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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Jan 10. 2020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킹스캐니언 부시워킹

'에덴정원' 자연풀장에서 목욕을...

호주 아웃백 킹스캐니언  부시워킹


킹스캐니언에서 맞이한 새해 아침


호주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킹스캐니언은 울루루에서 북동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와타르카 국립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도중에 우리는 자동차를 멈추고 죽은 나뭇가지를 주어서 캠핑카에 실었다. 글렘의 말로는 오늘 밤 송년파티를 하는데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날씨가 너무나 더워 나무토막 몇 개를 줍는데도 온 몸이 비지땀으로 흠뻑 적셨다.


땔감을 마련하는 것도 야생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황무지에는 유칼리나무 같은 마른나무 가지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모두가 열심히 나뭇가지를 주어서 캠핑카의 트레일러에 실었다. 킹스캐니언으로 가는 좁은 길로 들어서자 붉은 먼지가 풀풀 휘날리는 비포장도로다. 


캠프파이어에 사용할 죽은 나뭇가지를 주워서 실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가는 자동차는 파도처럼 요동을 쳤다. 롤러코스트가 따로 없다. 글렘은 자동차의 율동에 맞는 경쾌한 음악을 틀더니 춤을 추듯 운전을 했다. 젊은이들도 음악에 맞추어 롤러코스트를 타듯 춤을 추었다. 역시 젊음이 좋다. 스마트한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스릴이 넘쳐흘렀다. 


킹스캐니언 캠핑 로지에 도착을 하니 저녁 5시 30분이다. 오늘 밤에도 텐트에서 야영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푸른색 천으로 드문드문 쳐진 텐트는 마치 군 막사를 방불케 했다. 배정된 야영텐트에 짐을 풀고 각자가 맡은 소임을 맡아 저녁식사를 마련했다. 


마침 일행 중에 일본에서 온 한 여자 여행자가 생일날이어서 우리는 모두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불러주며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그녀는 오지에서 맞이한 생일 축하 노래에 감격을 받은 듯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더욱이 한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날이어서인지 생일파티는 분위기를 한 층 들뜨게 만들어 주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텐트 밖으로 나와 오늘 길에 숲에서 주어온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캠프파이어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았다. 탁탁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컴컴한 밤에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은 바라보며 모두들 향수에 젖어드는 것 같았다.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모닥불 앞에 모여 묶은 해를 모닥불에 태워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킹스캐니언 로지 캠프파이어. 12월 31일 밤


오지에서 맞이한 송년의 밤은 텔레비전도, 자동차도, 전화도 없는 단절된 낯선 세계였다. 지금쯤 집에 있으면 거실의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눈과 귀와 생각을 텔레비전에 뺏기고 있을 텐데……. 그러나 이곳엔 텔레비전 대신 하늘엔 별이 총총 빛나고, 땅에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대자연 속에서 맞이하는 송년의 밤은 진한 감동을 주었다. 우리는 타는 모닥불을 뛰어넘으며 환성을 질렀다.


어릴 때 섣달 그믐날이면 고향집에서 대나무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 가랑이 사이로 뛰어넘으며 새해 희망을 기원하곤 했었던 생각이 났다. 그렇게 대나무 모닥불을 뛰어넘으면 한 해가 재앙이 물러나고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었다. 이곳 이국의 낯선 땅에서도 모두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모닥불을 뛰어넘으면서 새해 희망을 기원했다. 우리도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새해 희망을 기원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아가게 해 달라고. 자정이 넘어 우리는 “해피 뉴 이어!”를 외치며 각자의 텐트로 돌아갔다.


이윽고……. 야영텐트에서 1월 1일 새해 첫날 아침이 밝았다. 아내와 나는 5시에 기상을 하여 해가 떠오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유칼리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마음을 훤히 밝혀주고 있었다. 한국을 향해 영이와 경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쳐 불렀다. 


“영이야, 경이야, 사랑해!”


