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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담 Jan 05. 2020

1/4_1인 연습실을 찾아서

매일매일 일기 쓰기 프로젝트(3/365)

 사람에게 공간이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심지어 사용하지 않을 때라도 어딘가 내 소유의 공간이 있다면 마음부터 든든하다. 나는 작년부터 자취를 하게 되면서 자신의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공간에도 여러 한계가 있어서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으로 꾸미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동거인에게도 그런 공간이 필요했나 보다. 언제부턴가 다른 이들의 스튜디오 공간에 들릴 때마다 지나가는 듯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흘리더니, 이번엔 새해고 하니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연습 공간 겸 스튜디오를 구해야겠다고 조심스럽게 결정을 알렸다. 자기는 그런 정보를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이 쓰여서 함께 알아보기로 했다.


 우선 지인의 스튜디오에 문의를 넣었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조건으로는 어쩜 딱 맞춘 듯이 집에서 5분 거리에 가격도 15만 원을 넘지 않았다. 몇 번 가본 적도 있고, 지인 찬스를 받는다면 더 저렴하게 빌릴지도 몰라! 우리의 정수리 위로 희망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니, 정말 경사스럽게도, 스튜디오가 너무 잘되어 다른 구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버스로 40분 정도 걸리는 아주아주 먼 곳. 동거인이 정말 정말 아쉬워했지만 이미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으니. 우리의 계획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루 이틀 찾아보니까 적당한 공간이 딱 한 손에 꼽을 만큼은 있었다. 가장 크게 원하는 조건은 가격이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동거인에게 무조건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대의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는 거리이다. 첫 번째 조건과 맞물려 추가적으로 교통비가 들지 않으면서, 자전거로 다닐 수 있는 영역 내에서 구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조건은 방음으로 어지간한 연습실은 갖추고 있을 테지만, 본인이 만족하는 수준이 까다로워서 잘 조율해야 한다.


 피나는 인터넷 검색 후 직접 발로 뛰어보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들렀는데 주인분이 계시지 않아서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얻었다. (그 이후 가는 곳은 모두 방문 전 전화를 돌려야 한다는 노하우를 취득했다. 노하우라기보다 예의지, 예의.) 들어가 보니 그 가격, 그 거리 조건에 가장 최적이었는데, 아쉽게도 방음이 고시원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낙후된 시설에 입맛만 다시며 후퇴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점심을 먹으며 심기일전했다. 첫 번째 방문 후 동거인은 거리 조건을 완화시켰다. 시내까지 대중교통을 타더라도 갈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우리는 두 군데를 더 찾았다. 우선 먼저 찾았던 곳 중에 두 곳이 마침 한 동네에 있어서 그곳으로 갔다. 둘 다 시설은 좋았고, 가격은 당연히 첫 번째보다 10만 원가량 세졌으며, 거리는 버스 타고 10 정거장 정도로 멀어졌다. 여기서 새로운 조건이 탄생했는데 바로 유선 인터넷 유무이다. 연습실에서 개인 방송을 진행하려 했기에 유선 인터넷이 꼭 필요했는데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곳이 있었다. 선택지가 늘어나니 고민도 함께 늘어났다.


 없어진 곳, 방이 다 찬 곳, 평일에 방을 보기로 한 데까지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귀가했다. 돌아온 뒤 서로 의견을 조합해보진 않았지만,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물음에 서로 같은 곳을 지목했다. 어느 한의원 지하의, 복도에서 들리던 드럼 소리도 문을 닫으면 묻히던, 주인분의 인상이 좋은 먼 동네의 연습실. 모든 조건에서 어느 것 하나 물러날 데가 없으므로 우리는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며칠을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다. 찬찬히 기다리면 입시가 끝나 더 좋은 방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찾아보며 정말 광주는 말만 문화 도시지 예술의 불모지구나, 하고 안타까웠다. 광주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지방이 그렇겠지. 그래도 나름 광역시인데 이렇게 개인 연습실이 적나. 마침 어제 대표님이 워크숍에서 놀러 다니며 사주신 로또가 생각나서 당첨되면 같이 연습실 창업하자고 동거인과 키득거렸다. 당연히 모든(내가 산) 로또가 그렇듯 숫자 하나 겨우 맞추어 종이조각이 되었지만, 그 농담 하나는 나의 마음속에 작은 연필 자국을 남겼다. 


 1인 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한 스튜디오를 만든다면? 사무실 보단 작고, 악기 연습실보단 방음이 약하더라도, 초고속 유선 인터넷과 각종 워크스테이션, 다양한 제작 환경을 제공한다면 유인 요소는 충분하지 않을까? 공간 대여업은 저자본 창업자에겐 그저 꿈일까?(자기 사무실도 없으면서 남에게 공간을 빌려준다고? 하하.) 1인 콘텐츠 제작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텐데. 인구수 절벽으로 내몰리는 지방에만 없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재밌는 다양한 공간들도 알게 되고, 창업 아이디어도 얻고 나름 흥미로운 하루였다. 이렇게 돌아다니고도 내일 하루를 더 쉴 수 있다니 이제야 주말답게 사는 것 같다. 내일은(자정이 지나서 이제 오늘이지만)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했다. 문득 처음 이 집에 들어와 연거푸 집들이할 때가 떠올랐다. 새 집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연신 흐뭇해지던. 동거인도 지금 그런 심정일까? 동거인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나는 것도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어디로 정해지던 그곳이 동거인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곳이면 좋겠다. 부디 새 해에는 자리를 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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