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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가든 Jun 02. 2024

어떤 노래를 듣지?

여름을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었을 때


재작년 9 초의 저녁이었다.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는 때에 9월 이야기를 하자니 살짝 더워지는 것 같지만, 내가 여름을 좋아하게 된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


9월 초 저녁, 나는 동네의 산책길을 걷고 있었고, 갑자기 이제는 여름 노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과 어울리는 노래를 들어야 성에 차기 때문에, 휴대폰 속 음악 앱을 뒤지며 이리저리 노래들을 바꿔 재생해 봤다. 급기야 멈춰 서서 열심히 노래 몇 곡을 다급할 정도로 이것저것 건드려봤고, 그렇게 하나를 골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 만족스러운 선곡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직 공기에 여름이 남아있었어도 8월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슬렁슬렁 걸어도 땀이 나고 바람을 느껴보려고 해도 후텁지근함뿐이었던 한여름이 아니라, 오히려 걸으면 선선한 바람이 내 몸 옆을 휭 지나가는 초가을이었던 것이다. 여름과 가을,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중. 나는 뭔가를 처음 좋아하게 되고 나서 그 대상이 나를 떠나려고 할 때의 아쉬움을 이때, 여름 노래가 어울리지 않음을 느꼈던 이 날 저녁에 오랜만에 느꼈다.


나는 (이십몇 년을) 살면서 여름이라는 계절을 좋아한 적이 없다. 그러다 한 3년 전쯤부터 은근히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마침내 재작년부터는, 아예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사계절 중에서 가장 좋아하던 겨울은 이제 너무 춥고 길어서 힘들었다. 왠지 몸도 얼어가는 것 같아 어딘가가 아픈 느낌마저 들었다. (진짜로 아프기도 했다.)

반면 여름은, 그런 내 차가운 몸을 확 풀어주어 가볍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온통 초록의 나무와 풀들의 생생함까지 더해진 건강한 계절로 느껴졌다. 춥지 않아서 움직이기에 가볍고 성취감도 느껴지는 계절. 아마도 겨울의 추위에 힘들어하다 보니, 그 반대의 계절로 여겨지는 여름을 기다리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음, 아니면, 이제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 것에 질려 여름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것일 수도 있다.      


나도 알 수 없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여름을 그토록 기다렸던 해는 재작년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렸던 여름은 기다렸던 만큼 만족스러웠다. 동네의 초록 무성한 나무들, 건너편 아파트 꼭대기를 거의 직선에 가깝게 비추는 쨍한 아침 햇빛, 이 쨍한 햇빛을 받으며 걷는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 길어진 한낮,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의 통유리창에 비치는 생생한 여름의 풍경을 이제야 처음으로, 제대로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저녁에 여전히 어울리는 노래를 찾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러니까 여름을 이렇게 처음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제 슬슬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다 보니, 괜히 더 미치도록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아예 다시 여름에 반복하던 노래 중 하나를 재생했다. 그렇게 아직 공기 중에 남아있는 여름 느낌을 끄집어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여름 느낌은 그렇게라도 끝자락을 붙잡아보려는 나를 흘깃 보며,

-왜 이래? 이제 그만 다음으로 넘어가.

라고 하는 것 같았다. 도무지 공기와 노래가 섞이지 않았다.

-알아, 나도.


나는 속으로 대답하고는, 그래도 듣던 그 노래를 꿋꿋이 계속 들었다. 이제 바뀐 공기에는 이 노래가 더 이상 완벽하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느끼면서, 그 아쉬움을 달고 계속 걸었다.

운동화 밑바닥 무늬 사이에 끼어있는 작은 돌 같은 이 아쉬움을 확 떼어내듯, 그 공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어떻게든 찾아 들으며 다음 다가오는 계절을 일찌감치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미련 뚝뚝 떨어지는 아쉬움의 기간도, 생각보다 더 컸던 여름을 향한 나의 애정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어울리지 않는 공기와 노래 덕분에 그 상황이 영화 속의 웃긴 장면처럼 느껴졌다. 꽤 괜찮았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나는 좀 그런 걸 꽤 잘 하는 사람이었다. 아쉬움을 즐기는 것. ‘잘하는’ 게 아니라 ‘잘’ 하는 것 말이다.