킹스캐니언에서 맞이한 새해 아침


그러나 우리들의 소리는 허공 속으로 곧 사라지고 말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부모의 애틋한 마음은 알아들었으리라. 집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되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동안 해를 넘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행은 돌아갈 집에 있기에 떠나는 것이다. 아이들과 집이 그리웠다. 



양파의 속살 같은 태초의 신비, 킹스캐니언 부시워킹

  

아침 7시 정각에 우리는 킹스캐니언 트레킹에 나섰다. 글렘은 날씨가 뜨거워지기 전에 일찍 떠나야 한다며 서둘렀다. 우리가 택한 코스는 4~5시간 정도 걸리는 킹스캐니언 림 워크(Kings Canyon Rim Walk)이다. 킹스캐니언에서 트레킹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코스다. 


날씨가 너무나 더웠다. 무엇보다도 물을 충분히 가지고 가야 했다. 뜨거운 지열로 수은주는 섭씨 50도가 넘어서고 있었다. 초입부터 숨이 찼다. 글렘은 트레킹 초반이 가장 힘들다고 하며 헉헉거리는 우리들을 격려했다. 초입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비지땀이 온몸을 적셨다. 


산등성이에 올라가니 장엄한 경관이 펼쳐졌다. 수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수백 개의 돔형 모래 바위들은 마치 폐허가 된 고대 도시를 연상케 했다. 원주민들은 이곳을 '잃어버린 도시'라고 부른다고 했다. 우리는 마치 고대 도시를 접수한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길을 걸어갔다. 


킹스캐니언 부시워킹(좌), '잃어버린 도시'라 불리어지는 붉은 돔(우)


원주민 루리차(Luritja) 족들이 지난 2만 년 동안 살았었다는 킹스캐니언은 분명 색다른 무엇이 있었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깎인 사암 절벽은 태초의 신비로움을 가득 안고 있어 외계인의 땅에 불시착을 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와타르카 국립공원은 71,000 헥타르에 뻗어있는 방대한 붉은 땅으로 루리차 원주민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글렘은 루리차 족과 외계인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을 전해주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루리차 족이 외계인과 함께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붉은색은 외계인들이 좋아하는 색이라나. 외계인들이 루리차 족을 선택한 이유는 루리차 족의 유연성과 킹스캐니언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루리차 족들은 외계인들이 이곳에 착륙을 했을 때에 경계심을 갖거나 공격을 하는 대신 연회를 베풀며 춤과 노래로 환대를 했다고 한다. 외계인들이 완전히 떠나버렸는지, 아니면 지금도 투명인간으로 여행자들을 지켜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비한 장소에는 여러 가지 신비한 이야기와 전설이 떠돌기 마련이다.      


잃어버린 도시를 지나 흉측하게 벌어진 바위를 건너뛰다 보니 두부처럼 매끈하게 잘린 황금빛 절벽이 나타났다. 마치 붉은 복숭아를 반으로 갈라놓은 듯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절벽의 속살은 감동 그 자체였다. 껍질을 벗길수록 더욱 연한 속살을 드러내는 양파처럼, 숲을 헤집고 계곡과 언덕을 지나 안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태초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는 곳이 킹스캐니언이다. 


양파의 속살 같은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킹스캐니언


절벽에는 어떤 안전보호시설도 없었다. 깎아지른 절벽이 300미터가 넘었다. 우리는 절벽 끝에 간신히 엎디어 아슬아슬한 절벽을 내려다보았다. 절벽 끝에 엎디어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는 스릴은 마치 바이킹 놀이기구를 탄 듯 아찔하게 오금이 저려왔다.


붉은 절벽은 케이크를 잘라 놓은 단면처럼 수직으로 뻗어 있고, 그 너머로 공룡의 거대한 알처럼 보이는 작은 돔들이 수없이 엎어져 있다. 혹자는 붉은 돔들을 외계인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무덤이 아니라 에일리언(외계인)들의 알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설도 믿기가 어려웠다. 단지 그것은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놀라운 풍경으로 다가올 뿐이다. 

