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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Feb 17. 2020

아기곰 인형 스탠리를 입양하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홍콩으로 떠나며

스탠리를 안고 브리즈번 호스텔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두 젊은 아가씨들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도미토리에 들어왔다. 독일인들은 단정하고 검소한 옷차림을 한다. 한마디로 깔끔하고 할까? 그들은 서핑을 하기 위해 브리즈번으로 왔다고 했다. 브리즈번에 도착한 날 만났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어디론가 다나가 버리고 업었다. 독일 아가씨들은 1층과 2층 침대에 배낭을 내려놓더니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밖으로 나갔다. 


도미토리 방은 아내와 나 둘뿐 조용했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하여 세계의 각 나라 도시에서 머물렀던 도미토리가 우리에겐 무척 익숙한 방이다. 주황색 벽에 보라색 매트가 어울리게 보였다. 누에고치처럼 켜켜이 층계를 이루며 좁은 침대에서 여러 여행자들과 함께 잠을 자는 것도 우리에겐 무척 익숙해졌다. 공동 화장실, 공용 욕실을 이용하고 밤중에도 오고 가는 여행자들로 인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세계의 여행자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따끈따끈한 여행지의 정보를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점도 많다. 


호주에 도착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내일이면 호주를 떠나 홍콩을 거쳐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집이 그립고, 아이들도 만나고 싶었다. 여행은 돌아갈 곳이 있기에 떠난다고 했던가? 맞는 말이다. 오늘은 짐을 정리하고 일직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우리는 호스텔 카페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일직 잠자리에 들었다.  


1월 9일 아침 10시, 브리즈번 백패커스를 출발하여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공항에 도착하니 11시다. 탑승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오후 1시 50분, 캐세이퍼시픽 CX102 점보기는 브리즈번 이륙하여 창공을 향하여 힘차게 솟아올랐다. 북유럽의 땅 끝에서 남미의 땅 끝으로,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호주로 지구를 돌아왔던 우리는 홍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골드 코스트의 조앤에게서 선물로 받은 인형 스탠리를 소중하게 껴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를 입양이라도 하여 데리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사람이 정이 들어 있는 것은 다 소중하다. 저 스탠리는 지난 7년 동안 조앤의 손길과 숨결이 스며들어 있는 소중한 인형이다.


"당신, 마치 스탠리를 입양하게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 같이 보이네!"

"맞아요. 저도 지금 그 생각을 했어요. 조앤이 애지중지 귀하게 데리고 있었던 인형이니 나도 소중하게 보관해야지요."


뭉게구름이 마치 비행기를 떠받치듯 아름답게 솟아올라 오고 있었다. 지나 온 여정도,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도, 바다와 산도, 모두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다 뜬 구름 같은 것이다! 구름은 그렇게 나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허공에서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구름은 신비한 풍경을 연출했다. 허공에 떠 있는 구름이 마치 빛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높은 하늘에서는 메시아라도 강림할 것처럼 빛살이 신비하게 쏟아져 내렸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의 화려한 오르간 화음이 구름 속에서 웅장하게 퍼져 나오는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판타지아였다.


브리즈번을 떠나며 비행기에서 바라본 신비한 구름


해가 점점 구름 속으로 기울자 붉은 노을이 휘장을 두르듯 붉게 물들여 가기 시작했다. 하얀 구름은 붉은 휘장으로 변해가며 구름 위에 화려한 침상을 깔아 놓고 있었다. 비행기의 날개 아래로 사라져 가는 노을은 놀라움 풍경 그 자체였다. 아름다웠다. 해가 구름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자 이윽고 하늘도 칠흑처럼 어두워지고 말았다.


“우리의 황혼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그렇고 말고요. 이미 우린 저렇게 아름답게 저물어 가고 있지 않겠소?"

"하긴, 저는 지금 이대로가 행복해요!"

"행복과 불행은 전적으로 우리들 생각 속에 달려 있어요."


아내는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린 태양이 아쉬운 듯 서쪽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은 마지막 황혼이 아름다워야 한다.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내 인생의 황혼을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아내와 함께 늦은 나이에 세계 일주를 하는 것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갖은 고생을 다 했지만 모두가 저 아름다운 일몰처럼 한 장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돌아왔다.


허공에 지는 황홀한 일몰


내 인생에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이번 여행은 나와 아내의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한 획을 긋는 아름답고 놀라운 여정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여행이었다. 창공에 해가 지자 저녁 식사가 나왔다. 나는 레드와인 두 잔을 주문했다. 


“우리들의 무사 귀국을 위하여 건배!”

“우리들의 또 다른 여행을 위하여! 건배!”


아내와 나는 붉은 포도주 잔을 부딪치며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축배를 들었다. 스탠리가 옆에서 축하의 갈채를 보내 주는 것 같았다. 포도주를 한 잔 마신 아내는 조앤이 준 스탠리 인형을 부둥켜안고 이내 잠이 들었다. 스탠리와 함께 잠이든 아내의 표정이 무척 평온해 보였다.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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