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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아저씨 Nov 15. 2017

봄으로 와서 바람으로 간 '보미'

메모리얼솝 길생명 장례지원 첫번째 - 중앙대 '냥침반' 의 마음과 함께


#1. SPRING SPRINGS CAT



아마, 상도동 산중턱에도 봄의 따사로운 기운이 흘러 넘쳤던 것 같다.

생명을 잉태하는 봄은, 수선스럽지 않게 아주 조용하게 고양이 한 마리에게 싱그러운 공기와, 맑은 하늘, 지저귀는 새소리를 처음으로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작고 발랄했을 고양이에게 봄 햇살에 비추운 모든 세상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가가 태어났을 무렵, 아이를 품은 공간인 캠퍼스 역시 또한 입학, 신학기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고, 들뜨고 행복했을 것이니까.


내게는 일면식도 없던 아이였지만, 길에서 마주하는 많은 고양이 가족처럼 앙증맞은 찹살떡 발로 엄마 뒤를 쫒으며 물어보고는 했을 것이다.



"엄마. 두 발로 걸어다니는 저 큰 것들은 뭐에요?"

"사람. 이라는 친구들이야. 우리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집도 만들어 주고

 아가랑 나랑, 다른 고양이 식구들이랑 배고프지 말라고 밥을 주기도 한단다."

"우와, 그러면 나도 엄마만큼 크면 저 '사람' 들 하고 놀 수 있는거에요?

 나 좋아해 주는 거에요?"

"그럼. 물론이지 아가. 씩씩하게 엄마만큼 커 지면, 같이 인사도 하러 가자꾸나."

"신난다! 얼른 내가 엄마만큼 엄청 컸으면 좋겠다!"



캠퍼스에 울긋불긋 꽃도 피어나고, 로맨틱한 사랑들도 피어나고, 심지어 과제꽃도 피어날 무렵에 아가는 조금 더 제 발로 폭신하기도 딱딱하기도 한 땅을 걸어다녔을 것이다. 킁킁. 제법 먹을 것에 대한 냄새도 맡을 줄 알고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꼬마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엄마 곁을 호기심에라도 몰래 떠나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다. '사람' 이라는 친구들은  아가보다 너무 컸다.


하지만 콧잔등에 앉는 나비들을 통해, 새소리를 통해, 때로는 어른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고양이' 들을 조금 더 예뻐해 주고,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알 수 없는 말들로 다정하게 불러주고, 엄마가 아가를 사랑할 때 하는 것 처럼 눈을 천천히 꿈뻑 감았다 떠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인사하고 싶었다.

앞발을 쭈욱 펴고 나 이렇게 무서운, 쌀알만한 발톱이 있는 용맹하고 멋진 고양이라는 걸 자랑하고 싶어 했다.

어른 고양이들이 그랬다. 우리들 몸에는 사람을 피하라는 본능이 있어서 숨으려고 노력해도, 돌아보면 몇 발자국 뒤에서 어떻게 알고 걱정해 주는 눈빛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그 20명 남짓의 특별한 사람 친구들을 '냥침반'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사람 친구들이 듣기에는 여전히 '야옹' 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고.




#2. SUMMER GROWS UP CAT'S WONDERING.



아가가 조금 돌아다닐 만 하니, 어느 날은 너무너무 덥다가 어느 날은 비가 펑펑 왔다.

고개가 갸우뚱 해 졌다. 나는 이제 인사해도 될 만큼 큰 것 같은데 늘 소란스럽던 사람 친구들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엄마 말로는 한 해에 두 번,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울 때 사람 친구들도 여기를 떠나 어딘가에서 긴 잠을 자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특별한 사람친구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밥도 주고 물도 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잠이 필요할 테니까 만나도 귀찮게 하면 안된다고 했다.

치잇. 쳇. 사람 친구들은 참 치사하구나!



한동안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친 뒤라, 아가는 엄마 몰래 조금만 바깥에 나가보기로 했다.

사람들이라는 존재들은 여름에는 잠을 자기에 많이 없다고 했으니까 위험하지 않을지도 몰라.

두근거림 반, 겁먹음 반으로 쪼끔 발을 내딛으니 필시 어른 고양이들이 가서 식사를 한다는 '밥그릇' 이라는 게 저만치 보였다. 근데! 코 끝으로 닿는 향기가 아기를 너무 아득하게 했다. 다행히 밥그릇까지 더 멀리 가지 않아도 생각만으로 배부른 냄새를 가진 갈색 '밥' 이 몇 알 촉촉해진 상태로 아가의 눈에 띄었다. 기뻤다.

