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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an 11. 2020

아웃백의 엽기적인 구렁이 쇼

앨리스 스프링스-피자파티와 구렁이 쇼

이크구렁이와 입맞춤을 하다니...     


"이크! 구렁이다!"  

   

디저리두(didgeridoo-동물 원음 소리를 내는 애버리진들의 악기)의 음률에 따라 거대한 구렁이 서서히 꿈틀거렸다. 낮고 느린 저음의 율동에 맞추어 거대한 구렁이가 사람들의 목을 타고 꿈틀거렸다. 


"와우~ 크기도 하다!" 

"에고고고, 징그러워요!" 


아내는 구렁이를 보고 질겁을 했다. 구렁이는 5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이렇게 큰 뱀은 처음 본다. 구렁이는 매우 얌전했다. 여행자들의 목을 타고 느리게 꿈틀거렸다. 구렁이는 입을 여행자의 입 가까이까지 대고 능청스럽게 혀를 날름거렸다. 


"으으으, 능구렁이처럼 능청스럽다는 말이 저기에서 나온 모양이군."

"아이고, 사람 잡네요. 물리면 어쩌려고 저러지요?"


혀를 날름거리는 구렁이도, 바로 코 앞에서 구렁이 혀를 바라보는 여인도 대단한 담력을 가진 것 같았다. 간 큰 여인에, 간 큰 구렁이... 으윽~ 나는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데 정말 기절초풍하겠다. 사람의 영혼을 뒤흔드는 디저리두의 묘한  음률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전혀 다른 환상의 세계로 몰아가게 했다. 젊은이들이 너도 나도 무대 위로 올라가 큰 구렁이를 어깨에 걸쳤다. 


"히야! 야호! 오~예! 흐흐흐, 까악!"  구렁이를 어깨에 걸친 젊은이들은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저마다 질러대는 괴성은 디저리두와 묘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부웅~부웅~ 부웅~ 뿌우~ 뿌우! 그르릉~"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는 듯한 디저리두의 음률은 마치 구렁이가 우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디저리두는 호주 원주민의 전통 악기로 원주민 창세신화시대인 꿈의 시대(Dreamtime)부터 만들어진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 중의 하나다. 단단한 유칼립투스 나무로 제작된 디저리두는 관이 아랫부분으로 갈수록 커지는 원뿔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원음의 소리는 새나 짐승 등 동물들의 다양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사람의 영혼을 뒤흔들 듯한 디저리두 낮고 깊은 원음 소리가 느리게 꿈틀거리는 구렁이의 율동에 퍽 어울려 보였다. 디저리두가 울려주는 영혼의 소리를 알아듣고 구렁이가 춤을 추는 것일까? 엽기적인 아웃백의 밤이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디저리두의 음률과 느린 동작으로 꿈틀거리는 구렁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먼 원시시대로 회귀한 느낌이 들었다. 태초에 원주민들은 이렇게 동물들과 한데 어울려 살지 않았을까? 디저리두는 당초 원주민들의 성스러운 종교의식에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팝 음악이나 뉴에이지, 명상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도 활용되고 있다.

      

2박 3일간의 부시맨 워킹에서 앨리스 스프링스로 돌아온 날 밤 멜랑카 바(Melalanka's Bar)에서 피자파티가 있었다. 가이드 글렘이 소속한 여행사에서 주선하는 파티였다. 보행자 전용의 토드 몰 거리에는 애버리지니 아트 갤러리나 기이한 카페, 전문점 등이 줄지어 있다. 피자파티가 열리는 멜랑카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니 벌써 일행들이 와있었다. 이 파티에는 우리 일행만 오는 것이 아니라 아웃 백의 부시맨 워킹에 참여했던 다른 여행사의 젊은 일행들도 많이 와 있었다.   

