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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아저씨 Jul 09. 2019

정신질환. 그저 감기와 같은.

정신적 아픔을 이상하게 보는 것 자체가 병을 만드는지도.

오늘의 이야기는 나름 최근의 일상을 짧게 나누려고 한다.

7월인데도, 여전히 밤만 되면 시원한 산들바람이 콧잔등을 톡톡 건드리니, 운동 안가고 침대에 엎드려 이야기 나누기 좋은 퇴근 후 저녁인 것 같다.


꽤 긴 시간 운전대를 놓게 되어 다시 도로 연수를 받게 되었는데, 예민하고 날카롭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 어떤 일을 하던 늘 나보다 항상 엄청나게 완벽하게 할 줄 아는 상상속의 표상이 또 다시 툭 튀어나옴을 느꼈다.

그 표상은, 내 아주 사소한 것들과 모든 순간에서 내가 못하는 것은 완벽하게 잘 할 수 있고, 스스로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건 그 이상의 한계를 넘은 아주 완벽한 사람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쩌다 보니 매사 이 표상을 뛰어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잡고 살아왔던 것 같다. 뭐랄까, 마치 전교 1등을 했다면 지역 1등을, 이걸 해 냈다면 전국 1등, 세계 1등, 어쩌면 전 우주에서 가장 뭔가를 잘 하는 사람이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그렇다고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약간의 만족감이나 성취감과 함께, 따라잡느라 더 이상 고생할 마음이 없어서 누더기가 될 때 쯤에야 지쳐서 자연스럽게 다음 목표를 찾고는 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이게 아주 당연한 사고구조라고 생각했고 지치는 것 또한 내가 운동을 덜 해서라고 생각했으며, 막상 체력을 늘리려고 간 헬스장에서도 당연히 이 표상은 끝까지 따라다녔다.

그리고 거울에 비춘 나, 조금이라도 시간을 쪼개서 자기관리를 하는 나를 볼품없고 배나오고 형편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는 했다. 배성재의 텐에서 팟수들이 배디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을 빌리면 그 표상은 내게,

"저러니 여자친구가 없지" 라고 비웃고 완벽한 몸매와 키를 보여주고는 사라졌다.

씨근덕거림과, 불편한 운동으로 인한 힘듬만 내 몫이었다.


이게, 스트레스와는 또 다른 강박증이라는 걸 도로주행 전 굳게 마음먹고 찾아간 정신과에서 처음 알았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뒤쳐지지 않으려는 열정 쯤으로 생각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병원 2번 방문해서 약 타먹고 상담받은 후 신기할 정도로 이제 표상 없는 나로서 우뚝 세상에 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 깨끗하지는 않지만, 확연히 내가 나를 돌아볼 마음의 공간이 생겼다.


마음의 공백이 생기니, 내가 나를 토닥여 줄 수 있는 마음. 조금 실수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겼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 뿐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자세 역시 억지로 노력하는 유연성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관계성을 형성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흠칫 놀랐다. 실수를 조금 인정하는 마음의 공백,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는 강박이 오히려 상대방을 얼마나 불편하게 했을 지 되돌아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병원 2번으로, 쌍둥이 표상이 없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제 2의 삶을 살아가게 되니 말하고 싶은게 생겼다.

스트레스, 강박, 공황과 같은 마음의 질병은, 누구보다 스스로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 환절기만 되면 찾아오는 반갑잖은 손님인 감기같은 것과 별 다르지 않다는 것, 독감보다 훨씬 빨리 치료할 수 있는 정말 별거 아닌 증상이라는 점이다.

긍정의 마인드를 갖자고 하는데, 긍정의 마인드는 경쟁사회의 사람들에게 별로 좋은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감기걸렸을 때 먹는 차가운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이다. 잠깐 달콤한 마인드 셋은 되겠지만 오히려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긍정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 나의 노력 때문에 더 깊이 나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랄까.


정신과라는 곳,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무서운 곳도 이상한 곳도 아니다. 그냥 병원이다.

정신과를 찾을까 고민하는 순간이 되면, 당신은 이미 나 만큼 너무나 아프고 아프고 슬픈 상태인데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아주아주 착한 사람이다. 그럴 땐 고민하지 말고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의 감기에 맞는 약을 처방받아 먹어보기를 권한다. 그 약을 먹는다고, 정신과라는 공간을 간다고 해서 당신의 착하고 선한 마음이, 인격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인 것이다.

이상하게 쳐다봄을 느끼는 것 역시 타인에 대한 의식, 정신적인 압박의 일종일 뿐이다.

우리가 헤어져야 될 소악마와 같은 표상의 속삭임일 뿐이다.


정말 감기랑 똑같다. 30년 된 마음의 고통이 2주만에 거의 사라졌다면, 느낌으로 표현하면 불현듯 표상이 찾아올 때 머리에서 문을 쾅 닫아버린 후, 귓속에서 가수 태양이 '넌 나만 바라봐' 라고 계속 노래 불러주는 느낌이랄까. 나만 보라고 나에게만 집중하라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스스로를 토닥여 주는 그 느낌을 찾게되기를 바란다.


마치 무슨 기독교의 간증 같아서 조금 오글거린다.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하는 아주 소중한 인생을 조금 더 용기 있게 살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긍정적이지 말고, 좋으려고 하지 말고, 행복하려고 애쓰지 말고.

힘내지 말고.


절대 힘내지 말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모두 매일 최대한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니까.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정말 멋지고 소중하니까.


그럼에도 아프다면, 힘내지 말고 노력하지 말고 병원가서 마음의 감기를 치료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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