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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아저씨 Aug 11. 2019

낮잠자는 고양이

감사합니다. 누추한 밥집 애용해 주셔서.


35도. 푹푹 삶아지는 여름 한 낮.

지친 묘생이 그늘진 밥집 앞에서 쌔근쌔근 잘도 잔다.

며칠 전 물청소를 한 번 했지만 비와서 다시 더러워진 바닥인데. 벌레들도 많을텐데.

세상 모르고 자는 삼색이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자고. 사랑받음이라는 것 역시 인간의 가치이기는 하겠지만 어떤 고양이는 이 더운 날 에어컨 빵빵한 집에서 캣타워에 올라가서 자고 있음을 생각하면 쌔근거리는 들숨과 날숨이 왠지 가여웠다.

그래도 밥집인걸 용케 알고, 저렇게 나뒹굴어 단잠을 청한다는 것은,
저 공간이 아이에게는 사람의 공간 중에 마음 놓을 수 있는 한 켠.
길에서 태어났기에 모든 길이 아이의 것이련만 제 스스로 맘 편히 있을 한 조각의 터전도 딱히 없는,
저 아이가 마음 놓을 그 한 켠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고맙기만 하다.

물론, 녀석이 밥집 애용묘 여섯 마리 중 가장 말썽꾸러기 - 밥그릇을 다 뒤집어 엎어놓는. 대체 왜. 흑흑. - 이지만, 저 거칠고 고운 털을, 동그란 등줄기를, 숨소리에도 놀라 자지러질 따듯한 이마를 살포시 쓰다듬어 주고 싶은 건 길집사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이겠지.

삼색이 말고. 네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데. 이름은 생의 의미이니까. 그러고 싶은데.
나는 너를 어떻게 불러주면 좋을까.
사랑한다. 밥집 공식 깡패야.
편히 쉬다 가렴. 고단한 잠이 깰 때까지 어떤 사람의 숨결도 마주하지 말렴.

말복이니까. 늦은 밤에는 닭가슴살 좀 츄르에 비벼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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