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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Sep 13. 2021

커피

커피를 즐겨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나, 헤아려 보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카페인의 힘이 없으면 하루를 버틸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누군가들과 비슷하게 나도 이제 생존형 아이템으로 커피를 찾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여러 해를 지나면서 꾸준히 다양한 취향이 생기고, 아무것도 모르던 커피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커피를 만나는 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프렌치 프레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푸어 오버나 드립을 하기 위한 드리퍼나 서버, 주둥이가 좁은 포트, 온도계, 저울. 그날의 기분에 따라 추출기구를 골라 마시고 싶은 원두를 그라인더에 목적에 맞는 굵기대로 간다. 적당한 온도의 물을 준비하고 저울을 켠 다음 필터를 린싱한 후 원두가루를 털어 넣고 자유롭게 푸어오버하거나, 단단한 파우더 케이크를 보고 싶은 날에는 머신이 예열될 때까지 조금 기다린다. 이도 저도 귀찮은 날에는 원두를 가장 굵게 간 다음 물을 끓인 후 타이머를 맞춘다. 4분만 기다리면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완성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요즈음은 조금 편안한 비율로 대강 자유롭게 내려 마시는 푸어오버에 정이 들었다. 여름의 끝 즈음, 서버에 얼음 몇 알을 떨구고 원두 15그람에 200미리 정도의 물을 부어 완성하는 레시피. 조금 진하게 먹고 싶은 날엔 원두의 양을 늘리고, 연하게 먹고 싶은 날엔 완성된 커피에 물을 조금 가수한다. 조금 더 지나면 얼음 넣은 커피는 좀 춥게 느껴지겠지, 생각하면 이 즈음 마시는 아이스커피가 가장 애틋하고 반갑다.


모든 것이 그렇다지만, 커피도 사실 나무에서부터 시작해 긴 여정을 거쳐 로스팅된 커피콩이 된다. 커피콩의 여정을 끝낸 커피는, 목적에 맞게 다른 굵기로 분쇄되고, 또 목적에 맞게 다른 추출기구로 내려진다. 이때에 정해지는 물의 변수, 온도의 변수, 또 볶아질 때의 배전도, 추출 시간 등에 따라 커피는 여러 번 표정을 바꾸고, 내가 조절하는 어떤 변수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이 나는 무언가가 완성되기도 한다. 커피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을 얹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매력적인 다양성 때문이다. 오늘은 어떤 기분인지에 따라 그날의 커피 느낌을 내가 조절할 수 있고, 내 취향에 맞는 커피맛을 내가 직접 찾아볼 수 있다는 놀라움. 


최근에는, '여름의 맛'이라는 이름의 원두를 선물 받아 아침이 꽤 즐겁다. 밀폐용기에 넣어 두었던 원두의 그람수를 재서 분쇄하고, 필터를 물로 린싱한 후 톡 톡 털어 넣은 원두 위로 가느다란 물줄기로 원두의 가스를 빼는 작업을 한다. 추출을 시작하자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는 커피 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가느다란 물줄기를 부어 추출을 시작하면 더 빵빵하게 부풀어 그 과정 자체가 아침의 공기를 다정하게, 상냥하게 바꾼다. 얼음이 조금 남은 연한 마지막 모금을 호로록 들이키며 원두를 선물해 주신 분에게 감사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제법 괜찮은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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