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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아저씨 Dec 17. 2023

입사 첫 일주일 잘 보내기

시공간에 갇혀 있는 듯 한 그 시기를 잘 쓰는 방법 몇 가지


신입은 신입 나름대로, 경력은 경력직 나름대로 입사 후 첫 일주일에 드는 생각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난 누구인가, 여긴 또 어디인가"


그나마, 완전 1류 대기업의 경우에는 HR 프로세스가 그 일주일을 가만 두지 않기는 하지만,

자리를 배정받고 컴퓨터 하나 달랑 주어진 경우, 그 분위기 속에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걸기는 하지만, 보통 도서관 같은 분위기에 이런 시간을 보내는 첫 주는 정말 시간이 멎은 것 만 같다.

인사계를 쓰고 사수를 배정받기는 하지만, 누군가들은 하루 종일 바쁘게 뭔가를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그 시간에 나 혼자 외딴 섬이 되어 있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다.


물론 드라마 미생에서, 오차장이 장그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더랬다.

"장그래! 신입이 120%를 하려고 하는 것 만큼 팀을 위태롭게 하는 건 없다" 라고.

시스템, 체계, 사람, 환경을 모르는 내가 뭔가를 하려고 애쓰는 것 만큼, 이미 충분히 바쁜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거나 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신입사원의 경우나 인턴사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 비련의 1주일을 좀 더 잘 보내는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DAY 1-2. 스트레칭과 내 앞에 있는 서류 읽기, 허락 맡고 화장실 다녀오기.


첫 날은 보통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면담과 인사계를 작성하고 기본적인 문서자료들을 준다.

그 이외에 보통 할 일이 없고 시키지도 않는다. 그 자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면 준 서류들을 몇 번이고 읽어보고, 모르는 것은 메모하면서 추후에 물어봐야 할 일들을 적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선이 크지 않은 선에서 자주 스트레칭을 해 주고 몸을 풀어준다. 하루 종일 몸이 굳어서 이틀차 되는 날 극심한 피로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허락 맡고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것은, 타인들에게 신경쓰이지 않는 선에서 자주 왔다갔다 하며 어느 팀은 어디에 있는지, 회사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라는 의도이며, 본인에게 합법적인(?) 쉬는 시간을 제공하라는 의미이다. 누군가 커피나 한잔 하자고, 또는 담배 한 대 피자고 하기 전까지 엉덩이에 땀나도록 앉아만 있지 말고 말이다. 그렇게 짬짬이 회사의 환경과 동선을 읽어놓으면 나중에 누가 아무것도 안가르쳐 줬는데 어디 가서 뭐 해가지고 오라고 할 때 아주 작은 일머리가 생길 수 있다.

또한, 다 큰 성인인데 허락을 맡으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비즈니스 매너이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눈치 빠른 상사들은 이 친구가 종일 앉아있는게 지겨워서 그렇다는 것을 재깍 알아채고 같이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자고 하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이야기, 친해지기는 생각보다 이렇게 능동적일 때 시작된다.

또한 화장실, 또는 커피, 흡연 등을 하기 위해 허락을 맡고 이동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작은 기회도 주어진다. 인사해서 나쁠 것 없다는 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오늘은 0명 알고 시작했는데, 내일은 1명이라도 익숙해진 사람이 생긴다면, 다음 날 출근할 때 몸도 마음도 조금은 편할 것이다. 대부분 입사 1일차에 오는 현타는, 나 내일 또 뭐하고 있어야 하지, 누구랑 커뮤니케이션 하고 배우지 하는 스트레스에서 온다.

반대로, 0명이 1명이 되어가고, 1명이 2명이 되어갈 수록 현업에 조인하게 될 시간은 그만큼 빨라진다.

관심을 주고 받는다는게 그렇게 중요하며, 사실 신입이 움직일 동선이 그것밖에는 없고, 사수들도 그 지루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때가 많다.


