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도 Mar 16. 2024

업 무 외 상 병

잠시 pause버튼을 누르고 난 뒤에야,

계절이 무력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출근 전 기온으로 알아채는 삶을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해가 바뀌고, 만 나이로 마흔이 되었다. 만이라니, 진작 더 30대에 대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아쉬운 몇 달이 지났다.

특별한 것들 없이 매일이 지나갔다. 일, 집. 일, 집. 변화는 없었다. 중간 관리자 업무는 슬슬 익숙해졌고 쉬는 날에는 집을 돌보고, 쉬지 않는 날에는 고객 응대에 집중했다. 사람 사이에서 치유되면서 사람 사이에서 상처를 받는 날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수면 시 먹는 알약이 하나 더 늘어났을 뿐,


인력 조정에 변화가 생겼다, 매장의 인원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변화였고, 윗 쪽에서 정해져 통보로 내려오는 '조정'의, 그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떨어지지 않은 감기보다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평균으로 내는 매출로 인력을 조정하기엔 너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많았고, 가이드라인보다 인원은 늘 모자랐다. 그렇게 몇 시간 근무하고 나면 하얗게 머리가 새는 기분이 들곤 했다.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업무, 멍한 눈으로 샤워를 하면서 다음 날의 출근을 걱정하게 될 정도의 피로. 4학년이 되면 매일이 다르다더니 어쩔 수 없나? 거울 속 나를 보고 묻는 순간이 많아졌다. 주방은 늘 너저분했고, 돌아와서 집 안을 둘러보면 한숨부터 났다. 언제부턴가 쉬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그득한 어느 날 밤, 박스를 잔뜩 들고나가 분리수거를 하다가 아파트 앞에서 후드드득 넘어졌다. 가벼운 박스가 또르르륵 저 멀리까지 굴러가는데 윽, 하고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잠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흑 , 하고 30초 정도 주저앉아 있었을까, 다시 일어날 기운이 나 일어났더니 왼쪽 발을 살짝 절게 되었지만 걸을만했다. 쉬는 날 밤에 이게 무슨, 시계를 확인하니 일곱 시 반이었다. 다음날 출근이 아침이라 자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거의 다 해 둔 터였다. 걷기가 조금 불편했지만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환부가 크게 부어 있었는데 어디가 다쳤는지를 알 수 없었다. 왼 발이 잔뜩 부었다는 거 말고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냉동실에 얼려뒀던 아이스팩을 찜질팩 삼아 침대에 누웠다. 가라앉긴 할까, 걱정하며 잠들었다 눈 뜨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환부를 살펴보니 일부는 부기가 가라앉아 있었으나 통증이 좀 심한 편이었다. 그날은 주말이라, 병원들이 일찍 문을 닫을 터였다. 고민을 했지만, 우선 움직일 수는 있으니 출근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우리 딸은 참 성실하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몇십 년 전 아버지의 칭찬이 갑자기 생각난 건 왜였을까, 압박 스타킹을 신고 발목에 작은 아이스 팩을 끼었다. 조금 낙낙한 신발을 신고 출근을 했다.


스케줄 표를 살펴보니 열한 시 즈음이 쉬는 시간이었다. 바로 위층에 통증 클리닉이 오후 한 시까지였기 때문에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병원에 다녀오면 되겠다 싶었다. 마침 오전에 단체 음료를 사러 오신 위층 병원 의사 선생님께 '발 삔 것도 봐주시나요?' 하고 여쭸다. 그럼요, 하는 대답을 듣고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엑스레이를 찍으러 올라갔다. 다리는 절뚝거리지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다. 크게 걱정은 안 했는데, 갑자기 골절 가능성이 있으니 조금 더 큰 병원에서 ct를 찍어보라는 진단서가 나왔다. 우선 반깁스 해드릴게요, 하는 소리를 듣는데 아니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에 갑자기 어버버 말이 안 나오는 상태가 됐다. 간호사 분들이 왼쪽 발에 반깁스를 벨크로로 찌익찌익 고정하는 동안, '이거 얼마나 해야 해요?' 란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아마 2주 이상은 하셔야 할 거예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다.

