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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황 Apr 25. 2023

사랑과 창의성

"엄마, 나 예뻐?"


은아, 잠이 들 시간이야. 너는 완이에게 내 오른쪽 옆구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을 날렸지. 매일 상심하는 완이는 아빠 곁으로 갔고 너는 내 옆구리를 끌어안고 변함없이 물어. "엄마, 나 예뻐?" 나는 매일 듣는 질문인데도 말을 하는 것이 항상 어려워. 예쁘니까 예쁘다고 하면 되는데 어째 항상 그 질문이 대답하기 어려운지... 네가 내 속에 들어와 생각을 읽는다면 엄마는 진짜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혀를 차게 될지도 모르겠어. 예쁜 사람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너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 나는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내 얼굴은 전혀 예쁘지 않다. 그래서 예쁨을 받으려면 예쁨 받을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어려우니 사랑을 받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라는 비관을 하면서 살았어. 납작한 뒤통수, 쌍꺼풀 없는 눈, 남들보다 몇 밀리미터는 더 앞으로 튀어나온 부정교합 턱, 푹 꺼진 광대, 평평한 허리선, 옆으로 툭 튀어나오고 굵은 허벅지, 처진 뱃살...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지가 않아. 그래서일까. 나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거울 보는 데 쓰고, 남보다 매우 적은 시간을 자신을 칭찬하는 데에 썼어. 나는 부모에게 "나 예뻐?"라고 물어본 적도 없어. 부모님도 내가 칭찬받을 때 말고는 예쁘다는 말씀을 거의 하지 않으셨지. 다른 책에서 봤는데 '착한 행동을 해서 칭찬받을 만하다'라고 할 때, "예쁘다."라는 말을 쓰는 한국인들이 신기하다고 했던 글이 있었어.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중) 외모의 아름다움, 보기 좋음을 마음씨에 적용하는 것이 한국계 미국인에게 매우 생소했던 것이지.



내가 무표정으로 걸어 다니거나 수업을 하면 '카리스마'라는 것이 뿜어져 나온다는 말을 옛적부터 들었어. 그래서일까. 나는 시력이 좋지 않아서 머리 길이, 치마 길이, 컬러렌즈 사용 여부를 제대로 판독할 수 없는데도 그런 것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교내에서 했지. 다른 이유로도 괴로웠어. 남을 괴롭히는 일도 아니고, 실제로 화장을 하거나 컬러렌즈를 끼면 더 예쁘게 보이긴 하잖아. 자신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10대에게 "그런 것 하지 마.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예뻐."라면서 고데기, 컬러렌즈 담금통, 손거울을 압수하는 일이 괴로웠어. 화장하고 공부하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증거가 있나? 파마를 하면 외출을 더 많이 한다는 통계가 있어서 지금 이런 감독을 하는 건가? 아니, 나는 월급 받고 일해도 그렇지 이게 부당하다는 말을 왜 못 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 내가 아는 여학생들은 대부분 화장을 하고, 화장을 못한 날은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 들어왔지. 아무리 봐도 얼굴을 모르겠으니 벗고 학번과 이름을 알려달래도 꿈적도 하지 않았어.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을 무방비 상태에 노출시키고 원치 않는 일을 당하는 원인이었던 셈이지.



어떤 일에 노출될까? 요즘 '핵토'라는 말이 있다더구나. '핵공포 수준으로 토 나오게 못 생겼다.'라는 뜻 이래. 민낯으로 지나갈 뿐인데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견딜 수가 없을 거야. 실제로 나는 고2 때 남자반(남녀공학이었지만 남녀가 같은 반이 아니었지.)으로 선생님 심부름을 갔을 때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해. "여자다! (잠시 후) 여자긴 여자네." 내가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구의 발을 밟은 것도 아닌데 단지 머리를 짧게 치고 교정을 하고 있으며 안경을 낀 학생이라는 이유로 '핵토'와 같은 말을 들었던 거야. 예쁘지 않으니 '진짜 여자'는 아니고 여자 흉내를 내는 뭐 그런 종류의 인간이라는 거지. 굳이 옛날 얘기를 들 필요도 없어. 아까 스마트폰을 보는데 이색 게임을 알고리즘이 추천하더라고. 머리가 치렁치렁 길고 얼굴에 화장 없이 음울하게 앉아 있는 여자가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버림받지. 그랬더니 아기를 안고 찾아간 곳이 메이크 오버 룸이야. 그다음부터는 구매 버튼을 눌러야 이 여자의 삶을 바꾸는 메이크 오버를 할 수 있는 거야. 이 정도는 약과지. 결혼할 남자를 찾아야 된다고 네 할머니(그러니까 내 어머니)가 하도 성화를 하셔서 할 수 없이 모르는 남자들과 억지로 대화했던 때가 있었어. 네 아빠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모든 만남이 물거품이 됐을 거잖아. 그중 한 사람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이유를 이렇게 대더라고. "잘 꾸미지 않고 세 보여요." 그 말을 들었던 네 할머니는 내 턱에 보톡스를 주사하고 쌍꺼풀을 시술하기 위해 애쓰셨지. 내 물건을 모두 바닥에 내리꽂는 항의를 하고 나서야 나는 가족의 횡포를 멈출 수 있었어. 내 눈이 쌍꺼풀 동그란 눈일 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오래갈 수 있는 사랑일까? 이처럼 '아름다움'만큼 효과적인 통제도구는 없어. 모멸만큼 강력한 협박 도구도 없지. 기준이 자의적일수록, 일상적일수록, 모두의 욕망이 될수록 통제 효과는 커져. 통제당하는 사람이 알아서 스스로 일상을 검열하고 내면에 장착해 버린 CCTV를 돌려버리니까 말이야.(김소민,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32쪽~33쪽)



