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정빈 Jun 07. 2021

지미 맥길+킴 웩슬러=사울굿맨

'사울 굿맨'은 어떻게 탄생하나

1.

"킴, 네가 가진 능력과 내가 가진 능력을 합치는 거야. 이거 정말 엄청날 것 같지 않아?"

텍사스 러복에서 사기를 친 지미와 킴은 앨버커키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식당에 앉아 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지미가 킴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킴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2.

언뜻 지미와 킴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지미가 양아치라면, 킴은 모범생이다. 변호사로서도 마찬가지다. 온갖 사고를 치는 법조계의 아웃사이더인 지미와 달리 킴은 업계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법률가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고 있다 보면 킴이 왜 지미를 사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나. 지미의 형 척이 그랬던 것처럼, 킴이 지미를 무시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말이다. 혹시 이건 연민인가. 아무리 강한 연민이 있다 해도 연민하는 상대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순 없지 않을까.

3.

그럼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자. 지미와 킴이 정말 다른가. 변호사로서 위치는 다를 수 있어도 두 사람은 결코 다르지 않다. 오히려 지미와 킴은 똑같다. 지미는 킴이고, 킴은 지미다.


4.

지미와 킴의 출발을 결코 다르지 않았다. HHM의 우편물 보관실. 그들은 거기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변호사가 됐다. 킴이 먼저 됐고, 지미가 나중에 됐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변호사가 된 뒤 그들의 삶이 나아졌나.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은 똑같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다. 기억하자. 두 사람 모두 똑같이 HHM에 뒤통수를 맞고 본격적인 생존 경쟁에 뛰어들게 됐다는 걸. 지미와 킴 모두 잘 살아보려고 애쓴다. 지미는 형 척과 같은 능력 있고 정직한 좋은 변호사가 되려 하고, 킴은 척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한 변호사가 되려 한다. 그렇다면 지미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 같고, 킴은 그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가는 중인 것 같다. 그럼 지미는 불행하고, 킴은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지미의 삶이 계속 고통스러운 것처럼 킴도 고통스럽다. 대형 은행을 변호하는 건 킴이 원했던 변호사 생활이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지미와 술집에서 벌이는 사기 행각에 그는 더 큰 행복을 느끼고 있지 않나. 킴이 지미와 함께 실행한 첫 번째 사기에서 전리품으로 챙긴 데킬라 병뚜껑을 보관하는 이유, 킴이 밑바닥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해 무료 변호 봉사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킴은 이른바 '상류층의 삶'이 자기와 맞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마치 지미가 영원히 정상적인 변호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5.

그러니까 킴은 지미를 안다. 지미에게서 킴 자신을 본다. 지미가 곧 킴이다. 킴이 곧 지미다. 그래서 킴은 지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6.

<브레이킹 배드>에 왜 킴이 나오지 않는지, 아마 곧 공개될 시즌6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어쨌든 시즌6에서 킴에서 무언가 일이 생기고, 이 이야기에서 영원히 이탈하게 되는 듯하다. 그리고 지미가 킴에게 말했던 것처럼 지미는 "네 능력과 내 능력을 합쳐" 완전한 사울 굿맨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다. 여기서 지미가 말하는 킴의 능력이라는 건 내 의뢰인을 어떻게든 공권력으로부터 보호해내는 이른바 '법꾸라지' 기술이다. 지미가 말하는 자신의 능력은 '사기꾼 슬리핀(미끄덩) 지미'의 모습이다. 시즌5까지 지미는 법을 활용하는 면에서 어설픈 모습을 보이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킴의 도움을 받는다. 게다가 랄로를 설득해내는 킴의 저 화려한 언변을 보면, 사실상 '사울 굿맨'이라는 캐릭터는 킴에게 더 많은 지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소 과장하자면 이렇다. '킴과 지미가 사울 굿맨을 낳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볼 수밖에 없는 '베터 콜 사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