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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Oct 30. 2024

하루와 주의 리듬이 깨질 때

(2024.10.30.)



오랫동안 교직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아이들과 하루와 주, 달을 살면서 학급살이 공부도 하면서 별 것 아닌 평범한 하루의 리듬과 주의 리듬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는 건 내게 너무도 중요했다. 아무리 상담이 들어가고 수준 높은 수업을 준비해도 일상이 무너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누구나 경험한 일상이 차곡차곡 알차게 쌓였을 때, 아이들이 비로소 균형감 있는 성장을 한다는 것이 그동안 공부한 것에서도 있었고 내가 아이들과 겪으면서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각종 학교 행사가 겹칠 때면 내심 불편하고 답답하다.


벌써 한 달 째 학교 행사는 아이들 삶의 리듬을 깨뜨렸다. 불가피한 행사라고 하지만, 교육과정이 정상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제도 작가초대가 날짜가 바뀌고 처음에 예정한 바와 다르게 움직이게 되면서 이번주만 해도 우리 반은 작가초대를 두 번을 하게 되고 주의 리듬이 깨지게 됐다. 더구나 오늘 11월 1일 저학년 연극제 발표 준비로 연습을 위한 수업이 집중되면서 정상대로 진행되는 건 애초 불가했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배움이 일어나는 지점이 끊기고 한동안 다른 것을 하게 되면서 오는 빈틈을 다시 메꿔야 하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넘기도 어쩌겠나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 빈틈이 공립학교에서는 격차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과정은 매우 섬세하고 일관되면서도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언제든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 언제나 일관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소신이 없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격차에서 소외된 아이들에게 간다. 바쁜 일상으로 자녀를 챙기지 못하는 부모의 책임으로 넘겨진다. 오늘도 이런 걱정과 불편 속에서 그렇지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하는 하루였다. 남은 두 달 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독려하고 부족한 부분을 챙겨나가야 한다.


오늘은 연극수업으로 시작을 했다. 그동안 연습해왔던 낭독극을 무대에서 직접 연습해 보는 첫 날. 시작부터 방방 떠 있는 아이들을 진정 시키고 자잘한 주문을 하고 불필요한 행동과 말을 하지 않고 연극을 하는 자세부터 단단히 당부를 해야만 했다. 아직도 우리 반 아이들 중 몇몇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해서 여러 번 확인을 해야만 했다. 무대가 바뀌고 상황을 인지했는지, 교실에서보다는 훨씬 나아진 모습이었다. 여전히 챙겨야 할 지점이 있었지만, 남은 기간 동안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아이들에게 90점이라며 격려를 하고 내일 100점을 맞자 했다.


잠시 뒤에는 <숲속재봉사의 옷장>의 저자 최향랑님이 오시기 때문에 서둘러 나가야 했다. 오늘은 중간놀이가 없는 수요일이기도 했지만, 잠시 아이들에게 쉴 시간을 주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쉬는 게 아니라 노는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런 틈들이 아이들에게는 분명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쉬는 시간 뒤에 우리는 최향랑작가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자연물을 가지고 알록달록, 아기자기하게 꾸며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작가님의 책을 이미 만난 아이들은 기대가 커 보였다. 오셔 이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해주시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책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따로 질문을 받으며 책 내용을 확인하시는 작가님 덕분에 아이들은 또 책을 세 번 만나게 된 듯했다. 이후로는 작가님이 준비해 오신 재료로 실제로 우리 아이들이 그림책 속에 나오는 등장 동물과 옷장, 그리고 옷장 속에 넣을 옷가지를 색연필과 사인펜, 그리고 압화를 사용해 꾸며 장식을 하는 시간. 아이들은 매우 진지하게 참여했고 도우미 선생님과 나, 그리고 작가님의 유기적인 지원으로 아이들은 수월하게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흥미와 재미까지 챙겨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정성스러운 사인타임. 사진 한 장. 그렇게 작가님와 나, 아이들은 또 하나의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작가님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서로 연배가 비슷하다는 것, 둘 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들을 가진 공통점, 더구나 그들이 동갑이라는 것. 그리고 작가님 딸은 미술 쪽을 우리 아들은 음악 쪽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구미에서 작가님 작품으로 전시회도 하고 있다고 해서 다음 책을 내신 뒤에는 우리 지역에서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이런 저런 문의도 해 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작가님을 보내고 우리 반 아이들은 2학년, 유치원과 함께 천안 학생문화회관으로 가서 우리 학교 연극동아리 학생들의 작품을 관람하고 오기도 했다. 우리 학교에서 새롭게 강력하게 추진하는 연극교육과정이 연극동아리로 빛을 보기도 했다. 이번에 아산 지역에서 우승을 했던 것.


오늘 하루의 리듬은 일상과 달랐지만, 아이들은 즐거워 했고 나는 빈틈이 보이지 않게 애를 썼다. 남은 두 달은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242일째였고 아이들과 헤어질 날을 64일 앞둔 날이기도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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