DAY 3. 그룹웨어 미친듯이 탐독하기


입사 2-3일차에 그룹웨어를 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2-3일차에 그룹웨어를 준다면 거기 있는 모든 글들을 내용을 잘 모르겠어도 탐닉하듯 볼 것을 추천한다. 마찬가지로 모르는 단어나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메모를 해 뒀다가, 아직은 바쁘게 일하는 사수나 선배에게 직접 묻지는 말고 쉬는 시간에 살짝살짝 물어보도록 하자.

보통은 '아, 그거 어차피 지금 몰라도 돼. 업무 시작하면서 알게 될거야' 또는 '어휴, 이제 곧 죽어날텐데 뭘 벌써 그런걸 알려고 해. 어디서 봤어' 라고 하겠지만, 사실 좀 이뻐보인다.


그룹웨어 내용 중에 가장 탐닉해야 할 것은 오픈되어 있다면, 팀 내 기안 서류이다.

기안이라 함은,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보고체계에 의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글을 쓰고 의사결정을 받는지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그 회사가 문서를 쓰는 톤앤매너가 응축된 정수와 같고, 당신도 추후에 기안을 쓴다면 그와 같은 단어, 어법들로 써야 할 확률이 90% 이상에 준한다. 회사마다 다른 메뉴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결재' 또는 '상신' 이라는 단어만 누르지 말고, 타인의 기안을 보고 결재선을 만들어 보는 연습을 해 봐도 좋다. 결재, 합의 등에 대해서 화면에 어떤 식으로 뜨는지, 그게 타인의 완성된 기안과 차이가 없는지 있는지의 형태를 보는 정도만 해도 매우 좋다.

그리고 기안을 탐독하라는 것, 특히 소속된 팀의 기안을 탐독하라는 것은 그 팀에서 하고 있는 일의 전부가 기안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업무는 누구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사람의 허락을 맡고, 어떤 사람과 협조를 해야 하는지, 일일이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떤 일을 하나요?' 라고 묻는 이상한 신입이 되기 전에 대략적으로 그 사람의 역할 (회사용어로 R&R) 을 추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재 라인을 유심히 보라는 것은, 나중에 본인이 기안을 쓸 때 사수에게 '이렇게 이렇게 결재와 합의를 설정해서 올리는게 맞나요?' 라고 물어보는 신입과, '기안 어떻게 올려요?' 라고 물어보는 신입과는 결이 틀린 당신이 되기 때문이다.


DAY 3-4. 조직도와 이름 확인하기, 전화 받는 모습 보고 배우기


일은 사람이 한다. 결국 모든 일은 협업이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게 업무 스킬보다 어쩌면 사람을 알아 나가는 건데, 만일 초반에 몇명이라도 오가다가 알게 된 사람이 있다면, 아는 걸로 끝나지 말고 조직도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자. 그 전에, 입사하면 조직도를 보고 내 사수될 사람, 우리 팀 사람들의 이름과 직급부터 달달 외우자. 신입이라면 직급을 더 잘 알아야 할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실수가,

'000 과장님. 000대리님이 000을 부탁하셨는데요' 라는 높임과 낮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답 : 000 과장님. 000대리가 000을 부탁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리고 신입으로서 현업으로 투입되면 아마 가장 많이, 가장 바쁘게 할 일은 '전화받기' 일 것이다.

이것만 진짜 잘 해줘도 신입사원의 할 일 20%쯤은 하는 것인데, 그 전화를 받아서 내가 그 일을 해결할 상황은 별로 없고, 전화벨 1번 울렸을 때 먼저 대신 당겨받는 일 (전화기의 당겨받기), 그리고 누가 누구를 찾으면 그 사람에게 연결해 주기 (돌려주기) 만 잘 해도 일머리 있는 신입사원 되기 충분하다.

