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가든 Nov 02. 2024

가을의 시작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근데 잠깐 우정 이야기 좀 할게요


나에게 노라 에프런은 가을이다. 이 계절로 접어들기만 하면 일단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부터 봐줘야 하며, 수시로 이 영화를 보면서 공기가 조금 더 서늘해지면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로 번역되어 있는 그의 에세이를 휘리릭 읽어 줘야 하며, 낙엽 밟을 때쯤 <유브 갓 메일>에..


보통은 약간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가 겨울이 된다. 그러다 따뜻해지면 <줄리 앤 줄리아>의 따스함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노라 에프런 분위기를 아예 완전히 잊었다가, 다시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샐리와 해리가 생각나겠지.


어쨌든 항상 시작은 가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이다. 에프런은 에세이에서 이 영화의 각본을 ‘써야 했기에’ 썼으며, 쓰는 동안 힘들었지만 큰 성공을 가져다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게 영화화가 되기나 할까,라고 생각했다던데 이게 영화화가 되어 그에게는 물론이겠고 나에게도 참 다행이다. 아무래도 이 영화 없는 가을은 너무 퍽퍽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 1989)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인 영화. 그리고 당연히 극 중의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부터 결혼하기까지의 그 과정도 로맨틱코미디의 정석이다. 샐리의 친구인 마리는 샐리를 훔쳐보던 해리를 발견한 그 장면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딱 그 영화네, 기억하지? 여자가 남자한테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고약하군요’이라고 말하는데 (샐리: ‘치사하군요’야.) 나중에 사랑에 빠지잖아.”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사실 그들의 우정 이야기이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이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변하고, 서로의 그 변화와 여전함을 다 아는 그들의 우정 이야기.


나에게 우정의 관계란 가장 드라마틱한 관계이다. 그래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계가 없는 느낌이다. 어떤 감정까지 느낄 수 있을까, 싶은. 그래서 내가 다양한 관계들에서 우정이 얼마큼이든, 그 얼마큼은 있는 우정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나 보다.




*


샐리와 해리는 첫 만남부터 나누는 대화마다 잘 안 맞는, 다시 볼 일 없을 낯선 사람이었다가 몇 년 후 우연히 만난다. (그 만남이 위에서 마리가 저런 말을 하던 바로 그때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인사를 하게 된 그들은 마침 각자의 연인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렇게 공감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런 대화를 하고 난 그들은 길을 걸으며, 그전까지는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친구’를 하기로 한다.


샐리: 언제 같이 저녁 먹을래요?

해리: 이제 우리 친구가 되는 건가요?

샐리: 뭐.. 네.

해리: 좋네요. 여자인 친구!

지금까지 만난 매력적인 여자 중에서 같이 안 자고 싶은 여자는 당신이 처음일 거야.

샐리: 좋은 현상이야, 해리.


그리고 나란히 걸어간다. 그들이 우정의 관계를 시작하기로 하며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 장면은, 멋진 영화 카사블랑카의 멋진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카사블랑카는 해리와 샐리가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여보세요. / 자? / 아니, 카사블랑카 봐. / 채널 몇 번?)


샐리와 해리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릭이 사랑했던 ‘일자’와 그의 남편이자 지하운동대표로서 쫓기던 ‘라즐로’는 릭의 도움으로 무사히 떠난다. 재미있게도 ‘중립적인’ 루이는 일은 일이요 정의는 정의라는 태도로, 하지만 영화 내내 (릭의 과거 행적을 알기에) 릭을 의심하기도 하면서 그를 흥미롭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계속 라즐로의 출국을 막는 일을 수행하면서 이리저리 혼자 선택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한 그는, 결국 마지막에 릭의 편이 되며 돕고, 그와 함께 하기로 한다. 그들은 그 마지막 장면에서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한다.


루이: (…) 내가 교통편을 마련해 줄 수 있어.

릭: 내 통행증? 여행에 써도 되겠네. 그렇다고 우리 내기가 달라지는 건 아니야. 자네는 아직 나한테 만 프랑 빚진 상태라고.

루이: 그 만 프랑이면 우리 경비는 충당될 거야.

릭: ‘우리’ 경비?

루이: 그래.

릭: 루이, 이게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인 것 같군.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 루이와 릭


카사블랑카의 릭과 루이의 우정은 영화가 끝나면서 시작된다. 그래서 카사블랑카를 볼 때마다 릭과 일자의 드라마에 몰입하다가, 마지막에는 항상 그들의 사랑뿐만 아니라 릭과 루이의 새로운 우정의 관계와 그들의 인생이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할 거라는 것 덕분에 벅찬 마음으로 끝난다.


