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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나이 May 25. 2022

자폐아이에게 공개수업은....

유치원 통합반 공개수업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작년까지 온라인 live로 진행하던 공개수업을 다녀오게 되었다. 유치원을 옮긴 후 수업도 궁금하기도 했고, 자리에 잘 앉아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고 말 그대로 걱정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유치원을 찾아갔다. 같은 특수반에 다니는 아이 엄마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공개수업교실에서 만났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선생님과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뒷문을 통해 들어오는 엄마 아빠를 보며 반갑게 웃었다. 몽이도 엄마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엄마가 와있다는 걸 아는 몽이는 끊임없이 뒤를 돌아봤다. 친구들은 선생님과 엄마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큰 소리로 대답도 하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몽이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다 일어나서 나에게 오려고 하다 특수반 선생님께 제제를 당했다. 단체 활동을 하는 중이라 조금 기다려야 한다는 규칙을 잘 알려주신 것이다.


유치원 담임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고 화분과 모종을 받아 자리에서 엄마와 함께 화분에 옮겨 심는 활동이 시작되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신나게 엄마에게 달려와 손을 잡은 몽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누가 자폐 아이가 스킨십을 싫어하고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는지... 몽이는 그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교쟁이였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공개수업을 위해 와 있는 부모님들이 우르르 앞쪽으로 이동하고 들뜬아이들이 재료를 받으러 왔다 갔다 다니고 교실이 시끄럽고 산만해졌다. 몽이는 그때부터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원래 소리나 시각 자극에 약한 아이라 나도 복잡하다고 느낀 교실 안은 몽이에게 수많은 자극들이 눈과 귀를 괴롭히는 장소였다. 내가 대부분의 활동을 하고 몽이가 흙을 숟가락으로 퍼서 화분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였는데 흙이 바닥에 많이 흘렸다. 그냥 반 아이들이 흘린 흙도 많았기 때문에 바닥에는 젖은 흙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최근 손바닥 발바닥에 묻은 물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몽이는 극도로 심각해졌다. 발바닥에 묻은 흙을 손으로 끊임없이 닦기 시작했고 나에게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께 양해를 부탁드리고 복도로 나와 몽이를 세게 껴안았다. 껴안는 건 몽이가 불안을 느낄 때 종종 하는 방법이기도 해서 몽이는 그냥 나에게 안겨있었다. 몸은 제법 커졌지만 아직 아기 같기만 하다. 안아주다 엎어주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교실에서의 행사가 끝났다. 함께 온 다른 아이의 엄마가 나의 집과 화분을 챙겨서 복도로 가져다주고 나는 귀가 준비를 해야 했다.


엄마가 유치원 교실에 들어올 때 반가웠던 만큼 엄마가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엄마를 따라가겠다가 손을 잡고 놓지 않다가 복도에 드러누워버렸다.

"엄마는 집에 가야 해. 몽이는 교실에 들어가는 거야"

 나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몽이는 여기서 친구들이랑 밥 먹을 거야"

밥을 너무 잘 먹어서 늘 2그릇을 먹는 아이지만 밥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특수반 선생님이 나오셔서 몽이를 달래기 시작하시다

"어머님, 여기 계시면 몽이가 멈추지 않을 것 같아요. 상황을 빨리 바꿔주어야 해요. 단호하게 일어서세요"


선생님 말씀에 동의한 나는 하원길에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끝까지 엄마 손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를 두고 떠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다른 부모님들이 지켜보는 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힘들었을 행사 시간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오다 신발을 두고 온 걸 깨달았고, 함께 온 다른 엄마가 신발을 가져다주며 몽이가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몽이는 엄마가 한 번 안된다고 하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엄마가 자리를 비웠을 때 단념하고 선생님 손을 잡고 들어간 것 같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시작 전에 걱정했던 부분들은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친구들을 방해하진 않을까) 하나도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그 시간이 아이에겐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았다. 행사는 즐겁고 길지 않았지만.. 몽이에겐 그 수많은 자극들이 한 번에 쏟아지는 태풍 속에 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감각 문제는 누구의 탓도 아니고 문제행동도 아니고 그저 아이가 버텨내야 하는 것일 뿐이다.


이번 공개수업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엄마와 함께 식물을 심는 행복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몽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아마 앞으로의 유치원, 학교 생활들이 모두 대다수의 아이들의 행복한 경험에 맞춰질 것이다. 물론 그중에 몽이에게도 행복한 경험이 많이 쌓일 거라 믿는다. 하지만 혼자 다르게 느껴야 하고 힘들어야 하는 시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이 행사를 통해 몽이를 어떻게 보듬어 주고 어떻게 사회에 적응을 시켜야 하는지를 조금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특수반 엄마들과 점심을 먹으며 행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다들 많이 지쳐있었다. 행사 동안 긴장을 해서 밥을 먹으며 긴장이 풀리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며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 함께 이야기할 엄마들이 없었다면 나는 혼자 더 심각해졌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감정은 훌훌 털어버리고 또 하루를 보냈다.


그래, 오늘은 몽이가 잘 이겨낸 수많은 날 중 하루일 뿐이야. 잘 이겨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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