그리고 요새는 개인 핸드폰으로 다들 전화하기는 하지만, 유선도 여전히 쓰기 때문에 일단 사수에게 전화기의 돌려받기나 당겨받기를 어떻게 쓰는 건지를 배우도록 하자. 대부분 내가 먼저 전화를 '당겨받기' 눌러서 받고, 누군가에게 전화기를 돌려줄 때면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살짝 막은 후, '돌려주기 + 돌려줄 사람의 내선번호' 를 누르고 전화기를 놓으면 되는 경우가 많지만, 회사마다 이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내선번호 역시 조직도에 있다. 조직도를 보고 최소한 우리팀 팀원들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아주 최대한 빠른 시간에 숙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당신이 믿어지고 현업을 시작할 타이밍이 그만큼 빨라진다.


마지막으로, 각자 전화를 받는 말들(화법)을 한 귀를 열고 계속 듣자. 당신이 머잖아 그렇게 받고 말할 것들이다.


DAY 4-5. 영상자료 확인하기와 회식


회사가 작아서 관련 영상자료 (회사소개 영상, 그룹 홍보영상, 교육 영상) 가 없다면, 업무에 관련한 유투브를 찾아보자. 있다면 그 영상자료를 보고 또 보자. 비록 그게 액션이라도 좋다. 액션이 아니라도 뭔가 하나라도 더 알고 배울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남이 가르쳐 주기 전에 말이다.

예를 들어, 십수년 전 포스코 인턴할 때, 그게 진짜 인턴은 아니었기에 다들 간단하게 업무 배우는 척 하면서 사실은 오후에는 자기 공부나 취업준비 하고 그랬었는데, 나는 그게 진짜 인턴이 아닌지 모르고 철강 관련 영상을 혼자 미친듯이 본 적이 있었다. 결국은 정규직 전환 인턴제는 아니었기에 나 역시 신입으로 다른 곳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지만, 당시 본부장님께서 '이 친구는 인턴 조금 더 오래 했었으면 키워서 여기는 아니더라도 다른 제강회사에 소개시켜 줄 까 했는데 아쉽게 되었다' 라고 하셔서, 애써 입사한 회사를 관두고 좀 더 짱박힐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냥, 뭔지도 모르고 애초에 정규직 전환 인턴도 아닌 애가 뭐라도 공부할려고 본거 또보고 쓰고 하는게 본부장님 눈에는 웃겨보였는지, 이뻐보였는지는 모르겠다.

나에게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회사와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조금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회식의 경우 5일차면 아마 높은 확률로 당신을 위해서 할 거니까, 빼거나 하지 말자.

나도 회식 진짜 싫어하고, 회식을 해도 점심 회식을 하거나 아예 회식자리를 도망가버리거나 잡지도 않는 관리자이지만, 일단 그 자리는 당신보다 더 바쁜 사람들이 애써 당신을 위해 시간 내 준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새 조직문화 많이 바뀌어서 근 10년 전과 다르게 술 많이 먹이지도 않고, 2차 3차 권하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안빡세고 일찍 끝내고 보내주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아니면 점심 회식을 하거나.

꼰대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첫 회식은 일종의 '진짜 업무의 연장' 이라고 믿고 있으며, 최근의 친구들을 보더라도 '점심회식' 도 '속이 안좋아서', '고단해서' 등등의 이유로 안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조금 의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그 이후 회식부터야 꼰대, 비꼰대로 갈릴 수 있겠지만, 첫 회식은 그것도 당신을 위한 첫 회식은 당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아이스 브레이킹' 이라는 '목적' 을 달성하기 위한 '일' 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ISFJ인 나처럼 프로 집돌이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친해진다면 그 다음주, 다다음주부터는 회사도 일종의 집이 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몇 안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첫 회식을 잘 치뤘다는 것은, 그 다음부터는 다 큰 성인으로서 본인의 의사에 맞게 회식 참여 가부를 정할 수 있는 권리를 받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첫 주말에는 가족과 쉬자. 들뜬 마음에 미션 클리어하고 친구들 만나고 놀고 돌아다니면 그 다음주 월요일에 불지옥같은 체력으로 한주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놀아도 살살 놀거나. 쉬자.

모시던 이사님이 그랬었다. '잘 쉬는 것도 프로' 라고.

당신은 신입이지만 프로이기 때문에, 이 험난한 세상에서 기업에 입사한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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