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대중 음악이 후진합니다

대량 생산 속에서 사라지는 음악의 가치

봉준호 감독이 올해에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고 해서 한국 영화계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처럼, BTS를 배출했다고 해서 한국의 대중음악계 전반을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K-POP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순간에도, 한국의 음악 시장에 스며든 골병은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만성 질환으로 굳어지는 골병을 고치기 위한 치료제,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있다.


감성도 공감도 없다


이미 한국 음악계는 차트 순위에 목숨 거는 시장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음원 발표 첫날 차트에 진입했을 때의 순위다. 대중들 사이에서 음악의 퀄리티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기도 전에, 음원 순위 피라미드의 상위권에 먼저 진입하느냐의 경쟁이 우선이다. 아이돌 음악의 경우에는 팬덤의 스트리밍 유입 공세에 매달리고 있으니, 애초에 깊이라고는 찾기도 어렵다. 전주만으로도 짧은 시간에 강한 임팩트를 주는 음악, 1분 미리 듣기만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음악 제작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음악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 뇌리 속에 남느냐에 대한 개념은 이미 뒷전이다.   



더구나 최근에 계속 불거지는 음원 사재기 논란은 음악이라는 컨텐츠의 가치를 스스로 죽이는 꼴이다. 소위 인디 밴드들이나 발라드 가수, 혹은 래퍼들의 음악들에게서 사재기 논란이 자주 벌어진다. 본인들은 인기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퀄리티를 추구한다는 자존심으로 음악을 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생산되는 음악의 가치는 딱히 달라진 것이 없다. 되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도 못한다. 특히, 가사를 입 안에서 웅얼거리듯 내뱉는 멈블 (Mumble) 랩은 듣는 사람에게 물음표만 가중시킬 뿐이다.


자연히 음악의 깊이, 감성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여운이 남는 음악보다 귀에 꽂히는 음악의 끊임없는 재생산이 반복될 뿐이다. 음악 제작사들 입장에서 음원 수익이 필요하다고는 하나, 수익에 매달리다가 음악의 본질을 전혀 잡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예전에는 MP3 플레이어나 iPod에 수백 곡의 음악을 갖고 다니는 게 일종의 쾌감이자 자랑이었으나, 지금의 음악은 한 번 스트리밍을 거치면 금방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된다. 더구나 아이돌 시장은 팬덤들의 굿즈 구매 수입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으니, 음악의 질에 신경쓴 지는 오래됐다.


그럴 수밖에. 차트 상위권을 목표로 하는 음악은 인트로에만 힘을 준다. 발라드는 이미 공식이 정해져서 가수의 색깔이 사라졌고, 힙합은 청담동 도련님들이 억지로 미국 갱스터 흉내내느라 바쁘다. 듣는 사람에게 와닿지도 않는 천편일률의 노래를 굳이 다운로드받을 이유가 없다. 공감이 없는 컨텐츠는 컨텐츠라고 부를 자격이 없으니, 이 시대의 대중 음악이 그 자체로 컨텐츠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어째서 탑골 공원으로 가는가


온라인 탑골 공원이 각광받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감성 및 공감 부족 현상을 갈구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면 되겠다. 발표되는 K-POP 음악은 많지만, 정작 들을 만한 음악은 고르기가 어렵다.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옷만 잔뜩 진열해 놓은 백화점과도 같다. 숨조차 마음놓고 쉬기 쉽지 않은 일상 속에서 감성을 채워줄 수 있는 음악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눈에 띄지 않을 뿐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온라인 탑골 공원도 따지고 보면 음원의 풍요 속 빈곤을 대변한다. 음악은 넘쳐나지만 내 마음에 드는 건 없는 현실에서, 차라리 예전에 내 마음에 들었던 음악을 다시 찾는다. 뻔하고 새로울 게 없을 줄 알면서도, 일단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감성이 충전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80~90년대에 발표됐던 노래가 지금의 30~40대는 물론, 10대들까지 사로잡는 것은 이러한 맞춤형 감성 충전 기능 덕분이다. 덜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나게 하면서도, 그 때 묻어났던 정감이 사람 마음을 건드린다.


그런데 탑골 공원에는 국내 음악만 있는 게 아니다. 해외에서도 대중 음악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힙합이다. 요즘에 발표되는 힙합 음반들은 대부분 부정적 반응을 얻거나, 힙합 리스너들의 열광을 얻어내지 못한다. 위에서 얘기한 멈블 랩 때문에 가사 전달이 잘 안될 뿐더러, 가사의 내용도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을 만드는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미국 힙합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간다. 미국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던 80~90년대로 돌아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보다 믹싱 기술이 덜 발달하고 구성도 덜 세련되었지만, 자기 색깔이 확실하고 가사에 진정성이 있는 과거 음악을 찾는다. 거칠고 마초적이지만, 자기 얘기를 또렷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더 와닿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일본 J-POP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전통의 대형 기획사인 쟈니스에서 지속적으로 아이돌 그룹을 배출하고, AKB-48과 같이 엄청난 팬덤을 보유한 그룹이 존재하지만, J-POP의 퀄리티는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K-POP이 앞으로 나아갈 동안 J-POP은 아무런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본 내부에서도 나올 정도로, 일본 음악 시장 역시 질타의 시선이 많다.


결국은 이 시장도 과거로 간다. 30여년 전의 시티 팝이 최근 들어 다시 온라인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시티 팝은 80년대에 일본에서 유행했던 음악 장르다. 일본의 버블 경제, 도시 땅값이 절정에 달했던 80년대 중반에 도시인들의 풍요 속 빈곤을 표현했던 음악이라고 보면 되겠다. 당시 시티 팝이라는 명칭은 없었으나, 재즈나 펑크 등의 요소들을 차용하고 각종 전자 악기의 사운드를 첨가하여 세련된 분위기를 낸 음악이 도쿄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 음악을 시티 팝으로 통칭한다.


시티 팝은 일본인들의 버블 경제 시대 감성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도시의 밤에서만 취할 수 있는 분위기를 그려낸다. 지금의 일본에는 없지만, 온라인 탑골 공원에는 80년대 일본이 간직하고 있었던 도시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감성을 느끼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간다.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내 마음을 위로받고자 하는 생각에, 과거의 멜로디를 찾아간다. 알아먹지도 공감하지도 못할 지금의 J-POP에게서 의도적으로 멀어지기 위해서.



대중 음악의 후진, 컨텐츠의 실종


지금도 사람들은 과거의 대중 음악을 찾아간다. 음원 차트 Top 100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이미 의미가 없다. 유행을 타지 않는, 내 감정 상태에 잘 맞는 음악을 찾아가는 상황에서 음원 출시 경쟁은 허공 속 경쟁밖에 되지 않는다. 특정 가수의 팬이 아닌 이상, 차트 경쟁은 사람들 관심 밖이다.


결국 지금의 현상을 좀더 과감하게 정리해 보자면, 대중 음악은 컨텐츠 자체로서의 힘을 잃었다.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한 수단, 혹은 영화나 드라마를 빛내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나도 모르게 음악에 손이 가는 시대가 아니라, 특정 컨텐츠나 특정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보조 배터리다. 너무 많은 대중 음악이 생산된 나머지, 본연의 컨텐츠 경쟁력이 사라졌다. 공감도 없고 감성도 없다.


음악의 양산은 그렇게 음악의 가치를 깎아먹었다.

작가의 이전글 리오넬 메시의 Last Danc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