이 속에서 나를 비롯한 대다수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괴롭히지. 엄마처럼 실컷 먹고 일정량을 토하든지, 어떤 사람은 이 증세가 심해져 거식증을 앓든지, 누군가는 '의느님'의 힘을 빌려 눈 비비고 다시 쳐다보는 수준으로 새로 태어나지. 네가 좋아하는 엘사의 얼굴처럼 눈은 동그랗고 두 볼의 광대는 적당히 부풀려 있으며 입은 체리같이 붉게. 그러면서도 보는 이에게 무해함을 전달하는 얼굴. 그런 얼굴은 실제로 인기가 많거든. 호감도 쉽게 사.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엘사와 완전히 비슷하지는 않아도 엘사와 비슷한 눈, 조그만 얼굴, 선홍빛 볼을 지닌 미녀가 있어. 인근 학교 교사인데 방과후학교 수업도 매번 개설되고 "선생님이 예뻐서 좋아요."라는 편지도 숱하게 받는대. 이런 여성이 주변에 단 하나라도 있으면 어떻겠니? 아니, 없어도 마찬가지야. 스마트폰을 열면, 텔레비전을 틀면 눈부신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다음부터 내 얼굴은 어떤지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자신의 얼굴에 당당하기가 어려워. 그걸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극복하다 보면 자신이 처참해지는 날이 있단다. "아유, 내 얼굴 밑에 손가락 이렇게 되면 어떻다? 어묵, 어묵!"이런 말을 개그랍시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웃기고 돌아와서는 왜 주책을 부렸는지, 정말로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지 수심에 잠기는 것이지. 욕먹을까 미리 남을 의식하고 먼저 나를 욕해버리는 이 가학적 마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나를 사랑하겠니, 또 어떻게 용기를 발휘해 생의 모험을 감행하겠니. 내 얼굴이 이래서, 내 몸이 별로라서 곤경에 처하면 구해줄 왕자님도 오지 않을 텐데.



나는 네가 나처럼 괴롭게 살지 않기를 바라. 네가 잘 때마다 내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면 "엄마, 나 사랑해?"라고 물어보라고 하고 싶어. 그런데 그 이유를 이렇게 길게 설명할 수가 없어. 이 세상은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잰 아름다움의 틀에 맞는 여자'를 예쁘다고 한다고. 너는 그 틀로 재도 예쁘지만 나는 너를 그 틀대로 보고 싶지 않다고. 너는 세상에 너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네 몸이 나이가 들면서 형성되는 과정 그 자체를 보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아니 그것보다 네가 네 몸을 보면서 나처럼 울고 어떻게 해야 남들에게 사랑받을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내 고민, 내 약한 몸, 심성의 아킬레스건을 따뜻하게 안아줄 관계를 원해. 반면 나의 겉모습같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매우 불안할 테지. 그렇다면 너도 네 자신을 그렇게 대해야 하지 않겠니? 네가 품고 있는 고민, 네 얼굴에서 맘에 들지 않지만 남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따뜻하게 대하며 한 번 애정 어린 손길로 만질 때 남들도 너를 그렇게 대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니? 또 내가 이런 강력한 사랑을 받길 원한다면 나도 남을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황금률을 지켜야겠지. 그 사람의 외모가 보기 좋고 남 앞에서 팔짱 끼면 더 자랑스럽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사랑해서는 안 되겠지. 호감을 사랑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그 사람의 얼굴과 몸에 깃든 이야기를 경청하기, 그 이야기를 꺼낼 때 그 사람이 주저하는 표정에 작더라도 따뜻한 미소로 답례해 마음을 놓게 해 주기 등을 할 수 있을 거야. 교보문고의 빌딩 앞에 걸려 이제는 누구나 인용할 수 있게 된 시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나태주) 마음에 품고 있어야겠지. 그때에야 각자의 고유한 '예쁨'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나아가 내 곁을 내주는 사람들에게 감탄하게 될 거야. 나는 네가 많은 노력을 해서 누구나 보지만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내면의 이야기들에 감탄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은아, 오늘도 "나 예뻐?"라고 내게 묻겠지.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어. "응. 너는 은이라서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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