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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n 18. 2024

알게 되면, 보인다

(2024.06.18.)

입학할 때부터 정서적으로나 겉으로 드러나는 성향과 기질이 지금껏 내가 만났던 아이들과 달랐던 우리 반 아이들. 화장실도 자주 가고 물도 자주 먹고 방금 이야기 한 것도 되묻는 횟수도 잦고 마냥 어리광도 많고 그만큼 애교도 많고 사랑스럽고 귀엽기도 그지 없고. 그래서 그런지 학습에 대한 관심도나 집중도는 덜 한 편이고 그러다 보니 계획했던 것보다 학습진도는 느린데, 그렇다고 다그치기에는 아이들의 성향과 기질이 그것을 따라오지 못할 것 같고 괜한 학습 스트레스를 과정 시킬까 걱정이 돼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지내온 지난 넉 달.


그래도 정말이지 다행이고 고마운 것은 학교가 즐겁고 수업에 몰입하고 집중력을 높아가는 모습이 보이고 나를 무척이나 좋아해주고 따르고 몇몇 녀석들은 때때로 내게 대들고(?) 성깔을 부리지만, 이내 다가와 언제 그랬냐는듯 살갑게 대하며 한 없이 웃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한동안 나 또한 학교 오는 게 너무도 편했다. 지난해엔, 아니 지금까지 만난 1학년들 하고는 무엇을 좀 더 가르쳐 주지 하는 생각으로 수업을 준비하며 거기서 재미와 보람을 느꼈는데, 이번의 아이들은 완전 다르다.


그래서 고민이 더 많아진다기 보다 이 아이들의 귀엽고 살가운 기질을 어떻게 잘 유지하고 살려 줄 수 있을 지를 생각하고 있다. 오늘도 별 거 아닌 우리 옛노래와 놀이가 결합한 대문놀이를 하는데, 이 간단하고도 단순한 놀이에 아이들은 푹 빠져든다. 서로 술래를 해보고 싶어하고 단순한 움직임에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연극강사가 조금 늦는 듯하여 수건놀이도 준비하여 하려 했는데, 막 시작할 무렵 들어오신 바람에 하지 못했더니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해 보고 싶다고 난리였다. 이것보다 더 훨씬 재미있었던 연극수업 때 놀이를 했었는데도 말이다.


한 아이는 자신의 앨범을 잔뜩 가져와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아이는 집에서 재밌게 읽는 동물 그림책을 가지고 와 나랑 읽어보고 싶은데, 부끄러워 하고 또 다른 아이는 내가 좋다고 맨 날 노래 부르고 다니고 여자 아이 둘 밖에 없어 요 아이들을 잘 챙기고 싶어 여름방학 놀러가기로 약속을 했더니 벌써부터 기대에 차서 어쩔 줄을 모르고. 동화책 <화요일의 두꺼비>를 읽어줄 때, 중간에 읽다 다음에 읽겠다고 넘어갈 때, 원망 섞인 목소리를 내뱉을 때의 모습까지도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들.


밥 먹을 때, 음식들을 한 입은 먹었으니 그만 먹으면 안 되냐고, 맛있는 후식을 먼저 먹으면 안 되는 거 알면서도 밥 앞에서 먼저 먹을 수 없냐고 100일이 지나도록 날마다 묻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도 또 묻는 아이들. 식판 음식 싹 비워놓고도 나 보고 다 먹었는데 그만 먹어도 안 되겠냐는 엉뚱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 밥 다 먹고 나 먹고 나올 때까지 급식실 밖 소파에 들어 누워 나를 마냥 기다리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알면 알 수록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더욱 더 생각하게 된다. 이 아이들을 더 잘 도울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 지를 말이다.


요즘 젊은 교사 커뮤니티에서 1학년 100일 잔치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는 소리를 들었다. 굳이 100일을 만들어 챙겨주는 일부 교사들의 행태를 비난하기도 하는데,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서비스업이 아닌 교사들이 마치 학생들을 떠 받들어 스스로 교사 자신의 노동을 낮춰 착취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을 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지금껏 1학년과 지내면서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하며 담임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었다.


교사로서 교육의 길을 가는 지점에서 100일은 마냥 사량스럽기만 아이들의 입학 성장을 축하해 주고 싶었던 자발적인 실천이었지 서비스로 그들의 호응이나 칭찬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날, 한창 젊었을 적 청년교사였던 나는 5월 5일 어린이날에 부모님들이 바빠 딱히 즐기지 못했던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다녀왔던 적이 많았다. 그 시절 나는 그들에게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내 곁에서 사는 아이들을 돕고 싶었던 마음 뿐이었다. 이런 실천을 그저 서비스 행위로 전락시키는 발언과 주장을 나는 그닥 용납하고 싶지  않다.


보호자들의 교육적 관심의 부재와 별도로 교육하는 교사들의 교육적 관심과 부재도 현재 교육을 왜곡 시키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의 삶을 돕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 가를 따지기보다 내게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 하고 즐기는 행위까지 무시 당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동네병원까지 동참하는 등 환자와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환자 곁에서 싸워야 한다며 의견을 달리하는 의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제 신문 기사에서 읽었다.


정부의 무모하고도 무식한 의료 정책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의료인들의 행위가 비판을 받듯, 교사 스스로 자신의 전문성을 높여가며 정당하고도 의로운 때때로 즐기는 실천이 병행이 되지 않는다면 교사들도 언젠 가는 많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직업이 될 지도 모른다. 비판과 비난에 앞서 자신의 곁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의 삶에 좀 더 천착하고 그 곳에서 답을 찾는 길을 나누며 살아가야 할 때이다. 어려울수록 답은 거기에 있다고 본다. 선배교사들과 동료교사들을 탓하기 전에 교사가 스스로 사는 길은 어린이와 함께 길을 걸을 때이지 혼자 소리를 높인다고 될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길이 보일 것이다.


지난 넉 달은 우리 아이들을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새삼 다른 아이들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보이는 게 있었으니 이제 남은 다섯 달은 그 모습을 잃지 않게 유지하면서도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이들로 키울 수 있도록 좀 더 내가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아침 출근 길 교실 앞 현관 앞에 붙은 작은 청개구리를 만나면서 기분 좋게 출발을 하였다. 날마다 청개구리 같은 아이들과 지내는 줄 어떻게 알고 요 녀석이 우리 교실 앞 현관문에 붙어 있었는지 참으로 알다가고 모를 일이었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 지 107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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