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직을 하며 들었던 인생 조언
제 첫 직장은 '두산중공업' (현재 회사명은 '두산에너빌리티')였습니다. 대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7년 간의 회사 생활을 하였습니다. 나름 '에이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곳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직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렇게 향한 두 번째 직장은 '원티드랩' (채용 플랫폼 '원티드')이었습니다. 지금은 원티드랩은 매출이 수백억이고 상장까지 한 회사입니다만, 2018년 1월의 원티드랩은 30명의 직원이 있는, 막 시리즈 B 투자를 마친 작은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 많은 주변 분들이 묻곤 하셔서 이러한 선택의 과정에 대해서 언젠가 브런치를 통해 공유드리겠습니다. 오늘의 글은 그 선택보다는 당시 제가 들었던 조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두산중공업을 떠나서 스타트업을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스타트업으로의 이직 기회를 찾고 있던 저였습니다. 감사하게도 5곳 정도의 훌륭한 곳들에서 기회를 제안해 주셨고, 그중 원티드랩 사업개발팀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끝까지 고민했던 다른 선택지 중 하나가 카카오모빌리티 전략팀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규모나 카카오 계열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스타트업인가 싶지만, 당시에는 100명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에 재직 중이시던 저의 학교 선배께서 저를 추천해 주셨기에 합격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원티드랩에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결국 그 선배에게 거절의 의사를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찾아봬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찾아뵙겠다는 연락을 드리고 주말에 선배집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추천해 주신 선배에게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에 '왜 카카오모빌리티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눈에 쳐다보지 못하고 주저리주저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제 마음을 돌리기 위해 조금의 설득을 하던 선배는 이내 포기를 하시고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제 커리어나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조언이었고, 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번 인용하곤 했던 말입니다.
"승엽아, 아마 네가 두산을 떠나는 점 때문에 엄청 고민이 많았을 거야. 그리고 이번처럼 네가 가지 않을 직장들을 거절하는 것도 고민이 많았을 거야.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지금 너에게 훨씬 중요한 것은 원티드랩에 가서 어떻게 잘할지이다. 그것이 니 미래를 바꿀 것이고, 다른 것들은 니 미래에 어떠한 영향도 없다. 떠나온 두산이나 다른 선택지들에 대해서는 이제 더 생각하지 말고, 거기 가서 앞으로 어떻게 잘할지만 생각해라."
머리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7년 동안 인연을 맺어왔던 두산을 떠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직 과정에서 제 고민의 80%는 퇴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20%는 제가 갈 수 있는 선택지 중 어디에 갈지, 왜 여기를 갈 것이고, 왜 여기는 가지 않을지, 가지 않은 선택지들에 대해서 어떻게 거절할지 등이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어떻게 해나갈지,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 또 이후에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선배 말처럼 앞으로의 제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그 부분일 텐데 말이죠.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합니다. 이직을 하게 되는 계기는 현재 직장에서 무언가의 아쉬움과 불만이 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직장은 떠나야 할 이유가 있는 만큼 남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금전적인 면이나 커리어적인 면에서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하고, 친밀해진 동료들 때문이기도, 익숙해진 업무나 조직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고민들이 정말 어렵습니다.
첫 이직 후 몇 년이 지나 리더가 된 이후에 어떤 구성원이 퇴사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OO님, 퇴사 고민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퇴사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그 고민의 과정에 대해 OO님께서 너무 고생 많으셨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그분께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당연히 그분을 울리려고 했던 말은 아니고, 저 또한 이직을 해본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끙끙거리면서 고민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저 말이 나왔습니다. 어찌 보면 몇 년 전의 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이나 이직을 고민하는 과정들은 외롭고 또 고통스럽습니다.
그러한 고민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직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면 사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는지, 새로운 곳에서 어떻게 할지입니다. 앞으로의 커리어, 성과와 행복은 제가 걸어갈 미래에 달려있습니다. 제가 떠나온 과거나, 제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선택지가 아니라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떠나와야 하는 기존 회사는 내가 이미 잘 알고 경험을 해본 곳이기에 미련 또한 구체적이고 선명합니다. 반대로 내가 새로운 곳에서 그려야 하는 미래의 커리어는 불확실한 미지의 영역이죠. 그렇기에 거기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놓아버린 다른 선택지에 대해서는 미련이 한 움큼씩 남습니다. 최선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임에도 말이죠. 내가 이미 한 선택을 더 멋진 결과로 만들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떠나온 선택지들에 대한 미련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곤 합니다.
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생겨도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배가 해준 조언을 떠올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ㅁㄴㅇㄹ앞으로 어떻게 잘할지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잘 해내느냐야. 그게 네 미래를 결정해"
이직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하였지만, 인생의 어려운 결정들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미 누군가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결혼을 할지 말지 누구랑 할지와 같은 고민을 반복하는 것은 쓸데없습니다. 그 사람과 어떻게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들어갈지만 고민하면 되는 것이죠.
집에 돌아와서 하루를 곱씹으면서 후회가 몰려드는, 소위 '이불킥'을 하게 되는 하루가 있습니다. 꽤 많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때 이걸 잘 못 했다가 아닙니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할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문제보다는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의 격언 같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고민은 10만큼, 만들어낼 미래에 대한 고민을 90만큼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더 성장할 수 있고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제 인생을 그렇게 살아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또한 그러하길 바랍니다.
(부족한 후배에게 좋은 조언해 주신 존경하는 선배님 승응이형께 이 글을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네요)
커버 사진: Unsplash의 Brandon Lop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