'찹찹'. 한참이나 냄새를 맡은 후에 가끔 엄마에게서 나는 향기임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입을 대어 보았다.

아직은 건식을 먹지 못하는 아가에게, 비에 젖은 몇 알의 밥은 먹기도 좋았고 세상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가는 생각했다.


'와, 이렇게 맛있는걸 저렇게 매일 주는 사람친구들, 냥침반이라고 했던가? 만나면 꾹꾹이를 해 줄테다!'


........




#3. 조금만 더 기다려 주지....미안해...보미야...



아가에게 세 번째 계절이 찾아왔다. 잠에서 깬 사람친구들은 여전히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삼삼오오 웃으며 지나다녔다. 다만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아가가 입은 털옷이 어느 새 많이 두터워졌다는 것과, 사람친구들 역시 옷깃을 여미고 다닌다는 것, 하늘은 눈부시게 맑고 세상이 온통 알록달록 변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 즈음 하여, 엄마는 아가의 이따금의 외출을 허락하기도 했다. 냥생 6개월 쯤. 이제는 엄마의 엄마가 그랬고, 또 그 엄마의 엄마가 그랬던 것 처럼, 세상을 조금은 스스로 느껴도 된다는 익숙한 배움 때문이었다.

엄마는 돌아보는 아가를 가만히 바라보며 옛날부터 말 해 준 이야기를 한 번 더 들려주었다.


"멀리는 가지 말고, 사람친구들이 우리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그리고 아무거나 먹지 말고.

 걷다가 배고프면 냥침반 아이들이 밥을 주는 저 언덕 밑에 가서 조금만 물이랑 같이, 천천히 먹고 오렴."

"알았어요. 나 사실은 어른들이 했던 사람친구들 얼굴도 아는걸요? 금방 올게요!"




수능이라는 새 식구를 맞을 준비를 아는 듯 찬 바람이 불고 단풍이 고왔던 11월 12일 쯤 일 것이다.

엄마의 눈물이 가을비로 쏟아졌다. 금방 온다던 아가는 기다려도 기다려도 돌아오지 못했다.

발바닥 폭신한 패드가 다 갈라지도록, 소중한 아가를 찾아다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애처롭게 불렀다.

미친 듯이, 가을의 캠퍼스를 찾아다녔지만,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했다. 쏟아지는 눈물은 비로 내렸고, 아픈 목과 발에서는 피가 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좋았다. 아가는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어딘가에서 여전히 엄마는 아가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슬픈 소식을 차마 들려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말할 수만 있다면, 어떤 엄마인지 알 수 있다면 아가가 너무 긴 여행을 떠났기에, 수 년이 흐른 뒤에야 다시 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가의 돌아올 수 없는 여정의 끝을 기다려 준 것은 어른고양이들이 자주 이야기 했던 중앙대 친구들이었다. 아가는 늘 조심스러웠고,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었기에 호기심 가득했지만 차마 친구들에게 꾹꾹이 한 번도, 발라당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두 눈과 귀로 궁금했을 사람 친구들을 죽음으로서야 만날 수 있었다. 아가의 입에는 각혈을 한 듯 선혈이 짙었고, 감지 못한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어느 비 갠 날 오후, 살짝 맛보았을 어른들의 밥 맛을 잊지 못한 아가는 필시 뭔가를 잘못 먹은 것이 분명했다.

세상에 대한 찬란한 호기심을 가진, 말 잘듣는 착한 고양이는 그렇게 엄마 없는, 어른 고양이들 없는 곳에서 처음 만나는 아픔과 괴로움에 어찌할 바 모르는 체로, 엄마를 사랑한다는 작은 '야옹' 을 남기고 별로 떠났다.


사랑받았고 사랑스러웠던 아가의 마지막 길에는 많은 사람 친구들이 함께 했다.



중앙대 냥침반, 메모리얼솝 주인아저씨, 한국반려동물협회 마이펫츠 임원분들까지 6명의 친구들이 아가의 뒤늦은 배웅을 하기로 했다. 길생명이지만 깨끗이 닦아주고 염을 해 준 후, 아가만큼 작은 관에 뉘여 주었다.

