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어
(명사)
1.
전기·전자 렌즈에 정규 굴절 이외의 광선이 들어와 영상이 부옇게 되거나 둥근 흰 반점이 나타나는 현상.
사진을 담다 보면, 우연찮게 둥근 반점을 만날 때가 있었다. 프레이밍을 한 채로 카메라 렌즈를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머얼리 빛이 보이는 풍경에서 주로 보이는 의외성이었다. 빛이 프레임을 채우고, 찰칵. 하고 순간을 담으면 그 네모칸 자체가 온통 빛으로 부우옇게 차는 일도 있었다. 플레어였다.
'비타민 디 합성에 좋대, '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기 전부터 나는 햇볕을 좋아했다. 그래서 볕이 쨍쨍할 때 맨몸으로 걷는 걸 그다지 개의치 않는 성격이었던 것도 같다. 점 선 면으로 채운 사진들을 한 컷 한 컷 담아갈 때도, 사실은 슬몃 빛이 든 장면들만 찾아다녔다. 어른어른한 빛이 사진 안에 가득 차거나, 의외의 빛 동그라미가 맺힌 걸 보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의 것들에 품는 애정이 남다른 것도 같다. 예상할 수 있는 것들만 있으면 인생은 얼마나 따분할까. 플레어는 나에게 그런 의외의 것 중에 하나였다. 직선이나, 어떤 면으로 차 있는 피사체에 플레어가 들거나 햇빛이 채워지면 각이 졌던 프레임의 어느 구석에 부피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사진은 2D지만, 빛이 든 부분을 살펴보면 그 부분에만 양감이 생기는 그런 기분. 그 따뜻한 동그라미들을 바라보며 각진 네모에서 부드러움을 찾는 내가 있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어떤 풍경처럼, 익숙하지 않지만 언젠가 한번 보았던 것처럼 익숙한 무언가처럼. 사진 속 플레어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대신, 사진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것에서 매력적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잊고 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꽤 오랫동안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다.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도 '아 그렇구나.' 하고 시선을 옮기기보단 다른 부분은 어떨까, 상상하거나 시선을 반쯤 옮기는 매일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파인더에 눈을 대고 렌즈의 시점을 이리저리 옮기며 플레어를 찾던 언젠가의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