오늘은 주말, 다음 출근자는 아직 몇 시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 피크는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반깁스를 한 채로 매장으로 내려갔다. 다들 놀란 눈치였다. 우선 내가 뒤통수가 얼얼했다. 골절 가능성이라니. 크게 생각하지 않은 내가 미련한 건지, 그 상태로 출근을 한 내가 잘못한 건지. 판단이 어려웠다.


마침 점장님이 식사를 하시러 갈 시간이라, 한 시간 정도 서서 포스를 봐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조퇴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년에 가장 잘한 일이 '차를 산 일'이라는 엄마에게. 갑자기 넘어져서 반깁스를 했다고 이야기를 하려니 머쓱했다. 가뜩이나 자주 연락하는 살가운 딸도 아닌데 데리러 올 수 있냐고 말하면서 조금 헛웃음이 났다.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조금 덜 힘든 일을 찾아보는 건 안 되겠니?'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엄마에게.



매장 앞에서 차를 기다리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봄 같았지만, 바람이 꽤 불고 있어 날이 찼다.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오시는 고객님을 매장 앞에서 뵈었다. 마스크를 안 하고 인사를 드리니 처음에는 못 알아보시더니 이내 알아보시고는 깜짝 놀라시더라. 발 보면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하는 고객님에게, 당분간은 못 보겠네, 몸조리 잘해요. 하고 때아닌 덕담도 들었다. 횡단보도 앞에서의 스몰토크라니. 별 일이 다 있다. 나는 빈 눈으로 웃었다.


엄마와 함께 간 근처 병원 정형외과에서는, 골절이 아닌 인대가 늘어난 상태라고 했다. 당분간 왼쪽 발을 쓰지 않는 것을 권하며 가장 먼저 건넨 건 목발이었다. 엄마가, 이전에 남동생이 쓰던 목발 버렸는데, 하고 아쉬워했다. 엄마답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웃었다. 깁스 자체를 해 보는 것이 처음이라 불편했다. 목발은 아예 써 본 적이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걷는 법을 알려 주셨다. 환부가 땡땡 부은 상태에서 고정해 둔 부목이라 그런지 피가 잘 안 통하는 느낌이었다. 가방을 멜 수도 없었고, 걸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힘을 주는 것도 어색했다. 이것조차도 새로운 세계겠구나. 잠시 생각했다. 인대가 늘어나도, 골절이어도. 처치는 같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한주 이후에 더 보자는 말과 함께 아침과 저녁에 먹는 약이 처방되었다. 염증을 가라앉혀 주는 약일 터였다. '어디에서 일하시나요?' 하고 묻던 선생님은 안정 가료기간 4주가 프린트된 진단서를 같이 내주었다. 나는 매장에 연락을 해 놓고, 목발과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 들어섰다. 아침에 나갈 때와는 모든 게 다른 상황이었다. 잠시 머리가 멍. 하고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이 참에 쉬는 거야, 엄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둥둥 떠 다녔다. 반깁스를 한 채로요?


한 달. 의 업무 외 상병. 이 갑자기 생긴 토요일 오후. 먼지가 많아 하늘은 뽀오얗고 나는 왼쪽 다리를 제대로 펴고 앉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가만히 중얼거렸다. '내려온 동아줄이 반깁스라니.'



