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 Feb 14. 2024

[책]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자

강재훈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나무를 왜 찍느냐? 나무의 어떤 풍경을 찍느냐? 스스로 자문해 보면 아마도 어린 시절의 고향 풍경을 잊지 못함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싶다.(185쪽)


나무는 공기와 비슷한 존재다. 늘 우리 주변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다. 당연한 존재로 여기며 감사할 줄 모른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나무가 과연 있을까, 반추해 봤다. 딱 한 그루 있더라. 장장 25년을 살았던 고향과도 같은 동네에 있던 느티나무. 우리 집이 있는 골목과 그 앞 큰 길 사이의 계단 턱에 있던 나무였는데, 크기도 컸고 위치도 눈에 띄어 학교를 오가는 길 늘 한 번씩은 눈길을 주곤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는 나무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고, 이름도 붙여 주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같은 동네에 살았던 친구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듯 나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204쪽)”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의 저자 강재훈 사진가는 다르다.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나무를 마치 친구 집을 찾듯 매해 방문해 인사를 하기도 하고, 허무하게 잘리고 남은 밑동을 보며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다. 30년 동안 분교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무들을 발견하고 친구가 될 줄 아는 사람이다. 사진 기자로서의 직업의식이 아니라, 그 자체가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책 내내 가득한 따뜻함과 애정 어린 시선, 그리고 그것이 반영된 그의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강재훈 사진가의 사진 에세이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은 (조금 유치한 표현이지만) 힐링 에세이다. 물론 저자가 독자의 힐링을 목표로 에세이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힐링, 즉 치유되는 느낌은 ‘깨끗함’에서 오는 치유감이다. 오늘날 쏟아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콘텐츠는 죄다 자극적인 것뿐이다. 요즘은 소위 ‘매운맛’을 찾지, ‘순한맛’은 찾지 않는다. 하다못해 먹는 것도 매운 음식으로 넘쳐나는 걸 보면 참 힘든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중에 이렇듯 깨끗하고 맑은 콘텐츠를, 글을 접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최근에 본 영화 <리바운드>가 그랬고, 이 책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도 마찬가지다.


“둑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물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기도 한다. 하지만 풍경은 눈에 보이는 대로 사진이 되기 힘들다는 오랜 경험이 있어 쉽게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계조를 살려 내는 구성이 따라야 원하는 사진이 그려질 수 있다고 했던가. 차분히 앉아 생각을 멈춰 본다. 시선을 한곳에 두니 생각이 나간 자리에 고요한 빛이 들어와 사진 한 장을 남기고 간다. 내가 훨씬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50쪽)”
“나무에 기대어 서서 불안한 마음과 분노와 비관을 털어놓자. 화는 건강에 안 좋을 뿐 아니라 지혜롭지 못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다. 나무는 그 모든 이야기를 물러서지 않고 들어줄 것이다. 나무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그 앞에서 계절마다 ‘셀카’라도 찍어 보자. 희망을 향해 변해 가는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나무보다 더 커진 당신이 그 나무 앞에 서 있을 것이다.(206쪽)”


비단 나무뿐만이 아니라 나아가 생태계, 자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에세이집.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읽으며 부끄러운 부분도 많았다.


“나무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체인데 사람은 나무를 너무 이해타산적으로만 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199쪽)”
“생각해 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4대 메이저 국제 스포츠 대회를 모두 개최한 나라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사는 나라 중 어떤 것이 더 자랑스럽고 자부심이 큰 일인지. (…) 이러한 산림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무자비한 산림 벌채를 막아야 하며 화마가 휩쓰는 거대 산불 등에 의한 기후 변화와 인위적인 자연 파괴로 인한 재앙 수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삼림은 단순한 탄소 저장소나 배출원만이 아니다. 수만 종의 수목과 함께 그 숲의 품에서 살아가는 많은 동식물의 서식지로 인식해야 한다.(246쪽)”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도 많았다.