이틀 테면 몇 번 했던 (얕은) 짝사랑도 그랬다.


*


나는 누군가를 쉽게 좋아했다가 쉽게 빠져나왔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처음부터 나 혼자 속으로만 좋아하고 말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에게는 좋아하는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것보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을 즐기는 게 더 편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실망하거나 내가 그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이 식으면 깔끔하고 편하게 끝날 수 있도록. 어차피 시작되지 않은 그 무언가였기 때문에 끝낼 건 나의 감정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내 감정이 금방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이다. 하지만 꽤 당연한 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 중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먼지만큼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진짜 애정이랄 게 생겨날 리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아주 약간의 시간을 쓰다가, 그 얕은 짝사랑에서 빠져나갈 지점이 생기면 휙 빠져나왔다. 마치 이 계절이 갑자기 휙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물론 이 ‘휙’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으며 느꼈던 아쉬움과 꽤 비슷한 것이었다. 어차피 내가 다가오는 그다음을 또 잘 즐기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 대상을 이렇게 좋아했던 게 처음이라서 그다음으로 넘어가기가 더 아쉬운 느낌과 같은 것. 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좋아할 게 없어진다는 생각도 딸려 있는 것. 하지만 괜찮았다. 내가 그다음의 무언가를 좋아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즐기기에 즐거웠다. 그러니 아무렴 괜찮았다.


이게,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여름을 생각하며 느낀 것과 내가 했던 얕은 짝사랑에서 느꼈던 것의 공통점이다. 아쉬움이 있다는 것. 하지만 미련은 짧고, 그다음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즐거웠고, 아쉬웠고, 그다음엔 그다음의 것이 올 거야. 의외로 괜찮다. 미련이 남으면 그 미련이 없어질 때까지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 질척거리는 나 자신 그대로 있다 보면 어느 날 어느 순간에 갑자기, ‘그래. 이만하면 되었다’며 다음으로 너무나도 쉽게 넘어가 있는 나를 보게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아마도 나는 이렇게 여름이 가는 걸 아쉬워하다가,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는 선선하다 못해 서늘한 공기와 어느새 따뜻한 가을의 색으로 바뀌어 있는 나뭇잎과 사람들의 옷차림을 발견할 수 있는 그 계절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 계절에 어울리는 노래를 듣고, 사랑하는 가을 영화들을 오랜만에 꺼내 보고, 언제 아쉬워했냐는 듯 지금을 즐길만한 새로운 것들을 찾을 것이다.

겨울의 추위는 힘들어해도 분명 내 생각에 가장 다양한 분위기를 가진, 그 계절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연말의 영화들을 보고, 연초의 노래들을 듣고, 내 방 이불속에서 웅크린 채 따뜻한 것들을, 아예 밖에 나가 차갑지만 청량한 공기를 맡으며 기분 좋은 것들을, 또 새로운 것들을 찾을 것이다.

또 다른 짝사랑 상대를 찾게 되거나, 짝사랑이 아닌 서로 하는 사랑을 하게 되거나, 그러다가 사랑을 끝낼 것이다. 즐기고 아쉬워할 것이다. 계절도, 짝사랑도, 그냥 진짜 사랑도, 그리고 내 꿈도 마찬가지다. 내가 꿈꾸고 바라는 많은 것들은 시작되었다가 끝나기도 할 것이고, 눈물 나도록 아쉬워하다가도 갑자기 아무렇지 않아 질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것들은 다시 오고, 떠나고, 또 다른 게 오고, 떠났다가, 또 오니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사랑과 아쉬움을 즐기다가 다음을 맞이하고, 또 시작하면 된다. 그냥 그 설렘과 아쉬움 같은 감정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하기를 즐기면 된다. 그리고 다른 걸 찾으면 된다.


*


왜 갑자기 재작년의 기억을 떠올려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 흐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 생각을 지금 나 스스로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그저 여름 이야기였던 이 글을 이렇게 끝낸 것 같다.

나 자신이여, 제발 겁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그저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보자.


사랑하는 여름이 이제 올 참이니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도 어서 찾아내리라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시작의 말은 이런 말일 것이다. 아, 그 끝의 말 또한 이런 말일 것이다.


"자, 그러면 다음은 뭘까.

어떤 노래를 듣지?"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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