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0.)
어제부터 달달달 네댓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일기를 읽어 달라고 난리였다. 어제는 시간이 없어 오늘 아침에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을 했는데, 그걸 잊지 않고 아침에 오자마자 일기장을 내밀며 읽어 달란다. 이제껏 만난 아이들 중 자기 일기를 읽어 달라며 졸라댄 아이들은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 싶다. 대게 우리 반 아이들이 일기를 읽어 달라고 할 때는 일기를 열심히 쓴 날이거나 재미난 글감이거나 다른 아이들 읽어주는 게 부러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침부터 난 지난 주 일기랑 어제 일기들 중 몇 편을 들려주었다. 어찌나 킥킥 대며 웃던지. 그리고 어찌나 뿌듯해 하던지. 자기 삶을 읽어주길 바라고 자기 삶을 다른 친구들과 나누기를 기꺼이 바라는 아이들과 사는 나도 참 기분이 좋다.
2024년 12월 9일 월요일
날씨: 핫팩을 가지고 다니기 딱 좋은 날
제목: 잔치가 열렸네~ | 이**
오늘 내가 기다리던 맛있는 잔치국수를 먹었다. 내가 잔치국수를 좋아하는지 노래로 설명을 할 꺼다. 레스 고우!
"잔치국수 호로로고 맛있는 잔치국수 이름처럼 입에서 잔치가 열려~ 입에서 맛있는 잔치가 열리면 끝나지 않으면 좋겠어~ 아주 아주 맛있고 재밌는 잔치국수 잔치~~ 내일도 열린다! 잔치국수 잔치"
끝. 내일도 맛있는 잔치국수 먹어야지~ '잔치국수'
날짜: 2024년 12월 9일 월요일`
날씨: 0도 보다 더 추운 날
제목: 풍물 | 한**
오늘 4교시 끝나고 방과후에 갔다. 방과후 이름은 풍물이다. 풍물에서 '쌍진풀이'라는 장단을 배웠다. '쌍진풀이'는 꽤 어렵다. 나는 풍물에서 장구인데, 장구는 북보다 치는 게 어렵기 때문에 나는 더 어렵다. 쌍진풀이는 장구는 8번까지 있고 북은 7번까지 있다. 1번은 "덩-따따-쿵따쿵따 덩덩-덩덩-덩따쿵 따." 를 네 번 반복한다. 2번은 "덩-따따-쿵-따쿵따"를 점점 작아지면서 여덟 번 반복한다. 3번은 "덩-덩-덩 따쿵따 덩덩-덩덩-덩-따쿵 따."를 한 번만 친다. 그 다음 4번은 "덩-따쿵 따-덩 따쿵 따 덩덩-덩덩- 덩- 따쿵 따."를 세 번 반복한다. 5번은 "덩-따쿵따"를 네 번 친다. 6번은 "덩-덩-덩-덩-덩."을 한 번만 친다. 8번은 '"덩."이다. 이게 끝이다. 이게 너무 길어서 지루했다. 그런데 한 번 쳐 봤더니 잘 쳐졌다. 그래서 또 치고 또 쳤다. 그랬더니 재밌었다. 쌍진풀이가 살짝 쉽고 재밌어서 좋았다. 풍물 선생님이 시간에는 다드래기라고 했다. 가방을 챙기고 돌봄에 가면서 다음 시간을 기다리면서 갔다.
날짜: 2024년 12월 9일 월요일
날씨: 학교 가다가 얼음 땜에 얼음
제목: 닭다리 실종 | 송**
할머니 집에서 갑자기 누나가
"아~~~ 통닭 먹고 싶다."
라고 하니 나도 마음 속으로 '아~ 먹고 싶다.' 생각이 들었다. 누나가 엄마한테 전화했다.
"엄마, 나 치킨이 땡기는데."
라고 말하니 엄마가 말했다.
"그럼, 저녁 조금만 먹고 기달려."
하고 전화를 끈었다.
"띵동~띵동~ 치킨 왔습니다!"
목소리가 엄마 목소리였다. 엄마가 테이블에 치킨을 올려 놓았다. 저쪽에서(치킨집) 소스를 가지고 오지 안아서 칠리 소스에 치킨을 찍어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닭다리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누나 내 귀한 닭다리 누나 배 속에 있지."
