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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일기 001. 우리는 사랑이 체질이야.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

화실에서 처음 그렸던 그림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몰랐다.


정확히는 느껴지는 감정만 알았을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어떻게 상처를 감싸줘야 할지도 몰랐다. 나를 위한 마음보단 남을 위한 마음이 커서 나를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특히 대학에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겪으면서 모든 상처들이 곪아 터져 나오는 순간이 존재했다. 그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채 사회생활을 3년 이상 지속하다 보니 모든 사회적 에너지가 고갈된 기분이었다. 누구나 이런 상황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고 현실은 아픈 거니까 하면서 나를 다그쳐왔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기도 했었다. 다른 사람은 앞으로 잘만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한없이 제자리를 서성거리며 발걸음을 멈춘 듯 보였다. 그런 나 자신이 못나고 미덥게 보였었다. 어떠한 사회적 관계에서는 철저히 내향적이기도 때로는 온전히 외향적이기도 했다. 나를 잃은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은 책상에 팔을 괴고선 30분 내내 울기도 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슬픈 일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제야 큰일이 생겼음을 알고선 발길을 멈춘 병원으로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작년에 시험 삼아 한번 가봤는데 많이 실망을 한터라 이번 발걸음은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었다.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검색을 한 뒤, 한 곳을 정해 찾아갔다.


닫혀있던 입을 뗀 첫 진료에서 선생님이 해주시는 말씀이 "그 상태라면 아마 숨 쉬는 나 자신의 호흡조차 싫고 답답하게 느껴졌을 거예요. 작년부터 꾸준히 치료했다면 더 좋았겠어요. 현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많이 없는 상황이고 우리가 쉴 수 있을 때, 어떻게 재밌게 놀까? 더 재미있게 쉴 수 있을까 고민해봐요."라고 토닥여주셨다.


요즈음 나는 열심히 나를 회복하기 위해 전념을 다하고 있다. 하루 종일 자기도 하고, 하루 종일 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흥미있는 역사 강의를 듣는다. 또 어떤 날은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지새우기도 한다. 이전보다 많이 행복해지고 있다. 약도 꾸준히 먹으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을 한다. 열심히 나를 가꾸고 있다.



나 자신이 먼저 행복해지고, 내가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더욱 사랑할 수 있겠다싶었다. 


꾸준히 나오는 주제, 나를 사랑하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꾸준히 연습해야한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길이 나르시즘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이 말뜻 안엔 나를 올바르게 인도해야한다고, 자기연민을 심하게 할까봐 걱정된다는 뜻이겠지.


내 속의 부족함을 찾으며 성찰하고 성숙으로 나아가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계속 나를 다그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채찍과 당근이 함께 공존하듯이, 힘들때면 나에게 달콤한 당근 머핀과 커피 한잔이 필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환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오늘 할 수 있는 일부터 무리하지 않게 해 나가는 것이 지금 더 중요하다.


감사하게도 그전에 일했던 알바와 그 전 직장이 맞물려서 실업급여를 타게 되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경제적 문제는 한동안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 소개로 복지센터 지원도 받고, 최근엔 청년 심리상담도 지원받게 되어서 알아보는 중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감사하다. 비록 많은 환자의 대기로 진료시간이 짧은 날도 있지만, 갈 때마다 받는 격려는 이와 비교할 수 없다. 짧은 시간이라도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는 분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미루고 미루던 글자들을 조금씩 내 입맛에 맞게 고치고 있다. 하나씩, 조금씩, 천천히 하더라도 포기하진 말자.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결과보다 과정에 의의를 두며 하늘을 바라보고 살자.



과거는 지나갔고, 더 집중해야 할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끝없는 현재이니까.



주위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가끔씩 잔잔한 행복감을 누리자. 죽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나 참 잘 살았구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 항상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지만, 슬픈 일 또한 항상 있을 순 없다. 우리의 삶은 누구와 비교할 수 도 없고 모두 존재가치가 다르니까 나만의 길로 부끄럽지 않게 걸어 나가자. 모든 것에 사랑 받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나를 사랑하는 나와, 나를 사랑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소수의 존재들을 믿자. 우리는 사랑이 체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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