일산에 자리한 반려동물 화장터 추모관에 잠시 머물며, 세상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곧 있으면, 아가는 따스한 어느 날 문득 눈을 뜨고 세상을 마주한 것 처럼, 조용히 소리 없이 6개월이라는 묘생을 마치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엄마와 어른 고양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가의 추모관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누군가 사람친구와는 평생의 연을 쌓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 추모관에는 마지막 사람 친구들의 침묵 어린 배웅을 제외하고는 쓸쓸함이 가득했다.

조용히 추모관의 문을 닫고, 곱게 초록 옷을 차려 입은 아가를 우리 집 백설이를 안듯이 품에 안고 있었다.

추웠으니까, 따듯했으면 해서. 엄마고양이의 포근함은 아니겠지만, 안정감을 느꼈을 심장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말 없이 한참을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었다. 해 줄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는 없었다.

온라인에서 이따금 마주하는 길생명의 죽음을 추모할 때 쓰는 '고양이 별로 가서 행복하렴' 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조차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입에서는 그저, 태어났고 사랑받았던 그 모든 순간을, 마지막이나마 함께하고 싶었고 진작 알아보지 못했던 미안한 사람 친구들을 기억해 달라는 말, 나중에 내 생명이 다하면 백설이랑 함께 잘 놀고 있다가 마중나와 달라는 말만 흘러나왔다. 단어에 짭조롬한 물이 스며들어 흘러내렸다.



일면식도 없던 아가와 영영 이별할 시간이 찾아왔다. 그 때였다.

중앙대 친구들이 아가에게 마지막 선물로 '보미' 라는 고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가만 듣고 있었음에도 속에서 뭔가가 뜨겁게 울컥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생의 마지막에서 아가는 '보미' 가 되었다.

생의 마지막에서 아가의 '생명' 은 '길고양이' 가 아닌 '하나의 의미' 로서 글자가 되었고 흔적이 되었다.


'보미' 는, 그렇게 파란 하늘 아래 빠알간 불꽃 속에서 세상과 영영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한 줌의 흙으로 품에 안긴 보미는, '보미' 로서 사람 친구들이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함께 있을 곳,

어쩌면 엄마와 어른고양이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캠퍼스 어딘가에 편히 누워 있게 될 것이지만..


보미의 짧은 삶이, 보미로서 아름다웠기를.

죽음을 기억함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선물해 주기를.

그렇게 보미로 인해 매일의 마음이 '봄이' 되기를.





메모리얼솝의 세 번째 기억이었던, 길생명 장례 프로젝트 첫 번째를 보미와 함께 하며 36년 삶에서 처음 겪는 무거움과 아픔, 복잡한 감정들을 겪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추모관에서 어떤 생명은 '반려' 로서 함께 살아갔기에 눈물과 절절한 슬픔으로 가는 길을 지켜주는 존재들이 있었던 반면, 온전히 보미로 인해 보미만을 위해 배웅해 주는 존재는 없었다는 것이 온 종일 나를 복잡하게 했다.

물론, 고양이 세계에서는 사랑 받는 고양이었을 보미이지만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속에서 보미는 어쩌면 '길고양이' 를 빼고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존재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증오 속에 그 생명이 얼마나 여린 생명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분풀이의 대상, 학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아주 약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보미처럼 약하고 소외된 삶들이 비단 고양이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라는 것도.

고독사가 늘어가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의 살아있음 자체를 아껴주고 도닥여 주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도 언젠가 얼마든지 보미처럼 홀로 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앙대 친구들이 '보미' 라는 의미를 선물해 준 것이 너무 감사하다.

그 마음 씀씀이로, 모든 것이 홀로가 되 가는 세상에서 보미는 흔적을 남기고 기억으로서 회자되며 다른 삶을 더 아껴주도록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식약처가 법규로 나를 힘들게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최후까지 비누를 열심히 알리고 판매해야 될 이유가 새삼 다시 되새겨졌다. 법 안에서 작은 사업을 하는 나는, 법이 해 주지 못하는 것들을 통해 이름 모를 소비자 분들로 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예의를 갖출 것이기 때문이다.

약하고 소외된 것들의 죽음에 대한 이 일이, 비록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다고 할 지라도.



고맙고. 사랑해. 보미야.



이 프로젝트는 세계비누편집샵 메모리얼솝의 비용 후원과,
한국반려동물협회의 재능기부를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메모리얼솝 : http://storefarm.naver.com/mmrsoap

한국반려동물협회 : http://www.compan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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