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아저씨 Nov 23. 2017

울지마요. 나 사랑으로 떠나요.

메모리얼솝 길고양이 장례 프로젝트 두번째 - 영등포 길냥이 찐찐이의 편지


#1. 나 뚠뚠해 보이나요? 그런데 배가 고파요. 엄마.


Winter Wonderland. Pictured By JUCHAN. 2005.


엄마. 나에요. 찐찐이.

나 이제 막 뒤돌아서서 내가 잠시 머물렀던 지구라는 곳을 보고 있어요.

지금 여기는 굉장히 캄캄하기는 한데, 반짝거리는 것들도 굉장히 많아서 신기해요.

옛날에 날 낳아준 엄마가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었어요.

"착한 고양이들이 세상을 떠나갈 때는, 고양이별의 천사가 잠시 살던 곳을 뒤돌아 볼 시간을 준다" 구요.

내가 착한 고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후후.

그렇지만 고양이 별로 가기 전에 이렇게 사람 엄마를 기억할 수 있고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건,

내가 착하고 사랑스럽고 착한 고양이었다는 것이겠죠?

엄마 덕분이에요. 엄마가 있어줘서 그래요. 

사랑해요. 우리 엄마.

그리고 미안해요. 더 오래 건강하게 생명 가득하게 있어주지 못해서요.

나는 고양이이기에,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어 눈빛으로만 전할 수 밖에 없어서요.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 많이 듣고 싶었을 텐데. 미안해요.




내 이름은 찐찐이. 영등포에서 살던 길고양이에요^^


사실, 엄마 만나기 전에 내 이름은 길고양이였고, 도둑고양이었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더라구요. 그래도 좋았어요. 나를 불러주는 소리이고 이름이잖아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따금 뚠뚠이라고 하기도 했어요. 뚠뚠이가 뭔지 모르죠? 뚱보라는 말이래요.

그렇지만! 엄마 나 본래 되게 예쁜 고양이었어요. 

나를 좀 더 일찍 봤으면 아마 예뻐서 펑펑 울었을걸요?

물론, 엄마는 나를 너무너무 예뻐해 줬고, 뚠뚠한 고양이였지만 난 엄청 예뻤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킥킥.

그런데요. 엄마. 지금도 의아한게 하나 있어요.

내가 막 뚠뚠이가 되었던 1년 반쯤 전에, 나 진짜 뭐 먹은것도 없고 맨날 배고프고 목말랐거든요?

거짓말 하는게 아니라, 너무 배가 고팠는데 먹을만한 게 없었어요.

어느 날은요, 며칠 굶다가 길에 떨어진 고기조각을 먹기도 했는데 사람들한테 이유 없이 엄청 혼나기도 했어요.

훔쳐먹은 것도 아니고, 전봇대 옆에 놓여 있는 뭔가를 헤집은 것도 아닌데 억울했어요. 힝.

그렇게 구박 받으면서 먹은 것도 없는데 살찌는 내가 미웠어요. 이쁘지 않았어요.


그 때, 너무너무 추워서 꼬질꼬질 해 진 털옷도 얼어붙어서 갈아입을 수도 없을 때,

엄마가 날 봐 주었어요. 엄마를 처음 본 그곳에는 맛있는 밥도 있었어요.

다른 고양이 친구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곳을 외면하는건 너무 힘들었어요.

많이 무서웠어요. 저 밥을 먹으면 혼날까봐.


하지만 엄마는 몇 발자국 떨어져서 날 가만 봐 주었어요. 아직도 그 따듯한 눈빛을 기억해요.

날 낳아 준 엄마가, 따듯한 품에 날 안아주면서 봐 주었던 그 편안한 눈빛과 똑같았거든요.

날 해치지 않을 것이 확실했던 그 눈빛, 날 측은하게 여겨주었던 그 눈빛.

아. 엄마 보고싶어요.


#2. 엄마는 늘 내 곁에 있어 주었어요.



아마 엄마는, 엄마를 처음 만난 그 곳을 안 떠난 나를 칭찬해 주었을 것 같아요.

왜냐면요! 처음에는 잘 못 알아 들었는데, 매번 나를 부를 때 '찐찐아' 라고 해 줬거든요.

'찐찐아' 라는 말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날도, 엄마를 처음 본 날 만큼 행복했어요.

'길고양이', '도둑고양이'. 모두 나를 부르는 소리였기에 좋았지만, '찐찐이' 라는 건 나한테만 들리는 마법같은 소리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걸 안 날 밤에, 고양이 별에 먼저 가 있는 엄마한테 엄청 자랑했어요.

