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Aug 19. 2020

바랑 하나 걸머지고..

티베트 순례를 준비하며...10kg 배낭 줄이기 쉽지 않네!

티베트 순례길 여정도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입도 없고 밑도 없다.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여행 배낭을 꾸릴 때마다 법장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 2005년 열반)의 열반송이 생각난다. 큰 배낭 하나, 작은 배낭 하나가 100일간의 티베트 배낭여행 짐 전부다. 큰 배낭엔 옷가지 등 여행필수품이 들어있다. 큰 배낭의 무게가 10kg을 넘지 않으면 배낭여행의 고수다. 15kg을 넘으면 배낭여행을 하기가 어렵다. 20kg을 넘으면 배낭여행을 할 자격이 없다. 내 큰 배낭은 아무리 짐을 줄여도 13kg이나 되었다. 그러니 배낭여행의 고수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번 티베트 순례는 베트남 하노이에서부터 출발하여 중국 윈난성, 쓰촨성, 차마고도, 티베트 라싸, 인도 다람살라, 라다크까지로 약 100일을 잡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기후가 모두 존재하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사계절이 옷이 필요하다. 나는 무거운 겨울옷은 추운 지방에서는 싼 옷으로 사 입었다가 더운 지방에 갈 때는 현지인들에게 주어버리자는 것이고, 아내는 집에 옷이 다 있는데 굳이 돈을 들여서 새로 살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나는 아내에게 지고 만다. 겨울옷을 빼면 10kg 이내로 줄일 수 있는데, 넣으면 10kg을 훌쩍 넘길 수밖에 없다. 



내 작은 배낭엔 캠코더 1대, 디지털카메라 1대와 필기도구 등이 들어있다. 반면 아내의 작은 배낭엔 온갖 약으로 가득 차 있다. 거기다가 약을 차갑게 유지해주는 아이스 팩도 챙겨야 한다. 아내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란 닉네임을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아내는 오직 여행을 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 때문에 산다. 여행을 가기 위해서 열심히 체력단련을 하고 의사의 지시대로 행동한다. 매일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 1시간, 자전거 타기 1시간 이상을 하고 최소한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가까운 근처의 산을 오른다. 언제나 제때 식사를 하고, 인슐린 주사, 약 복용도 딱딱 어김없이 지킨다. 여행을 위한 노력은 처절하리만큼 철저하다. 그러니 아내의 여행희망을 누가 말리겠는가? 여행은 아내를 지탱하고 치료하는 최고의 명약이다.     


노트북을 들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문제도 항상 여행을 떠날 때 아내와 나 사이에 갈등을 초래는 하는 문제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가면 엄청 편리한 점이 많다. 여행기록과 보관, 사진의 저장과 전송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입장은 정 반대다. 편리한 줄은 알지만, 노트북에 쏟아야 할 시간, 짐이 무거워지는 문제 등이 그것이다. 여행을 즐기려고 가는 것이지 기록을 위해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런 경우 두 딸은 언제나 엄마 편을 들어준다. 


아내의 말이 옳다. 여행을 즐기러 가는 것이지 기록을 위해서 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노트북 대신 PD수첩 두 권과 스프링 메모지를 챙겨 넣었다. 여행비용을 기록하기 위하여 소형 금전출납부도 한 권 챙겼다. 또 한 가지는 카메라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똑딱이 소형 디지털카메라다. 그러나 늘 성능이 좋은 전문가용 카메라가 언제나 눈에 어른거린다. 두 번 다시 가기 어려운 오지의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담아보고 싶은 욕심에서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아내의 입장은 다르다. 그 카메라 살 돈으로 여행을 한 번 더 가자는 것이다. 우리의 추억을 담기엔 지금 자지고 있는 카메라로도 충분하다는 것. 이 또한 아내의 말이 옳다. 이 부분에서도 나는 판정패를 당하고 만다.



항공권은 지금까지 쌓아온 마일리지로 커버했다. 마일리지를 체크 해 보니 2003년도에 세계일주를 하며 쌓아놓은 캐세이퍼시픽 65,772마일, 대한항공 62,571마일, 아시아나항공 23,608마일이 있었다. 2년 전 세계일주 시에 쌓은 캐세이퍼시픽은 5년이 경과 하면 마일리지 효력이 없어진다. 어어 하다가 금방 마일리지 효력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니 생각났을 때 사용하자는 아내의 의견은 매우 현실적이다. 더욱이 올해(2005년) 3월1일부터 마일리지 공제가 유럽과 미주지역은 1만 마일 이상 올랐는데, 동남아시아는 오히려 5천 마일씩 내려서 적기에 사용할 기회다. 인천에서 하노이까지는 대한항공 마일리지 4만 마일로(2인), 델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은 캐세이퍼시픽을 5만 마일로 예약을 했다. 


여행경비는 최소한으로 줄여서 잡아본다. 중국 돈을 현금으로 5,000위엔 정도 바꾸어 아내와 내가 반반씩 나누어 전대에 넣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발행 여행자 수표 1,000달러, 나머지는 국제현금카드 2개, 신용카드 2개(비자 1개, 마스터 1개), 그리고 비상금으로는 미국 돈 500달러를 현금으로 바꾸어 역시 반반씩 나누어 넣었다. 


하루 지출은 의식주와 입장료, 교통비 등 모두 합하여 우리나라 돈 5만 원으로 잡았다. 3개월이면 전부 4백 50만 원(2인 기준)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지출하는 생활비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켜질지는 의문이지만 물가가 싼 지역이니 일단 그렇게 계획을 세워본다. 


어쨌든 아내와 남편, 남자와 여자의 여행견해와 입장은 다르다. 여행 준비를 할 때마다 서로 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큰 행복일진대 그만한 아쉬움도 없다면 또한 너무 싱겁지 않겠는가?


법장스님 열반송처럼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 바랑 하나 걸머지고 훌훌 떠나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금강경을 작은 배낭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마음은 스님들처럼 바리때 하나와 경전 한 권이 든 바랑 하나 걸머지고 떠나는 티베트 순례자가 되었다.   

   

  我有一鉢囊  아유일발낭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無口亦無底  무구역무저 (입도 없고 밑도 없다) 

  受受而不濫  수수이불람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出出而不空  출출이불공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 -법장스님 열반송 중에서     


*법장스님(1941~2005): 전 조계종 총무원장. 불교계에서 최초로 장기기증 운동에 불씨를 지피신 분으로 생전에 자신의 몸을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하였고, 불교계에서 처음으로 다비식이 없는 장례를 실행한스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