심지어, 릭이 일자와 또다시 이별하게 되었지만 그 상실감은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상황 속에서 만들어질 새로운 감정으로 충분히 상쇄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뭔가 다른 걸, 어쩌면 그들이 더 원했을 무언가를 느끼며 살 수도 있겠지. 우정이라던가, 정의라던가.


샐리와 해리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 장면은, 릭과 루이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 장면과 겹쳐진다. 즉, 마치 릭과 루이처럼 해리와 샐리의 우정도 막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다. 카사블랑카 덕분인지, 내가 보는 그때의 샐리와 해리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들이 각자의 이별로 인해 생긴 상처가, 이제 서로가 서로의 공감받을 구석이 되면서 그 쓰라림을 조금은 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안도감 같은 걸 느끼게 만들었달까.




*


그렇게 그들은 여전히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잘 알게 되고, 아픈 곳을 찌르다가도 위로가 되어주는 진짜 친구 사이가 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상대의 데이트 상대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결국 우려하던 대로 혹은 (마리와 제스가) 기대하던 대로 연인이 되는가 싶더니 친구도 연인도 못 되는 애매한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러다 결국, 그들은 연인이 된다.


해리의 진심 어린 고백으로 샐리는 해리에게 받았던 상처가 풀리고, 그들은 어쩌면 그들 역시 바라던 대로 연인이 되어 그 해의 마지막 날, 다가오는 새해를 함께 맞이한다. 이제는 지난해를 잘 떠나보내자는 의미일까? 이번에도 작별의 노래가 흘러나오던 그 장면에서, 그들이 이야기한다.


해리: 이 노래가 의미하는 게 뭐지? 내내 생각해도 이 노래가 의미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아니, ‘오랜 친구는 잊어야 하는가’라고? 오랜 친구를 잊어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어쩌다 보니 잊었지만 기억해야 한다는 뜻인가? 근데 이건 불가능하잖아, 벌써 잊어버렸으니까.

샐리: 글쎄, 아마도, 우리가 그들을 잊었다는 걸 기억하라는 뜻일 거야. 어쨌든 오랜 친구에 관한 노래야.


어쩌다 보니 오랜 친구였던 그들이 연인이 되었다고, 친구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해리가 오랜 친구를 왜 잊어야 한다는 건지, 도대체 뭘 기억해야 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처럼, 그 오랜 친구를 잊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사실 잊고 말고 할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친구이자 연인인 거니까. 친구란, 그렇게나 다양한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정이란 그렇게나 다양한 관계에 스며들어 있는 거니까.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친구였으며 그들을 잊었다는 걸 기억하라는 것 같다는 샐리의 해석처럼, 이 영화 자체가 해리와 샐리를 통해 관계는 변하고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보여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들의 습관은 여전해도 생각은 변하기도 하고, 그들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는 변화는 상대가 알아차리고, 그들은 상대의 그 변화와 여전함 모두를 사랑한다.


그들의 엔딩은 결혼이다. 이 영화에서 상황이 바뀔 때마다 중간중간에 결혼한 커플들이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맨 마지막에는 샐리와 해리가 인터뷰를 하며 끝이 난다. 그 후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할까, 달라졌을까.

가을마다 샐리와 해리를 찾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계속 친구이자 연인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게 아니어도, 적어도 상대가 옛 친구였다는 걸 선명히 기억하는 사람들로 남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로코를 이야기하는데 그 안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이라는 말에 딱히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친구보다 연인이 상위의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전? 발전이 아니라 그냥, 변화했다고 하는 게 나의 관점에서 더 말이 된다.


이렇게 되면 또 우정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여러 가지를 파고들어야 할 것만 같은데, 그런 건 생각하면 또 답이 나오지 않을 게 뻔하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한다.


어쨌든 나라는 사람에게 우정과 사랑은, 너무나 독립적이면서도 겹쳐 말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중요한 건 둘 중 하나가 더 깊거나 얕은 게 아니라는 것. 그러니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는 것. 그런 단어의 비교가 중요한가?




*


샐리와 해리의 관계가 변화하는 단계 단계마다, 그들이 변하진 않지만 그들의 생각은 변한다. 나는 특히 그들이 상대의 변화를 알고 상대의 여전함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게 좋다. 그리고 그전에 상대의 변화를 알게 되고 상대의 여전함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는 건 더 좋다. 그게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그들이 카사블랑카를 좋아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내가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사소한 것들도 계속 말하면 길어지니,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한다.



, 아니다. 그래도, 웃기면서 따뜻한 노라 에프런식 이야기부터  계절의 배경, 그들의 스웨터와 코트, 목소리, 해리 코닉 주니어의 음악  모든 , 사각사각 낙엽 밟는 계절과 찰떡인  좋다는 말은 하고 마무리해야겠다. 아무래도, 가을이라 쓰게  글이니까.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 - Harry Connick, Jr.



매거진의 이전글 모던 러브의 움직임 <나쁜 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