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는 껍질을 여는 속도보다 닫는 속도가 더 빠르다. 호락호락하지 않달까. 열려있다고 해서 젓가락 같은 걸로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악수는 커녕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그런 조개를 잡아다 소금물에 담가 놓으면 뻘을 토한다고 한다. 해감이라 부르는 그 과정 속에서 조개는 속에 품고 있던 것들을 다 내놓는다.
그동안 나의 무기는 어떤 것이었을 까. 차갑고 딱딱한 쇠젓가락이었을까. 은근하게 회유하는 소금물이었을까.
나에게 진실한 사과가 필요할 때 그는 너무나 가벼웠고, 적당한 잔망스럼이 필요한 날에 그는 무관심했다. 약속을 하고 깨고, 기대를 걸고 실망하는 그 과정 속에서 그도 나도 조개처럼 입을 다물게 되었다.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하고, 6평 남짓한 공간에서도 눈맞춤조차 피하는 작금에서야, 나는 우리를 되돌아본다.
끝이 보인다. 괜찮다. 슬픔은 어차피 휘발할 감정이다. 후회는 하지 않지만, 지금 끝내지 않으면 더 후회할 것 같다. 알고 있었다. 어차피 평생 갈 관계는 없다는 걸. 이 전의 모든 관계에서도 너무 또렷이 알고 있었다. 언제나 이런 기분을 느낀 후에는 노력해도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사랑이 아직 남았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