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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Feb 05. 2024

[책] 그저 있는 그대로

이묵돌 <최선의 우울>

노력이란 우울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인데.


그냥,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읽으면 한 문장, 한 문장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책이랄까.


가감없이 솔직하게 쓰여 있기도 하거니와, 병증을 실제로 겪는 사람이 하필 또 작가여서 가감없이, 과장도 뺌도 없이 감정과 느끼는 바를 묘사하고 있는 게 좋다.


괜찮은 척, 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힘든 건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사회로부터 배우며 커 왔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다. 그래서 감출 수 없는 신체적 질병은 별다른 죄책감 없이 티를 내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질병에 대해서는 창피해하고 자신이 나약하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하며, 남들도 그렇게 여긴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밖으로 꺼내라고,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조언을 받았다. 혼잣말로라도 나의 현재 기분,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해 주라고. 인정과 수용. 자기수용.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이만큼 필요한 것도 없을 텐데.


지속적으로 우울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주변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있어 그들이 어떤 심리 상태로 매일을 살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깊고 어두울수록, 혼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처절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느끼지 않는체하며 함구해버린다. 도리어 그런 우울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가능한 완벽하게 숨기며 정상적인 척 살아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한다. (7)
타인으로 하여금 내 정서상의 괴로움을 이해시키는 일은, 사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동정심을 사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12)
믿을 수 있는 제삼자와의 대화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의 파도를 객관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객관화하는 일 자체가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를 능동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정신과 진료와 약물치료가 필요 경우, 그 필요성을 인지하게 해주는 것 역시 상담의 효과 중 하나다. (49)
결국 우울을 치료하는 데에는 적잖은 돈이 든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인지하고 치료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 필요한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는 없거니와 이런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실로 아이러니하다. 노력이란 우울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인데. (50)
낭비벽은 재정적 여유가 있는 사람보다, 모아놓은 거라곤 쥐뿔도 없는 사람들에게 훨씬 흔하게 나타난다. 역설적인 얘기다. 돈 모으는 재미를 알게 된 사람은 더욱더 소비를 줄이게 되는데,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없는 와중에 한 푼이라도 더 써서 힘든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다. 소비를 위한 소비다. // 원고 마감에 쫓길 때, 해야 할 일을 애써 미루고 있을 때, 주변으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받을 때, 뚜렷한 원인 없이 무작정 우울할 때, 이렇게까지 해서 살 이유가 있겠나 싶을 때까지. 나는 부정적인 상황 앞에서 ‘무언가를 사는 행동’ 자체에서 위안을 얻었다. 무리한 소비인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나한테 이 정도 물건쯤 가질 자격은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이제 와 보니 뭘 사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부터가 낭비라는 뜻이었는데. (101)
진짜 구원에는 가격표가 붙지 않고, 가격표가 붙은 것들은 구원이 될 수 없다. (104)
그래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똑같은 개념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러운 것이다. 따지고 보면 둘 대 비탈길이다. 그 길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는 그저 사람이 어느 쪽 길의 끝부분을 보고 걷는지에 달렸다. 뭐든지 알고 보면 세상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이다. (112)
