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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Sep 27. 2021

'인간실격'의 과도한 자기 연민

드라마 '인간실격'을 봤다. 현재 6회까지 방송됐고, 4회까지 봤다. 전도연이 나오고, 허진호의 첫 드라마 연출작인데다가 대학교 신입생이던 나를 꽤나 힘들게 했던 다자이 오사무 소설의 제목과 같아 안 볼 수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을 계속 볼 것 같진 않다. 더이상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드라마 속 사람들이 궁금하지가 않다. 5회와 6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하지만(큰 변화가 생겼을 것 같지는 않다), 최소한 4회까지 보면 두 주인공 부정(전도연)과 강재(류준열)의 과도한 자기 연민을 더는 보고 있기가 힘들다.


정말 고통스러운 사람만 고통스러워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소라가 노래했듯이 우린 다들 "평범한 불행" 속을 살아가고 있으며,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별 거 아닌 일로 자신을 경멸하고 큰 잘못이 없는 주변 사람을 증오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 대부분은 삶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고통들을 받아들이고 견딘다. 견딜 만한 정도의 아픔이라서가 아니라 그 견뎌냄 자체가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게 산다는 걸 알기에 애써 유난을 떨지 않으려고 한다.


드라마 '인간실격'은 1~4회 내내 부정과 강재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부정은 울고, 강재는 청승맞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삶은 쉽지 않은 것이니까, 버거워 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그들의 아픔을 전시하는 이 드라마의 연출 방식이다. 두 사람은 물론 이 작품 속 사람들의 아픔을 일일이 들추며 이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냐고, 너희들도 사는 게 참 힘들지 않냐고 반복해서 동의를 구한다. 공감을 부추긴달까.


1회에서 부정은 아버지에게 말한다. "난 아무것도 못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됐어요. 결국 아무것도 못될 것 같아요. 그래서 외로워." 참 애달픈 대사이지만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런 말을 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저런 말을 다 쏟아낼 수 있다는 건 그 정도 여유는 있다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실격'이 만들어낸 이 인위적인 고통엔 별다른 연민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장면을 보고나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보이후드'에서 패트리샤 아켓이 연기한 '올리비아'의 대사를 떠올렸다. 오랜 세월 씩씩하게 살았던 엄마는 종반부에 이르러 잠시 무너진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내 인생에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이 짧은 한 마디를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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