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n HR을 읽고...
"인사"는 특별한 직무이다. 좋다, 나쁘다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직무의 특수성이 있다는 점이다. 인사가 특별한 이유는 회사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발, 마케팅, 재무, 디자인과 같은 직무들은 관련이 있는 대상자들이 제한적이다. 반면, 인사는 모든 구성원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람을 다루는 직무이기에 누구나 대상자가 되기도 하고, 참여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인사 직무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한 마디씩 하기 좋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만족이 아니라 불만의 형태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저자가 HR 조직에서 OKR을 수립할 때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욕먹지 않는 HR이 되기”라는 의견을 냈을까. 일반 구성원은 물론이고 특히나 리더가 되면 HR에 더 많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 평가 및 보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될 수밖에 없고, 채용 과정에도 참여해야 한다.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거나 조직문화를 리딩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업무에 참여해야 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 그렇기에 더욱 어렵다는 점에서 인사는 특별한 직무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원래 사람을 다루는 일, 조직을 다루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에 접하게 된 다양한 업무 중 인사 업무에 내가 꽤 재미를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의무복무를 마치고 제대로 시작한 회사 커리어에서는 재무와 전략을 줄곧 해왔기에 인사 직무담당자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원티드에서 일하는 시기에 회사가 형성되고 성장하는 시기에 시니어들, 리더들이 자연스럽게 조직문화, 채용, 조직구조, 평가, 보상 등의 아젠다들에 참여하게 되었다. 인티그레이션에 조인한 이후에는 인사팀의 그룹장 역할을 하게 되면서 좀 더 본격적으로 인사 업무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구성원, 리더로서 참여하기보다는 인사 직무의 담당자로서 좀 더 참여를 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사업전략이사라는 타이틀이 나의 메인 롤이긴 하지만 말이다.
인사팀의 그룹장을 맡은 지 이제 반년 정도가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좌충우돌하면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반년 밖에 되지 않은 짧은 경험임에도 '이 업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고 참고가 될만한 책을 찾던 중 스타트업 HR을 다루고 있는 "Lean HR"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인사 업무는 어떻게 타사를 벤치마킹을 해야 할까?
스타트업 HR은 기존 기업의 HR과 무엇이 다른가?
스타트업의 조직문화는 어떤 것이 좋은가?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왜 필요한가?
직책이나 OKR 등 어떤 방식으로 조직 관리를 할 것인가?
스타트업에서 평가와 보상은 언제 어떻게 도입해야 할까?
높은 수준의 인재밀도를 유지하지 위해 어떻게 채용해야 하나?
위와 같이 다양하고 광범위한 질문들에 대하여, 스타트업 HR의 시각에서 답을 하는 것이 책의 골자이다. 스타트업의 HR이 어때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제대로 다루고 있는 책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그런 의미에서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앞서 말한 이유로 인사는 인사 직무에 해당하는 사람뿐 아니라, 리더들에게 매우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사보다도 더 리더들, 특히 경영진이나 창업자/대표들에게 필요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직 “인사 업무”를 깊게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업무에 대한 나의 가장 큰 느낌은 “어렵다”는 것이다. 어렵다기보다는 “정답이 없다”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내가 경험해본 다른 직무와 비교를 해보자면, “재무”의 경우에는 정답이 가장 있는 편이다. 회계 업무는 정확하게 회계 기준에 맞추어 우리 회사의 재무 활동들이 기록되어야 하고, 자금 업무는 계약과 증빙에 의거하여 오차 없이 집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관리회계와 재무기획 역시도 과거 실적을 분석하고 향후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정답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회사의 미래 방향성을 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전략” 업무는 재무보다는 정답이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회사가 더 큰 사업적 성장을 하는지가 성공의 핵심이고 이를 측정할 수 있는 매출, 이익, 주가 등의 객관적인 지표가 존재하기에 내가 맡는 전략을 펼쳤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좋은 전략을 짜는 많은 프레임워크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인사” 업무는 정말 정답이 없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다루는 업무이고 사람은 모두 다르고, 같은 사람일지라도 상황과 감정 등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기에 어느 때의 정답은, 어느 때의 오답이 된다. 조직 또한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스타트업이라고 묶어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각각의 스타트업의 각각의 개인들이 다른 것처럼 너무나 상이하기에 ‘정답’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가 너무 어렵다. 게다가 빠르게 시도하고 실패를 통해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스타트업이 작동하는 핵심원리인데, 인사는 한번 잘못되면 이를 수정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해본 다양한 업무 중에서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가장 미련이 남고 고민이 많이 되는 것이 바로 인사에 대한 결정들이다.
나는 기업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한 책들을 굉장히 많이 읽었다. 한때 나의 인생 목표가 “좋은 기업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기도 했었다. 당시 나는 성공한 위대한 기업들의 사례를 읽다 보면 일종의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구글, 넷플릭스, 애플과 같은 미국 기업 문화를 공부하고 벤치마킹하고자 하였으며, 좀 더 동양문화권에 적합한 변주를 위해 우리나라나 일본 기업에 대해서도 탐독하였다. 나의 기댓값은 그런 책들을 수십 권 읽고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의 기업문화가 그려질 것이고, 그것을 내가 다니는 회사에 일부나마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고민을 하면 고민을 할수록 기업문화에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훌륭한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그들 고유의 문화를 형성하게 된 데에는 각각의 이유와 배경들이 있기에, 그것을 정답이라고 가정하고 벤치마킹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당연히 공부하고 분석하고 고민하는 것은 훌륭한 작업이지만, '정답을 찾겠다' 혹은 '그 정답을 그대로 우리 조직에 가져오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책의 저자 또한 첫 번째 챕터에서 무조건적인 벤치마킹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부터 다루고 있다. 이런 접근 방법 자체가 훌륭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좋은 참고서를 참고하지만 우리 조직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을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야 말로 좋은 인사담당자이자 좋은 리더의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챕터 이후에 다루고 있는 조직문화/조직관리/평가/보상/채용 등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도 본인의 생긱과 경험을 공유한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더 좋은 답을 찾는 것은 독자인 우리의 몫 (심지어 저자에게도 남겨진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내놓은 담론들에 대해 나 또한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라고 나의 생각 또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결국 저자 또한, 나 또한, 모든 인사담당자와, 모든 기업들은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적합한 방법을 찾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조율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정답이 없다는 것. 그것이 인사 업무의 핵심이자 어려운 점이자 또한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