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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Jan 14. 2024

14. 정신과를 찾았다

해가 바뀌어도 진행형인 소음 지옥.

마음을 다지며 버텨 보려 애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벅찰 때를 위한

계속해서 살아 나가기 위해 쓰는 소음 일지.




<2024년 1월 3일, 수요일>

종일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전 내내 침대에 누운 채 멍하게 휴대전화를 만졌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내 몸은 살고 싶은지 꼬르륵하는 소리를 내길래 꾸역꾸역 일어나 비빔면을 끓는 물에 올렸다.


문득 왼쪽을 바라봤다. 부엌 창문 너머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옅은 회색의 하늘을 뒤로하고 가볍게, 폴락폴락 내리는 함박눈은 무척 아름다웠다.


눈물이 났다.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든 채 가스레인지 앞에서 굳은 몸을 떨며 울었다. 그 순간조차, 내가 내는 소리까지도 두려워 소리 없이 울었다. 위에서는 집 치우는 소리가 났다. 억울했다. 조금씩 입 밖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엄마를 찾으며 엉엉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끓는 물에서 낭창이던 면은 그 물을 다 빨아들여 퉁퉁 불어 있었다. 찬물로 헹구고 싶지도 않아 그냥 물만 버리고 소스를 넣고 비볐다. 불어 터진, 먹는 느낌이라곤 전혀 들지 않는 비빔면을 조금씩 집어 먹으며 다시 울었다. 자기 연민이라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너무 불쌍했다. 이 비루한 삶과 세상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오후에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늘은 위아래에서 쌍으로 난리다. 아랫집에서는 뭘 듣는지, 음악 소리와 베이스 음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KBS 클래식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아도 이 소리와 공명하는 건지 비트감은 더 크게 들렸다. 참다못해 맨발로 거실 바닥을 쿵쿵쿵 내리쳤다. 음악 소리가 줄었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오는 길,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침대 옆에 쭈그려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도와주세요', '살려줘'라는 소리가 나왔다. 울고 또 울었다. 너무 울어서 입술은 바싹 마르고 침도 나오지 않았다. 109번에 전화하려 휴대전화를 들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절박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 따위가 전화해도 될까 하는 생각에 전화기를 내려놨다.


너무 울어서 이마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아직 오늘 하루가 9시간이나 남았다. 아이가 자려면 8시간이 남았다. 나의 일상은 윗집의 일상에 맞춰 돌아가고 있었다. Time passes terribly slowly when a life is boring and meaningless. 나는 중얼거렸다.




<2024년 1월 4일, 목요일>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오고야 말았다. 우울증 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장기 복약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는데. 어제의 멘털 브레이크다운 에피소드를 겪고 나니 더 이상 이건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보다는 처방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인 듯해서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중요한 사실부터, 축약해서 설명했다.


'우울증과 불안증, 신경쇠약을 의심하고 있었는데요. 의심되는 증상을 겪은 지는 조금 됐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어제, 제가 생각하기에는, 심각한 에피소드를 겪었기 때문이에요.


어제 종일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울었어요. 그리고 하루 종일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선생님은 키보드로 계속해서 기록했다.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시작은 석 달쯤 전에 시작된 층간 소음이었어요.'


그다음은 뭐라고 했는지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내게 나타나는 증상들을 최대한 간결히 설명하려 했고, 그중에서 가장 걱정되는 건 멈추지 않는 자살 사고思考라고 말했다. 혹시 실행하려 시도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제가 용기도 없고 미련도 그득그득해서, 아마 실천은 못 할 것 같은데요. 예전보다 그 빈도와 강도가 커져서요. 잠깐 정신을 놓으면 한순간에...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요즘은 좀 커져서요.'


그리고 이런저런 질문에 답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혹시 궁금한 게 있냐는 말에 물었다.


'오늘 초진이라 바로 진단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제가 우울증이나 뭐 그런...(걸까요?)'


선생님은 내 질문이 끝나기 전에 답했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가 심각하게 의심되고요. 자살에 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는 게 가장 걱정입니다.'


정신의학과의 약 조제는 병원에서도 가능한가 보다. 병원에서 약까지 받아서 나왔다.




병원 건물을 나서는 길. 허탈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혹자는 '층간 소음에서 우울증, 불안 장애, 나아가 자살 사고로 이어진다고?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고통받고 있는 건 사실이고, 이런 사례도 존재한다. 소음에 상대적으로 무딘 사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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