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9.)
"선생님, 북스타트 공책 이제 거의 다 해가요."
"보자? 얼마나 남았는지. 어, 그렇네. 이제 다 끝이 보이네."
"선생님 일기장 이제 다 써 가요."
"그러네, 새 일기장 줘야겠네."
"선생님, 다 쓴 일기장 가져 가면 안 돼요?"
"나중에 선생님이 다른 거랑 다 모아서 줄게."
12월이 끝자락에 들어서니 일상의 활동들이 마무리 돼 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그것에 따르는 각종 공책 같은 결과물들이 차곡차곡 끝을 맺고 있다. 이걸 언제 다 하나 싶었던 것을 꾸준히 하니 마무리가 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나름 꽤 뿌듯해 하고 놀라워 한다. 이걸 다 했다며 자랑스러워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저학년이든 고학년이든 무엇을 끝까지 해내는 경험을 잘 못하고 수박 겉 핥기로 두루두루 맛보고 체험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항에 놓인 아이들이 대부분 어려운 것을 끝까지 힘겹게 시간을 두고 해 보는 게 별로 없다. 해보다 재미없으면 포기하고 흥미를 잃으면 다른 걸 찾아 마치 유목민처럼 체험도 학습도 떠돌이를 했던 것.
어른들도 무언가 끝까지 해 보게 하기 보다 아이가 싫어하면 금방 다른 걸로 바꿔주다보니 모든 학습 과정에 힘듦과 사고가 녹여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깨닫게 해지 못하게 되고 있다. 많고 다양한 체험도 좋지만, 무언가 한 가지 선택을 하고 집중하여 긴 시간을 두고 힘들더라도 결과가 썩 좋지 않더라도 해 보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성장하게 되고 배우는 것이 어떤 맛이 있고 가치가 있는지 깨닫게 된다. 2학기 들어서 우리 아이들은 읽고 쓰고 일과 수와 연산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바쁜 학교 일정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이 리듬을 잃지 않게 하려 애를 썼다. 그래서 뒤쳐진 아이들은 비슷하게 따라올 수 있었고 2학년을 준비할 수 있게 됐고 앞서 가던 아이들도 함께 속도를 맞춰 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자기 가 쓴 글을 담은 문집을 머지 않아 만나게 될 것이고 학년(급) 마무리 잔치할 때는 1년 동안 모아 놓은 학습물을 전시하며 배움과 성장의 어느 지점에 자신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난 아이들에게 이런 지점을 확인하게 하는 것, 자신이 꾸준히 해 온 것이 어떻게 존중 받을 수 있고 그것을 왜 귀하게 여겨야 하는지 깨닫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오늘은 잠깐이나마 아이들 입말에서 바로 그 지점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갑고 고마웠다. 오늘은 국어시간에 <맨 처음 글쓰기>로 그림씨 '맑다'를 익혔다. 그리고는 수학시간에 규칙찾기로 이제 1학년 수학을 마무리 지을 준비를 했다. 마치고 아이들을 돌려 보내려는데 재*이가 내일 연극시간이 있지 않느냐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설레하며 기대를 품는 모습을 보인다. 1학년 아이들이 배우는 것에 설레고 기대를 품는 과정과 곁에 내가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 하루였다. 끝으로 오늘 받은 일기 중 남겨 두고 싶은 글 세 편을 올려둔다.
오늘은 아이들과 지낸지 282일째 되는 날이었고 아이들과 헤어질 날을 24일 앞두고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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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년 12월 7일 토요일
날씨: 겁나 추운 날
제목: 아빠 잔소리 | 문**
누나가 때밀이를 할 쯤 아빠가 오셨다. 나는 인사를 할 때 마음 속으로 했다.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내가 인사를 했는데, 오늘은 "오냐."라고 안 했다. 목욕을 다 하고 색칠 공부를 했다. 근데 아빠가 물었다.
"00야, 너 목공풀 섰니?"
"응."
"아빠가 목공풀 쓰지 말랬지. 다음에는 아빠 할머니한테 물어 보고 써. 알았지?"
라고 말했다. 다음에는 아빠나 할머니한테 물어보고 목공풀을 쓸 거다.
날짜: 2024년 12월 6일 금요일
날씨: 콧물이 내려서 고드름이 된 날
제목: 누나는 내 마음도 몰라 | 송**
오늘은 누나가 서울로 체험학습을 갔다. 누나는 서울 갈 생각에 로켓트처럼 엄청 일찍 일어나고 세수하고 양치를 치타처럼 빨리 했다. 누나는 평소에 엄마가 일어나라고 하면 이불 속에서 겨울잠 자고 있는 북극곰 같았다. 학교 버스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학교 안에서도 못 보고 급식실에서도 못 보니 누나가 엄청 보고 싶었다. 학교 버스에서도 누나가 없고 학원 버스 탈 때에도 내 마음이 무섭고 불안했다. 누나랑 있을 때는 장난치고 놀리고 싸웠는데 갑자기 누나가 보고 싶어서 아빠차를 타고 거산초로 갔다. 누나가 올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계속 기달리니깐 버스가 왔다. 문이 열리고 엄마한테, "엄마~~~~~~!". 내가 누나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엄마한테 가서 안아주었다. 그 다음에는 아빠를 안아주고 나만 빼고 다 안아주었다. 나는 누나가 엄청 보고 싶었는데. '누나는 내 마음도 몰라.'
날짜: 2024년 12월 8일 일요일
날씨: 오토바이처럼 빨게 지나간 가을
제목: 우르르 쾅쾅! 뱃속 전쟁 | 이**
오늘 점심을 먹고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데 '으아아악' 배가 우르르 쾅쾅! 내 배에 움식물 전쟁이 난 것 같았다. 난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고 '으아아아앙' 뱃속이 너무 아팠다. 난 계속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울어도 소용없었다. 내 매는 여전히 '우르르 쾅쾅!' 난 배가 계속 아파서 응가를 빨리 싸고 나왔다. 내 배는 응가를 싸도 '우루르 쾅쾅'이여서 엄마가 약을 먹여줬다. 그리고 안방 침대에 누워 배 찜질을 하면서 쉬었다. 찜질을 하니 배에 전쟁이 끝났다. 전쟁은 무섭다. 내일은 전쟁이 안 났으면 좋겠다. 설사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