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인이 쓴 시각 장애인을 위한 책
거대한 히말라야 산속 천막 안에 누워서
내가 준 것과 내가 받은 것을 비교해 보니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준 것이 한 줌이라면
내가 받은 것은 태산 같았다. ……
나는 그때 철이 들었다. (책 95페이지 ‘인생이란 무엇일까?’ 중에서)
『코끼리 만지는 인생』의 저자 이근후는 30년 넘게 네팔에 의료봉사활동을 해오던 중 50세가 넘어서야 히말라야 텐트 속에서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그때까지 마음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평생 도움을 주었으니 ‘준 사람’이지 ‘받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히말라야 텐트 속에 누워서 가만히 되돌아보니 도움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환자를 치료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봉사하는 것도 선배들에게 배우고 받아서 한 일이지 본인이 독창적으로 해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라는 속담처럼 히말라야 천막 안에서 비로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뒤늦었지만, 생각을 바꾼 것이 너무나 기뻤다고 한다.
『코끼리 만지는 인생』은 저자가 시각 장애인을 위해 작은 나눔 실천의 하나로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왼쪽 눈은 완전히 안 보이고 나머지 한쪽마저 희미하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도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책의 표지에서 보듯 저자는 90 평생을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인생을 탐구해 왔다. 그리고 저자가 정신과 의사로서, 노학자로서 몸소 터득한 혜학을 마치 선재 동자가 53선 지식을 만나 깨닫듯 몸소 터득한 지혜를 이야기하듯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1장 인생이란 무엇일까?-15편, 2장 행복은 큰 것이 아니다-19편, 3장 인생을 마음껏 누려라-17편 등 51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51편의 소제목 도입부에는 해당 주제를 갈무리한 주옥같은 명언과 시가 실려있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첫 번째 장에서 저자는 ‘인생은 나눔이다’라고 말한다. 나눔은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얼마나 사랑을 담느냐가 중요하다’라는 테레사 수녀님의 말을 인용하여 사랑을 담은 나눔이야말로 진정한 나눔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부처님 말씀 가운데 무재칠시(無財七施)를 인용하며 재산이 없어도 누구나 남에게 베풀 수 있다고 말한다. 평생을 정신과 의사로서 봉사를 해온 저자는 자신이 터득한 지혜를 회향하듯 하나하나 대중에게 들려주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는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슬프게 한다고 말한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가장 슬픈 일로 후회를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서 행복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라는 것. 그러면서 저자는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이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 요즈음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크게 달라져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기를 인정하고 장애인으로서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장애인으로 성공한 유명인들을 열거한다. 스티븐 호킹(루게릭병), 헬렌 켈러(청각, 시각, 언어장애), 헤르만 헤세(언어장애), 베토벤(청각장애), 세종대왕(시각장애), 에디슨(청각장애), 루스벨트 대통령(소아마비), 이솝(척추장애), 셰익스피어(안짱다리의 지체장애) 등등. 듣고 보니 누구나 장애인의 소지는 다 있다. 다만 장애의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에서 ‘자주 그리고 멀리 걸어라’, ‘잠을 충분히 자라’, ‘사랑한다 말하라’, ‘힘껏 여행하라’고 말한다. 여행은 ‘가슴 떨릴 때 해야지 다리가 떨릴 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다리가 떨릴 때도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머리 품을 파는 여행이다. 머리 품을 파는 여행의 예를 들면,
가슴이 떨릴 때 여행했던 경험을 기억하면서 즐겨보는 것,
무한한 상상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평생 집 앞만을 산책했던 칸트를 머리 품을 파는 여행을 가장 많이 하는 여행가로 꼽는다. 엉뚱한 발상이지만 참 흥미로운 말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저자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책을 출판하기 위해 관련 문화재단에 세 번이나 지원 요청을 했지만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소망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그 소원을 어느 강연회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식을 들은 어느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저자가 그렇게 갈망했던 점자책을 발간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왔다.
알고 보니 그 출판사의 사장이자 출판 편집자는 저자로부터 젊은 시절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던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이 책은 시각장애가 있는 저자와 저자로부터 한때 정신치료를 받았던 편집자가 사랑과 정성을 담아 완성한 책이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책을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려, 먼저 종이책을 발간하고, 읽어 주는 전자책으로도 출간한 후, 점자책을 10월에 발간할 예정이다.
이런 사유 때문에 저자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등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발간한 바 있는 저자는 이 책을 저자의 마음속에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고 있다고 말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일생을 지혜를 탐구해 온 여든일곱 노(老) 학자가 말하는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이고, 찰나이며, 황홀한 기쁨일까? 이 책에 그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