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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Apr 27. 2023

연필 깎는 오후,

사각사각. 질감이 주는 기분 좋은 순간들.

사실 연필에 대해 큰 사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필기도구. 딱 그 이미지였다. 흑연이 닳으면 그걸 다시 뾰족하게 깎아내는 게 귀찮고, 금세 뭉툭해지면 얄팍한 글씨가 쓰이지 않아 귀찮은 글쓰기 도구였다. 그마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에는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샤프를 사용하면 세필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고, 연필깎이는 상자 안에서 먼지를 먹고 있었다. 이십 대 후반 즈음, 참 귀한 인연을 만났는데, 그분에게 연필을 선물 받고 나서야 나는 연필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잉크의 카트리지를 보충하는 법도, 만년필의 팁이 여러 가지라는 것도, 이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필기도구가 있다는 것도 나는 그분 덕에 알았다. 그림을 그리는 분이었다. 만년필, 잉크. 이십 대 후반쯤 잠깐 반짝, 내게 흥미였다가 선물 받은 연필은 또 깎이지 않은 채 그렇게 몇 년이 또 지났다.


어느 날 꿈에서 커터 칼로 연필을 깎으시는 아버지를 뵈었다. 아버지는 흑연이 적당히 뭉특하도록 연필을 잘 깎곤 하셨는데, 간혹 내 문제집 위에 남을 흔적들을 위해 연필을 깎아주시곤 했다. 문제집을 풀 때 그 연필을 사용하면 부러지는 일이 잘 없었다. 흑연이 딱 적당히 연필 위에 적당히 자리를 잡은 모양새였다.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단단하고 완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커터 칼을 사용하고도 단정하게, 너무나 깔끔하게 흑연이 빠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연필을 다듬는. '뵈었다'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은 아버지는 유난히 엄격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 이후로는, 당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걸 허락지 않으셨다.


아무튼, 비교적 최근, 그렇다. 제법 최근 일이다. 서울 콜렉터라는 곳과, 연필을 파는 흑심.이라는 곳의 기간 한정 콜라보 카페를 들른 적이 있다. 수많은 빈티지 연필들이 있고, 작은 방 안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공간을 빌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오래된 책상에서 얄팍한 종이 위에 연필을 눌러쓰는 감각은 새로웠다. 단단한 흑연이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소리 없이 닳는 감각. 굵기에 따라 달라지는 손의 감각, 뾰족함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 연필의 흑연심을 흉내 내어 이름 붙인 에이치비 블렌드를 차갑게 마시며 나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물과 온도, 분쇄도, 브루잉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와 연필은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 커피. 연필, 또 다른 무언 것도 그렇겠지.



공간을 잠시 빌렸다 나만의 시간을 가진 다음, 근처에 있는 '흑심'에 들렀다. 빈티지 연필을 구해두고 파는 귀한 곳이었다. 연필 아래에는 연필에 대한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시필을 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어떤 성격의 나무로 어떻게 만들어진 연필인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평일 오후, 뜨문뜨문 손님이 오는 그곳에서 나는 몇 자루의 연필을 담았다. 그 이후부터였다. 연필로 하루의 일기를 남기게 된 건.


흑심. 빈티지 연필과, 연필에 관련된 도구를 파는 아주 귀여운 연필가게다. 



하트 모양의 연필, 매일의 나를 기록하는 녀석이다. 연필깎이는 프리즈마에서 나온 것.



필압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다르게 적힌다. 두께에 따라 힘을 주어야 하는 것도 다를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흑연처럼 닳아 가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연필이 금세 깎아야 하는 필기도구인 줄은 이전에 미처 몰랐다. 이제 쓰던 연필들도 금세 키가 작아진다. 어렸을 때 몽당연필을 보고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몽당연필이 되는 연필의 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소모품처럼 닳아가는 몸, 마음, 정신. 흘러가는 시간. 나이 먹는 삶. 우리는 하루하루의 시간을 공평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지만, 스스로의 소모에 대해서는 얼마나 생각하고, 신경 쓰고 있을까. 


이제 제법 닳아버린 하트 모양 연필의 연필캡을 벗기며, 내일즈음엔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줘야지, 생각했다. 생각보다 더 빨리 흐르는 시간, 하릴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절의 모양. 이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더라도 제 몸의 쓰임새를 아는 연필처럼. 내가 어떻게 쓰이는지, 어디서 어떻게 닳고 있는지를 잊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게 된다. 올해는 봄보다 여름이 먼저 올 모양이다. 오늘 오후의 빛이 벌써

여름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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