"아아 아니야~ 야! 송** 나 의심하지 마라잉~"
누나가 나를 노려 받다. 엄마가 내 닭다리를 불리시켰다. 살하고 뼈하고 먹이 편하게~ 내 배 속으로 실종됬다. 그리고 또 먹고 싶다.
날짜: 2024년 12월 6일 금요일
날씨: 잠바를 입어도 되고 안 입어도 되는 날
제목: 소*의 생일 | 박**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짜잔!"
오늘은 소*의 생일이다. 오늘은 소*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었다. 저녁을 다 먹고 노래방을 갔다. 나는 학교에서 불르는 백구도 부르고 소*랑 내가 '내가 S면 너는 나의 N이 되어줘'를 불렀다. 우리는 한 시간을 불렀다. 너무 늦은 거 같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면 내일은 토요일이기 때문이다. 내 생일도 빨리 오면 좋겠다.
날짜: 2024년 12월 9일 월요일
날씨: 냉장고에 들어간 것처럼 추운 날
제목: 아픈 팔 | 곽**
나는 팔을 다쳤다.
팔을 꽁꽁 묶였다.
팔이 말한다.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
또 팔이 말했다.
으악!
숨 못 쉬겠어!
팔은 힘들겠다.
사실 나도 힘들다.
나랑 손이랑 똑같이 괴롭다.
오늘 첫 시간은 낭독극 연습. 보면대를 가져와 지난주처럼 위치를 잡고 극본을 읽었다. 이제 점점 실감나게 읽어내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읽기 유창성이 아직 부족한 아이들은 더 연습이 필요하고 발음, 대사 치는 속도, 동작 등을 살펴 지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다들 즐겨하니 이것 또한 좋다. 다음 주 즈음이면 얼추 완성이 되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대사를 치면서 서로에게 조언과 충고, 지적까지 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우스깡스럽기도 했다. 정말 이제 다들 컸다. 1학년 입학할때는 정말 걱정이었는데 말이다.
두 번째 블럭 시간에는 학급문집 작업 중 가장 첫 번째 작업인 표지 꾸미기 활동을 했다. 우리 학급의 모토이기도 한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아도'라는 글자를 A4용지에 테두리 글씨 형태로 써 놓고 꾸미고 그림도 그리는 활동. 이 활동이 끝나면 아이들은 저마다 누가 더 멋진 표지가 될지 생각하여 투표를 할 것이다. 그래서 가장 만이 스티커가 붙여진 작품은 문집이 표지에 쓰이게 되고 나머지 작품은 문집 안 에 들어가 문집을 더 빛나게 할 것이다. 이를 안내하기 위해 지난해 아이들 작품, 2020년 코로나 시절 아이들 작품도 소개해주며 감을 잡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을 했는데, 몇몇 아이들은 처음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살짝 힘겨워 하더니 나중에는 이전 어떤 학년 못지 않은 결과물을 내주었다. 내일 당장 투표를 하면 어떤 작품이 될지 정말 갈등이 생길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처음 이 아이들을 맡았을 때, 걱정이 기우였구나 하는 생각과 반성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동안 가정에서 노력도 교실에서 담임인 나의 노력과 신경도 있었지만, 결국 어른들의 도움이 있다면 아이들을 믿고 갔어야 했던 것. 나 또한 1학년을 맡은 다섯 해 만에 뒤늦게 이런 지점을 깨닫게 되었다. 가르치며 배운다고 했다. 올해가 딱 그랬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도서관에 갔다. 아이들이 자란 만큼 12월 이 시절에 아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지점이 있다. 방방 뜬다는 것. 오늘 도서관에 간 아이들 모습 중 절반이 그랬다. 그렇다. 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큰다. 오늘처럼 일기를 읽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자기 그림 잘 그렸지 안냐며 떼를 쓰고 묻기도 하고 도서관을 휘저으며 마냥 놀기만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크는 거다. 얼마 전 예전 담임 보호자 한 분이 내게 밤 늦게 톡을 보내셨다. 아이를 키우면서 불안해 하시는 모습이 역력하다. '책을 읽힐까요. 영어를 시켜야 할까요. 또 다른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역시 답은 책이겠죠?' 하시길래. 간단히 답을 드렸다. 책도 영어도 아니고 '오늘'을 살게 해주시라고. 그리고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뵙자고도 했다.
그렇다. 아이들은 오늘을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283일째 되는 날이고 아이들과 헤어질 날을 23일 앞두고 있는 겨울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