나 이제 혼자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요.

울엄마는 나와 헤어지면서 '아가가 혼자 된다는 것' 을 너무너무 걱정했었거든요.


별로 가는 길에 알았어요. 엄마가 나를 부르는 '찐찐이' 라는 이름이, 처음 본 내가 너무 애잔해서 붙여준 이름이라는 것을요. 고양이 별로 가는 길에는, 사람 말도 다 들을 수가 있거든요. 작은 속삭임 하나까지요.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들만 한해서에요. 부럽죠?


엄마는 처음 본 이후로, 눈이 오던 비가 오던 나를 매일 만나러 와 주었어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강아지 친구들 만큼 기억도 못하고 은혜도 모른다고 하나봐요.

하지만, 나는 엄마의 목소리, 발걸음, 숨소리 하나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올 때 쯤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거에요. 그러니까 나 똑똑한 고양이었다고 해 줘요 엄마.


밥을 먹는 내 머리를 보드랍게 쓰담쓰담 해 준 엄마의 손길을 기억해요.

따듯했어요.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는 향기도 났어요. 엄마 향기에요. 엄마한테서만 났거든요.

엄마 오기 전에 열심히 그루밍도 했지만, 나는 발도 얼굴도 새까맣고 지저분해서 너무너무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엄마는 나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예쁘다고 사랑한다고 해 줬어요.

내 머리에 목덜미에 엄마 손이 닿으면, 나는 예쁘고 잘생기진 않아도 세상에서 가장 착한 고양이고 싶었어요.

사실은, 엄마하고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했지만. 알고 있었어요. 욕심이라는 거.



엄마는 나를 굶지 않게 해 주었고, 죽을 뻔 한 나를 살려주기도 했어요.

언젠가 엄마를 기다리다가, 그 곳에 밥먹으러 오던 다른 고양이들과 심하게 싸운 적이 있었어요.

아까 이 곳에 오는 게 한편으로는 무섭다고 했었잖아요? 주위를 맴돌 때 다른 고양이들이 있는걸 봤거든요.

아마 엄마는, 이 곳 고양이들이 모두 사이좋게 지낼 것이라고 믿었겠지만 아쉽게도 따듯하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어요.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고양이들이 나를 때리고 할퀴었을 때, 여기서 쫓겨나면 엄마를 두 번 다시 못 본다는 생각에 용맹하게 싸웠어요.

그래서 두 다리는 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다쳤고, 쓰러졌어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엄마가 슬퍼할 거니까. 나는 엄마한테 더 사랑받고 싶었으니까. 이를 악물고 기다렸어요. 믿었거든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엄마가 나를 구해줄 거라고.

엄마는. 내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어요!! 내 곁에 있어 주었어요!!

모든게 무서워서 웅크려 있던 내게, '찐찐아 밥먹자 어디있니' 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없던 기운도 솟아났어요.

하지만, 너무너무 미안했어요. 엄마를 울려서. 힘들게 해서요.


생각보다 차갑지만은 않았던 병실에서 일어났을 때, 성 정체성은 없어져서 한참 웃기도 했어요.


#3. 보고싶어요. 미안해요. 엄마.


엄마는 나 때문에 너무나 많이 울었어요. 이렇게 착하고 순한 고양이가 없다고 해줬는데, 나는 엄마한테 너무나 나쁜 고양이인것만 같아서 미안하기만 해요.


병이 다 나아갈 즈음, 엄마는 조용히 목이 메어 말했었어요.

이제는 엄마보다 더 좋은 식구와 함께, 길이 아닌 따듯한 집에서 고단하지 않게 살게 될거라구요.

내가 막 '야옹' 거린거 기억하나요? 엄마의 마음은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싫다' 고 계속 말했어요.

왜 엄마랑 이별해야 되는건지...집이 없어도, 따듯하지 않아도 나는 엄마로 모든 것이 충분했는데...

날 낳아준 엄마랑 같은 말을 해 주었어요. 착한 고양이는 엄마 말 잘 듣는 고양이라고.

마지막까지 착한 고양이이고 싶었어요. 그렇게 나는 엄마랑 이별을 했어요.

구미로 떠난 후에도 착한 고양이가 되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그러면 엄마가 가끔 내 소식을 들을 것을 아니까요.

하지만 후회되요. 구미로 떠날 때 더 크게 싫다고 야옹 해 볼걸. 눈물 흘려 볼 걸.

