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다 뭐람.
손 쓸 수 없는 시간들은 흘러갔고, 결국 무력하게 한 해가 넘어가 버렸다. '버렸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1월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사회는 안팎으로 떠들썩했고, 각자 모두 각자의 전투에서 버티는 중이었다. '연말 같지 않은 연말'을 지나, '연초 같지 않은 연초' 같은 1월을 맞았다. 나도, (이렇게 생각할) 누군가들도.
영하 몇 도,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몇 번의 눈이 내렸고 바닥도 강도 몇 번 얼었다. 추위에 익숙한 모두들은 꽁꽁 스스로를 싸매고 다녔다. 거리에는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쓰고, 모두를 가릴 기세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이윽고 마스크 해제령이 내려졌고, 권고 수준으로 변경되었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쓴 내 말이 작다고 아우성치는 손님들은 존재했다. 목소리를 크게 하면 그제야 미간을 찌푸리다 놓는 손님들을 만나며 이 지옥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무력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새해에 목표를 설정하지 않게 된 것은, 며칠 전에 아끼는 누군가에게 올해의 목표가 무엇이냐 물은 적이 있었다. '건강'이 목표라고 했다. 나는 엷게 웃었다. 그렇지, 건강한 것이 제일 중요하지. 나는 되물어도 대답할 것이 없었다. 목표 같은 걸 정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으니까. 그저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이 작은 원이라면 원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것. 평소처럼 하루를 보내는 것, 이것이 얼마나 중하고 쉽지 않은 일인지를 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한 지 십몇년이 지나고서야 알고 만 거다. 이미 지쳐버린 저 사람이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며 나에게 화를 내지 않을 확률. 마스크를 쓰고 응대하는 웃는 내 얼굴을 보고 저 사람이 무난하게 본인이 원하는 주문을 무사하게 마칠 확률.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일에, 사람이 버거워지다니. 사람에게 에너지를 놓으면서 다시 에너지를 채우는 나날들이 반복되었다.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이렇게나 쉽잖다니.
올해. 2023년엔 신정에도 구정에도 부러 먼저 새해 인사를 하지 않았다. 새해 복 많이 받아, 하는 인사 같은 것, 먼저 들을 때에야 같은 대답으로 상냥하게 메시지를 적기는 했다. 다만 그냥 무소식이 희소식인 양, 모두가 평범한 하루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아내는 마음으로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22에서 23으로. 12에서 1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으로. 의미를 두려면 둘 수 있겠지만, 의미를 두지 않으면 의미가 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는 누구라도 무사했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에서, 혹은 당황하게 만드는 것들에서, 그런 상황에서. 평온하지는 않더라도 익숙하면서도 지루한 하루가 의미가 없어도 의미가 있기를. 혹은, 의미가 없어도 그 자체로 괜찮기를.
2월이다. 다음 주의 하드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이번 주의 투오프를 잘 보내야 한다는 의무 같은 느낌으로 바다를 보러 안목에 왔다. 열심히 물멍을 때리다 돌아가면 또 내일은 내일의 내가 무언가를 해내겠지. 새해가 다 뭐람. 이미 한 달은 지나갔고, 떡국을 먹어치운 1월도 자취를 감췄다. 모두의 매일이 평안하길,
그전에 나를 포함한 모두의 매일이 무사하기를.
나는 늦은 목표를 세우는 대신 그렇게 앙망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