  

피자 한판에 대여섯 명이 둘러앉고 호주 맥주나 콜라가 나왔다. 홀에는 애버리지니 전통음악인 디저리두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바람소리 같은 디저리두 음악을 들으며 여행담으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피자 파티의 가장 볼거리는 엽기적인 구렁이 쇼였다. 구렁이 쇼는 거대한 구렁이를 무대로 들고 나와 여행자들이 직접 만지며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쇼 진행자가 거대한 구렁이를 목에 감고 나오자 모두 놀라며 입을 벌렸다. 동물의 소리를 내는 디저리두 음률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이윽고 호기심이 동한 여행자들이 하나 둘 무대 위로 올라가 구렁이를 어깨에  멘다. 드디어 무대 뒤에 줄을 설 정도로 많은 관중이 올라간다. 호주의 아웃 백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초유의 엽기적인 추억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  처음에는 다들 움찔하다가 호기심이 동한 여행자들은 하나 둘 무대 위로 올라가 엽기적인 체험을 하고 싶어 했다.   

   

구렁이는 엄청나게 컸지만 독이 없고 순했다. 아마 조련사에 의하여 훈련을 받은 뱀 같았다. 목에 감고 입을 맞추고 만져도 구렁이는 순순히 응해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남자보다도 여자가 호기심이 더 많다는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더 많이 무대로 뛰어올라갔다. 드림타임 시대에 뱀을 조상으로 하는 원주민들이 이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무대에 선 젊은이들은 디저리두 선율이 울려 퍼지는 무대에서 구렁이를 만지고 입을 맞추고 괴성을 지르며 엽기적인 분위기를 만끽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도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대에 올라가 조심스럽게 구렁이의 살을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다. 으윽! 구렁이의 살이 손에 닿는 순간 놀랍도록 차가웠다. 그러나 그 감촉은 여인의 속살처럼 부드러웠다.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아웃백의 더위도 차가운 구렁이의 살이 몸에 닿는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게 했다. 뱀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짜릿한 순간을 보내는 동안 모든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 버린다. 아웃 백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뱀은 보기에는 징그럽지만 동물 중에서 깨끗한 편에 속한다. 뱀은 지혜와 의술의 상징이기도 하다. 성경에도 “뱀의 지혜를 배워라(마 10:16)”는 구절이 있지 않은가? 아내는 뱀이 징그럽다며 빨리 나가자고 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구렁이의 쇼가 끝나기 전에 레스토랑을 나왔다. 


호스텔로 돌아와 아내는 냉장고에서 인슐린을 꺼내서 점검을 하고 밤에 맞는 인슐린 주사를 맞았다. 하루에 4번씩이나 인슐린을 맞으며 혈당을 조절하면서 여행을 하는 아내의 정신은 광연 초인적이다. 아내는 인슐린을 맞은 뒤 피곤하다며 도미토리 침대에 먼저 누웠다. 아내가 잠든 사이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나는 호스텔과 인접해 있는 토드(Todd) 강으로 걸어 나갔다.  


매우 건조한 지역에 위치한 토드 강은 비가 올 때문 물이 흐르는 임시적인 강이다. 나는 강변을 따라 걸어 걷다가 강변 둑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공해가 없는 사막의 하늘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어둠을 타고 서서히 강변으로 내려왔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깊은 호흡을 하면서 잠시 깊은 명상에 잠겼다. 코로 숨을 힘껏 들이마시고, 입을 작게 벌려 서서히 숨을 토해냈다. 


그렇게 들숨과 날숨을 백번 정도 하고 나니 정신이 맑아졌다. 내 주위와 정신세계에는 점점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로 돌아가고 오직 들숨과 날숨만이 남는다. 그 순간에는 하늘과 땅과 별이 나를 외호 해주고 있었다. 호주 대륙 대자연의 품에 안긴 나는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았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인간이란 참으로 하찮은 존재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내일은 다윈으로 떠난다. 그곳엔 태초의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카카두 국립공원이 있다. 건조한 사막의 품에서 나는 거대한 습지와 엄청난 비가 내리는 대자연의 품속에 안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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