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처음 온 비글 베리
베리는 농장에서 왔다. 아주 오래전, “우리 친구 합시다”라며 화성에 있는 한 포도 농장 사장님과 호형호제 한 아버지의 쿨한 스토리가 기억난다. 그 이후 철마다 우리 집엔 포도와 블루베리가 가득했다. 농장 일은 품앗이가 기본. 주말이나 시간이 허락할 때면 부모님은 화성에 다녀오시곤 했다. 베리는 그곳에서 태어난 덕분에 지금 내 옆에 있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비글이란 아이라는데, 데려와볼까?”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당시 아버지는 은퇴 후 집에서 쉬고 계셨고 나 또한 한창 재택근무를 할 때였다. “종은 상관없고 비글이 크기는 조금 클 거야, 아버지 운동 겸 산책 같이하고 나랑도 자주 산책 나가면서 함께 살면 좋지 “라고 답을 하고 화성으로 차를 몰았다. 당시 4살이던 조카 하윤이도 구경 가고 싶다며 뒷자리에 올라탔다. 농장 큰 울타리 안에는 비글 부모 두 친구와 아가 10마리가 비글비글 하고 있었다. 대부분 농장 지인들에게 곧 갈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오던 베리를 안았다. 계속 밖에 있었기에 꾀죄죄했고 냄새도 난 게 사실이지만 옷이 더러워지든 베리가 내 품에 쏙 안기는 그 느낌이 오히려 아늑했다. 다른 고민도 별로 없었다. 외모가 뭐가 중요하니, 나한테 잘 안기면 됐다는 생각에 “가자” 라며 데려오게 됐다. (사실 예쁘기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조카와의 대화 주제 100은 베리의 이름이었다. 별의별 이름이 다 나왔다. 로이, 미미, 주주,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약 50개 정도의 이름을 가지고 4살과 34살의 진중한 토의가 시작됐다. 그러다 조카에게 물었다. “지금 저 농장이 뭐 하는 덴지 알아?” 4살 조카는 자기를 무시하냐는 듯이(물론 그렇게 건방지게 얘기한건 절대 아님) “할머니가 매번 포도랑 블루베리 가져다주는 곳이 자나”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조카는 바로 “베리”를 소리쳤다. 의미도 있고 부르기도 쉽고 4살짜리 아가도 아나운서와 같은 발음이 가능한 그 이름. 베리로 짓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미리 준비해 둔 용품에 부족한 것들을 구매하여 집에 도착했다. 베리란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집에 와서도 벌써 꼬리를 흔들며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집안 곳곳을 누비며 영역 표시도 하는 등 마련해 둔 집에도 쏙 들어가기도 했다.
집안 사정으로 여러 차례 이동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베리를 제일 우선으로 챙겼다. 혹시나 환경이 달라져서 혼란스러워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우려와는 달리 가장 씩씩한 환경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베리의 진면모가 드러났다. 비글다운 넘치는 에너지와 친화력. 최대한 빠르게 산책을 시작했다.
베리의 아가 시절은 이름답게 상큼하고 톡톡 튀었다. 지금보다는 들 또릿한 이목구비에 멍뭉미의 얼굴을 하였지만, 어디 갔나 찾지 않아도 늘 존재감을 보여줬다. 아이스크림을 들면 다가와 자기 귀만 한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시퍼렇게 뜨기도 하고, 밥이 모자라면 밥그릇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놀고 싶을 때의 의사 표현도 매우 분명했다. 장난감을 물어온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장난감은 곧 못쓰게 됐다. 베란다로 창밖을 열심히 바라본다. 안 나가면 침대까지 쫓아 올라와 내 손을 자꾸 긁는다. 어렸을 적 너무 오냐오냐 말을 들어줘서 그런지 분리불안이 생긴 것도 사실이긴 하다.
아가 시절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사람 아이도 아가 시절은 어떤 부모든지 힘들어한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힘듦보다 행복을 더 크게 느끼고 어느새 이렇게 컸나 생각한다. 우리가 반려견 친구들을 바라보는 것도 이와 다를 바가 없어야 한다. 똥꼬 발랄하던 시절이 지나 훗날 호호할머니가 되어도 이 친구들에게서 반려인은 평생 부모이자 가족이다. 부디 아가 시절, 그리고 모든 순간에 처음 이 친구들을 데려올 때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