어딘가를 갈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침구를 가볍게 정리하거나, 샤워를 하거나 몸을 말리는 것. 옷을 개거나 필요 없는 것들을 치우는 것, 앉아서 설거지를 하거나 집 안에서만 움직이며 할 수 있는 일들. 피아노를 치거나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거나 글을 읽는 그런 일들 뿐이었다. 먼지를 쌓인 책장에서 읽지 않는 책을 꺼내어 정리하는 것으로 둘째 날을 보냈다. 다음 날엔 먹지 않는 영양제와 약들을 정리했다. 그다음 날엔 쌓인 설거지를 하고 미뤄뒀던 주방을 닦았다. 아침마다 목발을 짚은 채로 커피를 내렸다. 목발 생활도 2주 정도 하니 익숙해졌다. 밤이 되면 샤워를 하고 발 찜질을 하는 게 익숙해질 무렵, 공부와 독서를 다시 시작했다. 읽고 싶었던 일본어 원서를 꺼내 침대 옆으로 두었다. 밀린 드라마를 틀어 두고 먼지 제거 정도는 했다. 다만 빨래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겨울 외투 드라이를 맡기면서 생활 빨래도 맡기는 경험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색색깔대로 세탁된 세탁물은 잘 정리된 채로 차곡차곡 쌓여 하루 만에 정리되어 왔다. 책등의 배열을 맞추고, 일기를 쓰고. 만년필을 세척하고 잉크를 채우는 일들을 했다. 움직일 수 있는 제한이 생길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은 외려 늘어났다. 잊고 있었던 일들이 계속 생각났다.


11월, 12월에 걸쳐 6주 동안 써서 퇴고한 책의 초판을 전부 판매하고 나서 그 책의 2쇄를 찍는 작업도 했다. 많은 분들이 내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읽어 주셨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제는 책을 부치러 목발을 짚고 책을 잔뜩 둘러메고 5분 거리의 편의점에 다녀왔다. 5분을 걷는 데에도 제법 많은 품이 들었다. 23일에는 매장에 돌아가야 하는데, 18일에 과연 깁스를 풀 수 있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해도 햇볕이 따뜻한 건 매한가지였다. 바깥은 봄이었다. 모르는 새, 또다시.

봄이 되어 있었다.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 난 이후에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집에만 있어서 힘들지?'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브를 시켜준다며, 날 가까운 어디론가 데려가서는 맛있는 걸 사 주시곤 했다.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고 평소에 할 수 없던 이야기들을 했다. 이런 시간들이 내게 정말 오래전부터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비록 불편한 발에, 한 달을 무급으로 쉬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집의 모든 것들이 훤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 내 물건에 더 많은 애정이 생긴 것.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내 에너지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어떻게 해야만 나를 잘 돌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한. 달. 사진을 찍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은, 그 행동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내 발걸음을 느리게 했기 때문이었지. 나를 잠시 멈추게 하기 때문이었지.


잠시 멈춰가며 나는 나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언제 배가 고픈지, 언제 뭐가 먹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날은 하루종일 잠에만 취해 있는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미열로 고생한 날도, 어떤 날은 쌓인 분리수거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던 날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해 줄 수 있어 기뻤던 나날들이었다. 바빴을 때에는 생각도 못 했던 것들, 엄마와 나누는 시간들. 또, 불편하기 때문에 더 소중해지는 일상 같은 것들.


18일에는 다시 병원에 간다, 오후 두 시 즈음엔 깁스를 풀고 발목 보호대로 교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 주를 보내고 나는 주말에 다시 일하는 김수정으로 돌아간다. 업무 외 상병을 보내는 한 달 남짓 되는 기간 동안 생각하고 얻고, 해내었던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한다. 다시 돌아가면 또,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며 지낼 것이다. 따뜻한 봄. 올해도 여전히 미세먼지와 함께겠지만, 그래도 있을 곳. 에 대한 것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때에 나를 찾아와 준 것이 다행이고, 또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많이 지쳐 목이 쉰 채로 마음에서 객혈을 하던 나는 조금은 여유가 생긴 마음으로 다시 있을 곳으로 돌아간다. 플레이 버튼을 다시 누르기 위해, 차분한 마음으로 일주일을 정리해야겠다.


모든 사람들의 봄이,

다 따뜻하지 않아도 소소하게 풍요롭기를.

다 채워지지 않아도 꽃망울을 틔운 봉우리처럼 새초롬하게 아름답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연필 깎는 오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