이렇게 엄마를 영영 못 보게 될 줄 몰랐어요. 나쁜 고양이여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엄마.



구미에서 저를 돌봐주신 사랑하는 식구들께도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나를 늘 예쁜 고양이로 만들어 주려고 깨끗하게 씻겨주고, 병원도 같이 가 주고, 맛있는 밥도 주고, 낮설어 했던 저를 지극한 인내심으로 기다려 주셨잖아요. 더 이상 오늘 어디서 자야 할 지, 다른 고양이가 해치지 않을 지 걱정하지 않게 해 주셨어요.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족들의 사랑은 저를 더 밝은 고양이, 좋은 고양이로 만들어 주셨어요. 평생 기억할 거에요. 고양이의 기억으로 그 사랑에 보답할게요. 저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었던 그 정성과 사랑, 손길, 웃음 모두를 기억할게요. 고양이의 보은은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모르실걸요!


어느 날 나는 아프기 시작했어요. 왠지 입맛도 없었고 매일이 봄인 것 처럼 나른하기만 했어요.

전혀 걷고 싶지도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어요. 아득했다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이상하게 속도 많이 아프기도 했고 찌릿하기도 했어요. 힘이 없어지고 있었어요.

이런 나를 보고 깜짝 놀란 구미의 가족들이 급히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나는 어디론가 떠나게 되었어요.

무겁게 내려앉은 눈을 살짝 떠 보니 익숙한 곳이었어요. 이전에 나 다쳤을 때 왔던 곳. 병원이라는 곳.

사람 말을 알아듣게 된 지금에서야, 건식복막염이라는 무서운 병을 갖게 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엄마를 만나기 전, 구미의 따듯한 내 식구들을 만나기 전에, 나는 그렇게 이미 아팠나봐요.

아무거나 주워먹었던 그 시절부터, 나는 그래서 많이 약했나봐요.

여러 사람을 아프게 한 나는 정말 미안하고 나쁜 고양이에요. 착한 고양이 아니에요. 미안해요.


엄마가 온다고 했는데, 나를 안아주고 이름 불러준 엄마가 온다고 했는데...

저 멀리 바람소리에 담겨, 엄마가 놀라 뛰어오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어요.

모든 게 다 좋았나봐요. 엄마를 두번 다시 보지는 못했지만, 내게는 바람결 엄마의 냄새, 발걸음이 자장가 같았나봐요. 갑자기 숨이 차올랐어요. 다시 눈을 뜨면 엄마 품 안에 있겠죠? 그렇죠?




엄마. 찐찐이의 사랑이 되어 준 엄마. 하얀 옷을 입은 나를 보고 엄마는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까무잡잡했던 내게 새하얀 옷을 입혀준 것도, 꽃 처럼 폭신한 곳에 뉘여준 것도 결국 엄마였어요.

나도. 엄마를 떠나기 싫어요. 자주는 보지 못해도 씩씩한 고양이로 크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뚠뚠이가 아니라 곱고 날렵한 선을 가진 어여쁜 엄마의 고양이가 되고 싶었는데.

엄마가 나에게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단어,


'미안하다'.


미안해하지 마요. 엄마. 미안한건 나에요.

울지마요 엄마. 나는 엄마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양이었어요.

사랑해요 엄마. 나는 엄마로 인해 죽는 그 순간까지 사랑만 받다가 떠나는 축복받은 묘생이었어요.

기다려요 엄마. 엄마가 좋아했던 꽃과 바람으로 올게요.

기다릴게요 엄마. 영원한 우주에서 찰나와 같은 생이 끝나면, 뚠뚠한 그 모습으로 마중 나갈게요.


나는 이렇게 한 줌의 흙이 되었지만, 찐찐이로 생을 살았기에 기억 되었기에 행복해요. 엄마.


엄마. 찐찐이를 사랑해 준 엄마.

이제 가야 될 시간이에요. 여기서부터는 검은 고양이들이랑 조금 먼 여행을 같이 간다고 해요.

길에서 태어났지만, 엄마의 사랑으로 자랐기에 고양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갈게요.


"나를 기억해 줘서, 쓰다듬어 줘서 고마워요. 엄마.

 다음 생에서는 엄마의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프로젝트는 세계비누편집샵 메모리얼솝의 비용 후원과,
한국반려동물협회의 재능기부를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메모리얼솝 : http://storefarm.naver.com/mmrsoap

한국반려동물협회 : http://www.companion.or.kr

                   

매거진의 이전글 봄으로 와서 바람으로 간 '보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