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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Jan 14. 2024

13. 심리 상담을 받았다

해가 바뀌어도 진행형인 소음 지옥.

마음을 다지며 버텨 보려 애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벅찰 때를 위한

계속해서 살아 나가기 위해 쓰는 소음 일지.




<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심리 상담을 받았다.


10월 중순부터 그간 있었던 일을 선생님께 설명했다. 죽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는 스스로가 불쌍해 눈물이 났다.


지금 가장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당장 있기는 하지만, 사실 층간 소음은 이사 외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하셨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마음속에만 쌓아두고 있던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나니 후련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크게 한숨을 내쉰 듯한, 무언가를 내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신경과를 찾았다.


편두통이 재발한 듯해서 찾은 병원인데, 혈압이 심각하게 높다며 약을 처방해 줬다. 진정제를 먹고 나니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숨 쉬기 힘든 듯한 느낌이 좀 가라앉았다. 조금 살만했다.






그리고 나머지 2023년은 회피와 도망의 연속이었다. 무려 내 집으로부터.





<2024년 1월 1일, 월요일>

주말 같은 월요일.


오늘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종일 집에서 뛸 위층 아이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심하지 않은 소음에 마음이 놓였고, 희망을 갖게 됐다.


연말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짐했다. '그래, 위층에는 나의 언니가 살고 있고 저 아이는 나의 조카야. 내 조카가 뛰는 것쯤 견딜 수 있잖아?'라고 스스로를 세뇌하기로. 그래서 틈만 나면, 어떤 소리만 들리면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언니가 지금 집 청소를 하나 보다.'

'아이고, 우리 조카가 뛰는구나.'

'우리 조카가 씻기 싫어서 화장실에서 소리를 지르는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24년 1월 2일, 화요일>

첫 심리 상담에서 숙제로 받은 심리 검사 결과를 듣는 날.


전체적으로 우울감과 무력감, 무기력함, 불안 등의 수치가 높았다. 자신감, 자존감도 낮았고, 무언가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서의 자율성도 무척 낮았다. '자살 사고思考' 수치도 높게 나왔다. 예상했던 바다.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노력하고 있고, 극복하려는 의지도 있다. 위에 사는 건 나의 가족이라고 나를 세뇌하면 될 것 같았다.


저녁 7시부터 걷고 뛰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티끌같이 생겼던 자신감은 다시 휘발됐다. 9시가 넘자 아이는 30분 이상을 계속해서 뛰었다. 처음에는 '조카가 지금 재미있게 놀고 있나 보네.' '지금 무척 신이 났구나.' '에너지가 넘치는 걸 보니 아주 잘 크겠어.'라며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30분이 넘어가자 다시 정신이 도는 것 같았다.


10시가 되기 조금 전,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한 나는 손등으로 벽을 미친 듯이 쳤다. 여전히 뛰었다. 또 쳤다. 그래도 뛰었다. 또 쳤다. 조금 잠잠해진 듯했다.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지만, 손이 너무 아팠다. 살짝 삐었는지 멍이 들려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아팠다. 서럽고 억울했다. 심리 상담도 받고, 신경과 약도 받아먹는 걸로도 부족해서 정형외과도 가야 하나.


몇 분 지나지 않아 퇴근해 집에 들어온 남편은 내 표정을 보고 걱정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역시 감추지 못했다. 좀 전에 너무 열이 받아서 벽을 쳤다고. 조금만 참았으면 됐을 것을, 못 참고 결국 쳐 버렸다고.


잠들기 전, 잠든 남편의 팔에 매달려 소리 없이 울었다. 어제 가졌던 낙관적 전망과 일말의 희망 같은 건 사라지고 없었다.


그냥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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