인간이라는 족속은 상황을 미분한 값이 지루해지면, 그걸 또 한 번 미분해버린다. 이렇게 보니 우리는 자신의 안이한 삶 속에서 어떻게든 우울해질 거리를 찾아내려는 성질을 지닌 모양이다. 손톱 발톱에 머리카락도 깎으면 다시 자라나듯이,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도 어느 정도쯤은 사서 만드는 것이다. // (…) // 앞서의 오르막내리막 얘기가 이쯤에 와서는 꽤 쓸 만한 비유가 된다. 올라가는 길은 동시에 내려가는 길이기도 하다. (130)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정답 삼을수록, 내 인생 전반을 차지하는 일상은 하잘것없는 오답이 되어간다. 여행을 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한 나와, 집으로 돌아와 별다른 것 없는 일상을 사는 우울한 나. 그 두 가지 인생 사이에 선을 그어놓고, 간혹 무리해 많은 돈을 써가며 그 선을 넘어갔다가 금세 돌아온다. 짧디짧은 행복을 위한 긴 불행.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언제쯤 다시 모아서 떠나게 될까? 제기랄. // (...) // 그렇지만 당신이 이유 모를 우울에 잠겨 어디로든 떠날 작정이라면, 나는 꼭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에게 진실로, 진실로 위로가 되어줄 것은 바다 건너 무더운 남국의 에메랄드 해변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어쩌면, 그 주변에서 통나무배를 옮기며 땀을 뻘뻘 흘리는…… 변함없는 햇살 아래서 일상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을 한 노인의 얼굴일 것이다. 그 표정 속의 우울일 것이다. (140)
소위 말하는 정규분포표에서 양극단에 위치한 사례들이 극단적이고, 그 중간에 위치한 대부분을 평균적이라 할 수 있다면, 자살을 두고 극단적이라 말하는 건 어폐가 있다 못해 완전히 거꾸로 된 표현이다. 가장 최근 공개된 통계에 의하면, 열 살부터 마흔 살에 이르는 사람들의 사망 원인 1위가 바로 자살이기 떄문이다. 단순한 1위도 아니고, 압도적인 1위다. 특히나 이십 대의 경우 사망자의 절반이 자살로 죽는다. 통계가 보여주는 자살이란, 실상 극단적이지도 충동적이지도 않은, 가장 전형적인 죽음인 셈이다. // 만약 당신이 열 살에서 마흔 살 사이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당신의 사망 원인은 자살일 공산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도처에서 자살을 극단적이 행동이라 말하는 것은, ‘정신적인 어려움은 신체적 어려움에 비해 충분히 극복할 만한 것이며, 자살 역시 주위의 도움을 통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종류의 사건’이라는 발상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처럼 보인다. (161)
단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무료한 시간을 지나 보내기 위해 하는 일 중에서 딱히 쌓이는 것도 없는 주제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205)
지금 우울해 죽겠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의미 없이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쪽이 나았다는 정도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배타적인 태도로 주위의 모든 인간관계를 등지고, 취미와 일들을 접어버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해결해보려는 노력은 못 할지언정 날 더 우울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 것. 내가 생각하는 빼기의 미덕이다. (209)
그래서 나는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울한 인간이라고 해서 꼭 우울하기만 한 인생을 살라는 법은 없다. 그야 그럴 확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높긴 하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가장 우울한 인생이란, 우울한 사람이 전혀 우울하지 않은 체하며 사는 인생이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매일 웃고 떠들다가, 끝내는 나 자신에게마저 소외되는 인생이다. (218)
극도로 우울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냉철한 판단이나 문제 해결 능력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믿음에 대한 되새김질이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시간 속에 놓여있더라도, ‘살아있기만 하면’ 언젠가 나아지고 또 나아갈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흐르는 시간 앞에 영원한 기쁨이 존재하지 않듯, 슬픔과 우울 역시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 처참하게 부러진 뼈도 언젠가 다시 붙기 마련이며, 설명 사지가 잘리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럭저럭 적응해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될 무렵이면, 과거에 느꼈던 우울이며 좌절이 그 즈음의 행복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주리라는 것. // 인간은 순간순간의 불행은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지만, 영영 행복해질 수 없는 미래 앞에서는 쉽게 무너지고 마는 동물이다. 결국 우울의 본질이란 내가 가진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 없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부정적 맹신에 있다. 이런 문제에서는 누군가 나서 내신 해결해준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지금의 절망과 우울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 수도 없이 반복될 대표적인 패턴이라는 것을 스스로 마주해야 한다. (220)


진짜 구원에는 가격표가 붙지 않고, 가격표가 붙은 것들은 구원이 될 수 없다.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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