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라 Sep 24. 2022

정원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를 생각하며...

정원의 나뭇가지를 자르며 나는 임진강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헤르만 헤세를 생각했다. 이번 봄에 헤세가 오랫동안 살다가 을 마감했던 스위스 루가노(Lugano) 호수를 다녀온 탓일까?   

   

헤세는 7년 동안 살았던 보덴 호수가 집(세 살이)을 비워주고, 루가노 호수 몬타뇰라 카사카무치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루가노 호수 변에서 살았다. 그곳에 헤세의 문학관(박물관)이 있다. 그곳에서 살면서 헷세는 다음과 같이 회고를 하고 있다.   

  

"내가 지금껏 소유했거나 살았던 집들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멋진 집이다. 물론 나는 여기는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집 전체를 세낸 것도 아니고, 네 개의 방이 딸린 작은 아파트를 빌려서 살고 있을 뿐이다. 나는 볼품없는 빈털터리 시인에 지나지 않는다. 우유와 쌀과 마카로니로 근근이 끼니를 때우고, 낡은 양복은 닳아서 올이 풀어질 때까지 입고, 가을에는 숲에서 밤을 주워 와 저녁을 해결하는, 초라하고 어딘가 수상쩍은 이방인이다."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중에서-   

        

어쩌면 나는 헤세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구례에서 2년간 빈 농가에 세 들어 살다가 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하여 우연히 기가 막힌 인연으로 이곳 임진강가로 이사를 왔다. 이 집은 내게 살기에 과분할 정도로 크고 넓다. 50평이 넘는 건물에 600평 가까운 텃밭과 정원이 딸린 집이다.  

     

내가 이 집에 세를 들어 산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비록 내 소유의 집은 아니지만 나는 수시로 집을 수리하고 정원을 정성스럽게 가꾸었다. 잔디밭이 일부를 일구어 화단을 만들고 야생화와 화초를 심었다. 그 화초들이 매년 꽃을 피워주며 아내와 나를 즐겁게 해 준다.     

 

헤세는 루가노 호숫가에 살면서 매일 정원을 가꾸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나도 나름대로 글을 쓰고 정원을 가꾸며 그림을 그리는 대신 사진을 찍는다.  어찌 보면 이곳 임진강 가에 살고 있는 나는 남이 보면 헤세처럼 수상적은 사람 일른지도 모른다.     


정원에 사과나무와 대추나무, 벚꽃나무도 심었다. 사과는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벚나무는 금년에 처음으로 꽃을 피워 주었다.  대추는 작년부터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정원 일에 매달리며 시간을 보냈다. 매실나무, 사과나무, 산수유나무의 곁가지를 잘라주고, 담장 너머로 무성하게 뻗어 나온 찔레꽃나무의 가지를 잘라냈다. 찔레 가시가 손과 팔뚝을 찌르고 얼굴을 긁히기도 한다.  하지만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나름대로 가꾸어 온 정원과 집을 바라보면 어느 동화 속에나 나오는 집처럼 멋지게 보인다.

     

비록 언제 이 집이 팔려 떠나갈지 모르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안 나는 지금처럼 집을 수리하고 정원을 정성스럽게 가꾸며 살 것이다. 그리고 텃밭에 유기농 채소를 길러 반찬으로 삼아 먹거리를 해결하며 살아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