trip to Spain)은 다큐멘터리 같으면서도, 담백한 예능, 잔잔한 영화 같이 다양한 느낌을 담고 있었다. 스티브 쿠건은 완전히 일상 속에 있던 롭 브라이든에게 스페인 여행을 제안하고 롭 브라이든이 흔쾌히 수락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에서 여행을 비추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 둘이 함께 길을 걷고,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시고, 웃음을 나누는 장면과, 그 둘이 각자의 숙소에서 보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에 대한 장면들이 그것이다. 삶을 하나의 긴 여행이라 생각한다면, 각각의 장면은 우리 삶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배우자든 친구든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삶이며, 누군가를 책임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 삶의 책임은 나에게 있으며, 결국은 나의 몫인 것이다.
굳이 이렇게 확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영화에서 보여준 장면들을 떠올리면 삶과 여행을 구분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계획을 세우고 그 길을 따라가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극복하고, 또 나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닮았다.
특히 스티브의 모습을 비추는 장면에서 롭과 함께 있는 장면에서의 스티브의 모습과 혼자 있을 때 스티브의 모습의 괴리는 삶의 무거움과 책임의 크기를 여과없이 보여주면서도 삶이란 그리 나쁘지 않음을 동시에 보여주며 그 둘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 커리어에서의 위기감, 사랑에서의 장애물, 가족의 문제 등 어찌보면 삶의 어두운 단면을 더 많이 비추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것에서 얻는 즐거움과 가치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만큼의 어두운 단면이 모여야 균형이 맞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행의 시작 쯤 롭은 돈키호테 처럼 모험을 떠나자 얘기하고, 스티브는 아직 우리가 즐길 것들이 너무나 많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롭은 여행을 여행답게 즐기고 일상으로 돌아온 반면, 스티브는 이곳 저곳을 여행하다 마지막에는 자동차 기름이 떨어지는 위기까지 발생하는 등 모험아닌 모험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행하는 그 순간을 즐긴 것은 롭이고, 모험을 떠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스티브다. 이런 결말도 삶은 하나의 여행이며,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티브는 여행을 떠나올 때 계획한 많은 것을 지킴(여행 경로, 식당 등)과 동시에 지키지 못했고(글쓰기, 아들과의 만남 등) 결국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한 위기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또 동시에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계획한 것들이 어그러짐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모험이 시작된 것은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우리의 삶과 영화 속 그들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관객들은 가벼우면서 결코 가볍지 않은 많은 대화와, 짧게 스쳐지나가는 다른 손님들의 식사장면과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 여행 도중에 만난 다른 일행들과의 식사, 예기치 못한 소식들, 이 모든 것이 여행을 기록하는 장면이며 삶의 기억임을,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 질 수 있음을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