     

절벽에 엎디어 한동안 스릴 넘치는 풍경을 바라본 후, 우리는 다시 계곡을 따라 걸어갔다. 깊게 파인 절벽 사이로 버드나무 같은 유칼리나무와 양치류 식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작은 숲이 나왔다. 길을 걷다가 벌레에 물리기도 했는데 글렘은 야생에서 채취한 진액을 발라 치료를 해주었다. 일행 중에 벌레에 물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여성 여행자가 있었는데 글렘은 식물의 하얀 진액을 채취하여 즉석에서 벌레 물린 곳에 발라주었다. 진액을 바른 그녀는 한결 가려움증이 나아졌다고 했다.


에덴 정원으로 가는 길에 피어 있는 야생화


킹스캐니언은 오스트레일리아 중부에서 식물이 가장 풍부한 지역의 하나로, 주변 사막을 피해 온 동물들의 안식처이기도 한 곳이다. 이 공원에는 세 개의 거대한 생물지질학적 지역이 겹쳐져 있다. 킹스캐니언에는 600종 이상의 토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식물이다. 이 공원을 '살아 있는 식물 박물관'이라고 부를 만큼 고대의 소철이 자라고 있으며 3억 년 전 고사리의 화석도 나온다. 심지어 '살아 있는 화석'도 발견된다.

     

유칼립투스가 우거진 계곡에는 나무로 만든 길들이 잘 놓여있었다. 계곡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더위에 지친 일들은 모두 와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물소리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가니 배추 속살 같은 정원이 펼쳐진다. '에덴 정원'이라 부르는 계곡은 마치 아담과 이브가 살았을 법한 비밀의 장소처럼 아늑했다.



에덴정원의 자연풀장에서 멱을 감다


나무계단으로 이어진 절벽을 내려가니 아주 은밀한 곳에 작은 연못이 나왔다. 이런 곳에 연못이 있다니! 마치 어머니의 자궁 같은 아늑하게만 느껴지는 연못이다. 정말 에덴정원에서 아담과 이브가 목욕을 했던 연못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은밀한 장소였다. 사람들은 마치 아담과 이브라도 된 듯 거의 알몸이 되어 자연 풀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에덴 정원 자연풀장에서 멱을 감는 여행자들


절벽이 만들어낸 그늘 때문에 먹물을 풀어놓은 듯 물이 검게 보였다. 그러나 물이 얼마나 맑던지 물속에 비치는 풍경이 명경처럼 맑게 다가왔다. 나도 더위를 참지 못하고 웃통을 벗어재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연못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데 아내의 만류로 가까스로 참았다. 발만 담그고 있어도 계곡물은 시원했다. 아득히 먼 절벽 위에 있는 사람들도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션을 취했다. 날씨가 워낙 덥다 보니 누구나 물속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웃통을 벗고 찍은 바짝 마른 내 모습이 생뚱맞은 외계인처럼 보였다. 


에덴 정원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다시 트랙을 따라 절벽을 올랐다. 애버리지니의 드림타임에 따르면 고양이 형상의 조상신들은 수백, 수천 개의 돔 위에 앉아 정신을 통일하고 세상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애버리지니들은 디저리두를 불어 아침을 알리고,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넜다. 이 땅은 원주민이 그들의 율법에 따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애버리지니 들의 땅이다. 그러나 백인에 의해 정복된 아웃 백은 더 이상 애버리지니의 드림타임이 없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시간! 킹스캐니언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은 말과 글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킹스캐니언의 부시워킹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 같다.     





*아웃백 부시워킹은 몇 가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공원에 도착을 하면 방문 센터에서 워킹 트랙에 관한 자세한 정보와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서를 꼭 챙겨 두어야 한다. 그리고 부시워킹을 할 때는 안내서, 지도, 표지판을 눈여겨 살펴보고, 최소한 2리터 이상의 충분한 물을 준비해야 한다. 선글라스, 비상식량, 자외선 차단제는 기본 준비물이고 벌레에 물렸을 때 비상약도 챙겨야 한다. 


Kings Canyon Rim 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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