“나무의 맨 꼭대기 우듬지가 하늘을 치받지 않고 하늘이 허락하는 대로 자라듯, 사시사철 변화에도 역정 내지 않고 순응하며 느리게 자라듯,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하나도 안 자란 듯 겸손하게 자라는 나무처럼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내가 먼저 나무가 되자. 그렇게 되면 길 위에서 어떤 나무를 만나든 나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72쪽)”
“눈으로 보기에 앞서 마음으로 보기를 반복하면 내 눈앞의 사물 형태 혹은 색에 얽매이지 않고 그 사물 본연의 모습을 향한 깊이 있는 사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곧 명상으로 이어지고 명상은 치유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사진가가 그런 마음 자세로 사진을 해낼 수 있으려면 다양한 경험과 독서가 실천되어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행천리로 독만권서!(134쪽)”
“선조들의 옛 그림에는 여백의 미가 있다고 배웠다. 그 여백은 정말 비어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려지지 않은 것보다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제대로 보는 것이다.(132쪽)”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비어 있는 공간이라고, 시간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시각을 달리해 보면, 혹은 깨달음을 얻고 나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허무하고 무상하다고 여겨지는 인생도 그럴지도 모른다.



게으름에 늘 굴복하는 탓에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사진이 취미인 사람으로서 참고하면 좋을 조언도 있었다.


“둑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물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기도 한다. 하지만 풍경은 눈에 보이는 대로 사진이 되기 힘들다는 오랜 경험이 있어 쉽게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계조를 살려 내는 구성이 따라야 원하는 사진이 그려질 수 있다고 했던가. 차분히 앉아 생각을 멈춰 본다. 시선을 한곳에 두니 생각이 나간 자리에 고요한 빛이 들어와 사진 한 장을 남기고 간다. 내가 훨씬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50쪽)”
“어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이 사진의 특성 중 하나인 기록성이라면, 기록되는 현상을 통해 간접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도 사진의 특성이기에 우리는 사진으로 말을 대신하려고 한다.(57쪽)”
“어쩌면 사진은 영감inspiration에 앞서 두 발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메고 걷고 있다. 여전히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248쪽)”


책을 훼손하는 걸 무척 싫어하지만 페이지를 잘라 벽에 붙여 놓고 싶은 사진이 정말 많았다. 인상적인 사진을 한두 장만 꼽기 어려울 정도지만, 가장 충격적이면서 인상 깊었던 사진은 역시 철망을 뚫고 자란 나무 사진이었던 것 같다.


사진 중간의 붉은 빛은 핸드폰으로 찍다가 필터 처리되어서 그런 것이지, 원본 사진의 일부가 아니다.


“인공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현상과 조형, 나무가 고통을 이겨 내며 날카로운 철망에 찢기고 다시 아물기를 반복한 것은 몇 년이나 되었을까?(196쪽)”


오래전,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나무’라고 답했던 게 생각난다. 매캐한 매연으로 가득한 대로변에 있는 가로수여도 좋고, 오가는 사람 없어 심심하기는 하겠지만 한적한 시골길에 우뚝 솟은 은행나무여도 좋겠다. 이번 생에 덕을 충분히 쌓으면 다음 생에는 나무로 태어나게 해달라 부탁하고 싶다. 왜냐고? 이유는 딱히 없다. 자연의 일부가 되고 싶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지나가는 새가 잠시 앉았다 갈 수 있는 쉼터가 되고 싶기도 하고, 어쩌다 난 구멍에 다람쥐가 숨었다 갔으면 좋겠다.


갈등과 고난이 없는 자연의 삶을 살고 싶다. 물론 평창 올림픽 때문에 픽픽 쓰러져 나간, 적게는 수십 년에서 백 년 이상 나이 든 나무들처럼, 길게 살지 못하고 잘려 나갈 수도 있을 거다. 그 역시 일종의 순리 아니겠나. 책을 읽으며 마음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느리게 걷자, 느리게 보자, 느리게 생각하자. 그러다 주변도 한번 둘러보자’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책이었다. 모든 것이 자극적이고 급한 세상, 잠시 발길을 멈춰 나무를 올려다보듯 여유를 갖고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시간을 ‘즐기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그저 있는 그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